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디아워스

미남과 못생긴 여자

사랑할 수 있나요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독후감

by 유바바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미남과 만난 추녀와 자신이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숙주를 만난 미남' 이라는 문장을 읽으며, 나는 나의 작은 고모 이야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의 이야기는 언제 떠올려도 흥미진진하므로 떠올린 김에 써보기까지 하련다.


듬직한 체격에 선이 굵은 얼굴, 공간을 울리는 성량 큰 웃음 소리.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외모의 작은 고모는, 매끈하고 서글거리는 눈웃음을 가진 고모부와 부부였다. 고모부는 직업이 없는 남자였다. 매일 티비앞에 트렁크 팬티만 입고 누워 있었다. 그럼에도 집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럽게 굴면 가장의 위엄을 담아 조용히 하라고 했고, 그때의 아이들은 순진해서 아버지의 경제력이 아닌 무서운 목소리만으로도 위엄을 느꼈기 때문에 바로 시무룩 조용히 했었다. 4남매나 되는 아이들이 백수 아버지 한마디에 조용히 하던 시절이었다. 아 딴 얘기지만, 요즘은 백수 아버지가 집에서 가질 수 있는 위상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아이들의 발에 뻥뻥 채이는 시절 아닌가

어쨌든 그때 백수 고모부가 집안에서 누리던 위세는 아무래도 무서운 고모가 고모부를 완전히 집안의 가장으로 인정하고 존중한 덕이다. 돈은 본인이 다 벌어오고 집안일은 아이들에게 불호령을 내려 해결하면서도 고모부 앞에서는 집안일만 해서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 같은 순종을 보여주었다. 남편 앞에서는 그런 여자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 시대 여성들에게, 돈 잘 벌어다주는 듬직한 남편 옆에서 순종하는 연약한 아내의 이미지는 자신의 여성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이미지 아니었으려나.

나라면 남편을 집안일과 내조의 황제로 훈련시켰을텐데 라는 괜히 분한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저 시절을 통과하며 성장했더라도 지금같은 생각을 했으려나 싶고...



내 나이 8살 때, 부모님의 이혼 후 아빠가 남기고 간 빚 때문에 집안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었고, 나는 하루 아침에 살 곳도 없어져 이모네 집에 얹혀 살게 된 엄마 대신 부자 여자를 만나 부자 여자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아빠의 집으로 보내졌었다. 아주 늦은밤, 도로에 차들도 다니지 않던 늦은 밤에, 간헐적으로 한 두대의 차들이 깊은밤 텅빈 도로를 틈타 쌩쌩 과속을 하던 한적한 도로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타고온 차에서 내려 아빠가 새여자와 타고온 차로 옮겨 탔다. 그때 엄마는 나에게 어떤 말을 했었던가? 아빠는 또 어떤말을 했었던가? 엄마와 아빠는 어떤 대화를 나누기는 했었나? 엄마랑 나는 누구차를 얻어 타고 온거지? 우리 엄마는 차도 없고 운전 면허도 없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차들이 너무 빨리 달려대던 어둡고 뻥 뚫린 도로에서 엄마를 등지고 걸어가 아빠차에 올라타는 게 참 슬펐다는 기억만 난다. 내가 아빠에게로 가서 슬픈게 아니라, 그런 나를 보고있을 등 뒤의 엄마가 가슴이 아팠다. 엄마가 너무 약해서 나를 보낸다는 게 가슴 깊은 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약한 엄마가 나를 슬프게 했다. 내 마음이 울고 있었다. 저때 생각을 하면 지금 내 마음도 울먹거린다.


