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Oct 16. 2018

간헐적으로나마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뜬금없는 기프티콘에 닮긴 의미

애인이 혼자 드라마를 보고 있길래 물었다. “나쁜 놈이야? 착한 놈이야?” 사무라이 분장을 한 배우가 아이를 밀치는 장면이었다. 애인은 피식 웃더니 “둘 다 아닌데. 입체적인 캐릭터야”라고 답했다. 그가 다시 영상에 집중하는 사이 말없이 방을 나왔지만 내심 꽤 민망해졌다. A 아니면 B. 모든 걸 극단적으로 나누어 단정 짓는 나쁜 버릇이 아무래도 잘 안 고쳐진다.


스스로에 대해 정의를 내릴 때도 습관적으로 이분법을 찾는다.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잊고 ‘나는 착한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고민하곤 한다. 그런 생각을 할 때는 주로 마음에 못된 행동이 얹혀 있다.

가끔 나는 드라마 악역의 실제 인물인 것처럼 심술궂다. 주변을 둘러 싼 모든 걸 미워한다. 동료가 보낸 메시지에 찍힌 점(;)하나가 거슬려서 씩씩거리기도, “나 빼고 다 망했으면 좋겠다”며 전방위적 저주를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한동안 뾰족한 마음을 안고 살다가 문득 슬퍼진 적도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별로인 사람이 됐지?



나는 10년 째 매일 일기를 쓰는데, 최근 몇 년간의 일기를 다시 보면 맛없는 국을 괜히 휘젓는 기분이다. 회사에서 했던 행동을 뒤늦게 떠올리며 몸서리 칠 때도 있다. 십분도 손해보고 싶지 않아 사람들과 기 싸움을 하고, 사소한 업무 하나 더 맡기 싫어서 좋아하는 선배에게 쪼잔하게 굴고, 실수 앞에서 책임 회피부터 하는 못난 모습들. 회사에서 뿐만이 아니다. 애인과 나눈 메시지를 보면 짜증과 욕설로 도배가 되어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친구와의 약속을 멋대로 취소한 적도, 부모님 연락을 일부러 피한 적도 있다. 이러니 스스로가 자꾸 미워지지.


차라리 ‘나는 원래 별로인 놈이야’ 인정해버리면 편할 것이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다들 그렇지 뭐’ 정신승리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좋은 사람 역할에 미련이 남는다. 마음에 여유가 있던 시절, 주변을 돌보던 내가 ‘진짜 나’라고 믿고 싶어진다. 변명하고 싶어진다. ‘그래도 예전엔 좋은 사람이라는 말도 꽤 들었다고! 팀원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밤새워 손 편지를 쓰고 쿠키를 포장해 나누어주던 시절도 분명히 있었단 말이야.’



출근길이 유난히 불행했던 날이었다.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했고, 비가 와서 밖이 어두웠고, 늦잠을 잤으며, 그날따라 짐이 많아 허둥지둥하다 버스도 잘 못 탔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든 사람들로 가득한 만원 버스에서 중심을 잡기위해 애쓰며, 한손으론 ‘지각해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쓰다가 나는 또 폭발해버렸다. ‘죄송하긴 개뿔. 유연하지 못한 출근 시스템 망해라. 대한민국 망해라. 지구도 망해버려라!’


그렇게 잔뜩 골이 난 채로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책상에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발신인을 보니 지난 달 창작 수업에서 만난 시인 선생님이었다. 상자에는 책 두 권과 엽서가 담겨 있었다. 만나서 반갑고 고마웠다고. 혜원님은 귀한 사람이라고. 또 만나자고. 단정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사정이 생겨 마지막 수업에 가지 못해 아쉬워했었는데. 마지막까지 이렇게 다정할 수가.


그는 내가 꿈꾸던 좋은 사람의 실사판이었다. 매 수업마다 수강생 모두에게 편지를 써주고, 엄밀히 말하면 업무시간이 아닐 때에도 우리의 글에 대해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곤 했다. 꼬인 생각으로 ‘사는 게 여유가 있으신가 보네’ 넘겨 집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편집자, 시인, 강사, 세 개의 직업을 가지고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면 나는 왠지 머쓱해진다. 다 부술 기세로 뿜어내던 분노는 다정한 마음에 스르륵 녹고, 한결 순해진 채 ‘이제부터라도 좋은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게 된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감당할 수 없는 미움의 감정에 휩쓸려 욕설을 뱉다가, 내 이름이 적힌 쪽지나 초콜릿에서 근근이 착한 마음을 충전하면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좁히지 못한 탓에 최근엔 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는데, 바로 사람들에게 뜬금없이 기프티콘을 보내는 것이다. 요즘 들어 신세 한탄이 잦아진 친구의 전화를 은근히 피한 게 문득 찜찜하거나, 누군가에게 받았던 다정한 마음이 별안간 떠오를 때. 메신저 앱을 열고 ‘선물하기’ 버튼을 누른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걸 보내는 건 아니고. 사과즙, 아이스크림, 손 선풍기 같이, 주는 나도 받는 이도 부담스럽지 않은 선에서 귀여운 선물을 고른다. 기프티콘을 계기로 호의를 나누는 가벼운 대화를 하고 나면 잠시나마 예전의 ‘좋은 나’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진다. 물론 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금세 전쟁 모드로 돌아가긴 하지만.


다분히 자기만족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괴로워만 하는 것 보단 낫기 때문이다. 혼자서 얍삽한 행동을 후회하고 죄책감을 느낀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러니 고작 오천 원 어치 마음일지언정 일단 보내는 거다. 괜히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나의 뜬금없는 기프티콘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간헐적으로나마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나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