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쓴 글
아크로폴리스 옆 작은 언덕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소크라테스의 감옥이라고 유명한 장소가 있었다. 동굴에 창살이 쳐진채 남은 모습이 아주 그럴듯해서 관광객들이 많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길바닥엔 송충이들이 드글드들 떨어져 있었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짓이겨진 시체들과 그 시체들 위를 기어다니는 또 많은 송충이들로 길이 까맸다.
사실 그 곳은 소크라테스의 감옥이 아니었다.
그가 갇혔던 감옥은 아고라에 있는 감옥이었을거다. 2500년 전에 일어난 일의 진위를 알 수는 없지만, 아테네 사회를 뒤숭숭하게 만든 반동 분자를
아테네 민주 법정에서 사형 선고까지 받은 자를
외딴 산 속의 감옥에 가두진 않았을 것이다. 아고라 광장 한가운데, 법원 바로 옆 경비가 삼엄한 감옥에 가둬두지 않았을까
그는 무슨 죄목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가를 3년동안이나 무려 30분동안 사람들에게 설명했는데
정말 놀랍게도 지금은 그 이유를 잊었다.
다만 소크라테스는 그 곳에 갇히지 않았단 걸 확신하면서도 그곳으로 자꾸 갈 수 밖에 없게 만들었던 동굴앞에 쳐진 창살, 그 어두운 이미지와, 여기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안에 있는 소크라테스와
그를 둘러싼 제자들 그리고 고개를 숙인 건장한 플라톤을 떠올렸다. 플라톤이 사랑했던 스승의 죽음.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이라는 얘기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는 플라톤이 써서 남긴것이므로.
플라톤은 몸이 건장한 사내였다. 그래서 이름이 Platon 이다. plaza, 혹은 플라타너스 앞에 붙는 pla- 가 쓰인 이름으로 크고,넓은 이라는 뜻이다.
그 시절 플라톤을 가만 상상해본다. 이름도 커다란 이 사내가, 아테네가 그리스 도시국가 들 중 맹주의 역할을 하던 최전성기에,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이 우뚝 빛나고 그 아래 아고라 광장에서는 그 전성기의 상징과도 같은 민주주의가 이루어졌을 때 그 한 가운데서 민주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이 사내를 떠올려본다. 나라가 정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자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고, 수준 높은 교육을 받지 않은 아테네의 시민들 앞에서 주장하는 모습, 그리고 이렇게 강인한 사상이 넘치는 사내가 허름한 행색의 소크라테스를 쫓아다니는 모습도. 혹은 자기 머릿속에 존경할만한 인물을 만들어내고 그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며 인물을 완성시키는 모습을.
섹시해…섹시한 사상가 플라톤
흙이 많은 땅에서, 나무의 초록색이 우거지는 풍경에서 태어난 나는 이토록 새파란 바다와 새파란 하늘아래 풀뿌리 하나 자라기 힘든 돌로 만들어진 땅도 있다는 걸 언제나 신기해했다.
그 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올리브 나무,
잎이 희끄무레해서는 물기도 없게 생긴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에서는 기름이 나온다는 것도.
그리고 그 돌로 만들어진 2000년도 넘은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빛났던 순간들, 지어진 지 이천년쯤 지났을 때 마치 어제 지어진 것 같았다는 찬사를 듣던 파르테논도.
그것들을 매 순간 인식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내 안에 말과 생각들을 멈추게 했었다는 것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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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0년경에 써두고 묵혀뒀던 글을 발견해 올린다. 코딩이 국가 의무 교육으로 지정되던 어느 날,컴퓨터 속 세계가 플라톤이 말하던 이데아 세계관과 딱 맞아서 깜짝 놀라 전율을 일으키며 코딩의 세계로 들어갈거란 걸 저 때의 나는 몰랐지
인생은 복선의 연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