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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디아워스

하루종일 열연

관객은 나

by 우엥

나는 거의 매일 아침,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을 사 먹는다. 예정대로 버스를 탔다면 회사에 도착했을 때의 시각은 얼추 아침 7시 30분쯤. 8시까지 출근이니까 약 30분 정도가 남는데, 나는 그동안 회사 근처 편의점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삼각 김밥을 먹는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야외 테이블이 늘 깨끗하게 관리되는 편의점이지만, 비가 오거나 너무 덥거나 하면 실내에 식탁이 있는 편의점에 가서 삼각 김밥을 먹는다. 날씨에 무디게 반응하는 나에게는 비가 오는 날 말고는 야외에서 앉아있지 못 할 날씨는 거의 없어서 대부분 비슷한 시간, 비슷한 자리에 앉아 삼각 김밥을 먹는다. 올해의 가장 더운 여름날에도, 회사로 오는 버스 안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차갑다 못해 냉해진 몸을 햇살에 덥히며 야외에 앉아 삼각 김밥을 먹었다. 다시 땀이 나려고 할 때쯤, 에어컨이 냉하게 나오는 사무실로 들어가 하루 종일 찬 공기 속에 앉아있을테니까, 하루종일 나를 감쌀 찬 공기에 대한 보호막으로 땀을 내기도 한다.



실내에 식탁이 있는 편의점에서는 테이블 사이의 간격이 좁고, 전자레인지와도 가까워서 이른 시간 홀로 편의점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의 비루함을 너무 가까이서 봐야 한다. 별거 안 들어있는 가방을 의자에 부려 놓고(부려진 가방의 모양이 걸레짝 같으므로 알 수 있다) 라면이나 삼각 김밥을 데우러 전자레인지로 향하는 길에는 라면을 입에 물고, 눈은 스마트폰에 둔 채, 의자를 땡겨 주고, 그렇게 생긴 좁은 길을 발뒤꿈치를 들고 뚱뚱한 엉덩이를 의자 위로 올려 통과해 가야하는 과정이 있다. 라면을 입에 문 채로 의자를 땡겨줬던 사람에게는, 음식을 데우러 간 사람의 돌아오는 길을 예비해야 하는 긴장이 남아있고 음식을 데우는 자에게는 내가 돌아가야 하는 길을 예비하고 있는 자를 애써 모른 척 해야 하는 곤란함이 남아있다. 이런거 저런거 다 온통 비루한 풍경들만 가득한 곳이어서 선호하지 않는다.



내가 잘 앉아있는 야외 테이블이 깨끗한 편의점의 매력은 바깥쪽에 스피커를 두고 틀어주는 음악에 있다. 재생 목록이 뜬금없고, 연이어 나오는 노래들이 조화롭지 않아서 아침의 고요한 머리를 건드린다.

뭐야 이 노래는 또


너무 랜덤이라 주인이 직접 선정한 것이 확실한 음악의 연속에서 이 집 주인은 참 태평한 사람이로구나 상상한다. 이를테면,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그 다음 노래는 성시경의 희재, 그 다음 곡은 터보의 트위스트 킹, 그리곤 아이유의 셀러브리티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한 차트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시대도, 장르도, 템포도 제각각인 곡 들이 천연덕스럽게 흘러나온다.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노래 뒤에 트위스트를 추고 놀자는 요란한 음악이 연이어 나오는 것이다. 이 집 주인은 이런 감정 연결에 특이점이 있다고 생각 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음악에 감정을 담아 듣지는 않는 사람이거나, 어떤 음악에든 그런대로 자신의 기분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거나, 어쨌거나 어느쪽으로든 태평한 사람임에는 분명하다. 오늘 아침에는 편의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탁 돌린 순간, 따다당 하며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 도입부가, 내 발이 편의점 문 쪽으로 꺾어지는 타이밍에 딱 맞춰 흘러나왔다. 별안간 눈을 빛내며 더욱더 희망찬 자세로 삼각 김밥을 골라야 할 것 같았다. 그 기분 그대로 이어서, 첫 눈에 보이는 삼각 김밥을 척 집어 들어 계산하고 나왔다. 사람들이 물건을 빨리 골라 나가길 원한다면, 당신의 결정을 무엇이든 응원해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야 라는 풍의 음악을 매장에 틀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럼 나처럼 뜬금없는 호기로움을 발휘해서 물건을 척 고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삼각 김밥은 주로 계란이나 참치가 들어간 것으로 고른다. 나는 고소하고 느끼한 맛을 좋아한다. 야외 테이블에는 근처 공사 현장에 일하러 온 인부들이 앉아있을 때가 많다. 컵라면을 먹는 아저씨도 있다. 옷차림이나 생김새를 봐서는 출근하는 아저씨인데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척 하면서 엄청 의식하고 있는 어설픈 행동 거지 때문에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사는 아들 같아 보인다. 라면을 먹느라 구부정한 그의 등짝을 후려치는 매운 손바닥이 어른거린다. 이곳에서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는 흡연 구역이 있어서 한쪽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짝다리를 짚고 서서 담배를 피는 사람, 벤치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두 팔꿈치를 두 무릎에 의지한 자세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이 3-4명 정도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있다. 아침 7시 30분, 삼각 김밥과 컵라면으로 아침을 먹고 벌써 오늘을 다 산 것 같은 피곤으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의 광장에서 나는 개운한 기분이다. 몽롱한 아침과 몽롱한 아침 정신들이 한데 모여 더 몽롱한 아침 버스를 통과하여 차가운 아침 공기 속에 안착했다는 편안함, 회사가 오분 거리에 있으니 느긋하게 쉬다가 슬슬 걸어 회사를 가면 된다는 안정감, 보통의 사람들 속에서 조금 더 깨끗한 모습으로 있다는 우월감도 느끼면서. 나는 깨끗한 차림을 하고 다니는 단정한 사람이지만, 담배와 편의점의 광장에 무심히 앉아 삼각 김밥을 먹는 호방함까지 갖췄다 이 자식들아



아침에 출근 시간보다 조금 더 빨리 도착해서 보내는 시간 속에는, 이른 시간에 분주하고 피곤한 사람들을 관찰하는 세련된 여유를 누리는 건 나뿐인 것 같은 착각이 있다. 그 착각에 취해 나의 피곤과 하잘것 없는 일상은 잊게 된다. 나는 얼마 안 있다가 회사에 들어가 얼마간 일하는 퍼포먼스를 하다가, 살그마니 부장님, 이사님들의 동태를 파악한 뒤 칫솔에 치약을 묻혀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 이때는 칫솔을 허벅지 옆쪽으로 자연스럽게 숨기고, 다른 손으로는 머리칼을 뒤쪽으로 넘기며 도회적인 워킹으로 걸어나간다. 내가 양치하러 간다고 시비 걸 사람은 없지만, 괜스레 아무도 시비 걸지 못한 포스를 연출하는 것이다. 나는 화장실 가는 모습마저 연출하는 퍼포먼서 직장인이다. 업무 시간에 양치를 당당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연출을 하는 웃기는 내 일상이, 아침 삼각 김밥을 먹으며 하는 세련되고 여유있지만 편의점 음식으로 아침을 먹는 소탈하고 쿨한 직장인을 연기하면서는 까맣게 잊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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