아빠를 따라간 집은 산장 같은 집이었다. 집 천장에 서까래가 보이고, 나무 향기가 풀풀 나고. 집이 아니라 별장에 온 것 같았다. 나는 알록달록 두꺼운 담요가 여러개 깔린 거실에 앉아서 봉순이 언니를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책은 어디서 구한건지, 공교롭게도 봉순이 언니는 너무 우리 언니 같았다. 우울한 표정으로 동생을 둘러업은 책 표지의 봉순이 언니 그림을 보며 언니 생각을 했다. 그때 우리 언니는 어디에 가있었더라? 떠올려보니 정말 온 가족의 생이별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언니는 기죽은 우울한 얼굴, 고요한 얼굴을 하고 가족들의 뿌리를 잡아 뒤흔들만한 사고를 치는 사람이다. 나는 언니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언니가 한창 전성기일 때 어렸다. 언니의 이것저것 각종 사고 일으키기 기량이 전성기였을 때 나는 조용한 어린이였다. 이건 모든 집안의 법칙이다. 자식이 2명일 때 들쑤시고 다니는 인간이 2명일 수는 없다. 한 명이 나대면 한 명은 철이 든다.

얌전한 어린이인 나는 언니가 정확히 어떤 사고를 치고 다니는 지 알 수 없었지만, 엄마는 옷을 차려입고 이모에 이모 남자친구들까지 모두 모여 다같이 진지한 얼굴로 나를 집에 혼자 냅두고는 어딘가로 출발하면 언니가 친 사고를 수습하러 가는 길이었다. 심지어 나 혼자 집에 남겨두고 외박까지 한다? 그건 언니가 진짜 대박 사고를 쳤다는 얘기다. 나는 알아서 조용히 집에서 잘 지냈다. 언니의 이야기는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거다.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예고편으로 해두자.


아빠의 부자 여친 집이 넓었어도 전처의 자식을 키우기는 불편했는지 나는 아빠의 여자 형제들에게 맡겨졌다. 큰 고모는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 기색을 숨기려고도 안 했고, 그 집에 있는 잠깐 동안은 내가 어떤 물건을 어떻게 만져도 다 구박 거리였다. 그때 나는 무의식에 방어막을 치고서 나에게 쏟아지는 신경질들을 막아냈던 거였는지, 기질적으로 무던한 심성이 날카로운 감정들을 알아서 막아줬던 건지 모르겠다. 너무 옛날 얘기고, 그 뒤로는 삶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라도 하듯이 좋은 인생을 펼쳐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제와서 그때의 처연한 정서를 꺼내 우려내기에는 내 기억력이 늙었다. 그 뒤로 살아온 좋은 시간의 연속이 나를 더 시니컬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이상하지,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더 활발해지거나 더 많이 웃게 되는게 아니라 더 세상 만사에 무심해진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뭐 이런거랑 비슷한 전개다.


어쨌든 이 얘기를 하는 것은, 신경질 많은 큰 고모네를 떠나 정 많고 눈물 많고 오지랖 넓은 작은 고모네로 내가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본게 듬직하고 우락부락한 작은 고모, 준수한 외모의 고모부, 새끼 짐승들 처럼 경계심 많던 4남매. 그 가족이 15평 아파트에 복닥복닥 드글드글 살고 있었는데, 오지랖이 태평양인 작은 고모는 오빠 딸래미 나한테 보낼라요, 덥석 나까지 자신의 그늘 아래로 불러 들인 것이다. 그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렇게 작은 아파트는 처음 본다고 생각했다. 하루 아침에 망한집들이 으레 그렇듯이, 망하기 직전까지는 잘 살았었기 때문에 나는 집도 절도 없이 남의 집에 이리저리 맡겨지는 천덕꾸러기 신세였음에도 이렇게 작은 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는 것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새끼 짐승들은 백수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돈 벌어오는 고모의 기세에 저 뒤로 물러나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를 관찰하고 있었고, 나를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애들은 처음이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아이들은 낯설었다. 정말 새끼 맹수들이라는 표현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아기맹수 말고 새끼맹수.

그때 내 나이 10살, 4남매는 각각 11살, 13살, 14살, 15살로 그 나이때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나이 차이로 촘촘하게 포진해 있었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무언가 도사리기 시작했다는 게 강렬하게 느껴졌을 때는, 나를 맡기러 온 아빠와 아빠의 애인이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하면서 나에게 용돈을 쥐어줄 때였다. 액수는 기억 안 나지만, 어른이 받기에도 큰 액수의 용돈을 쥐어줬다. 그건 오랫동안 안 찾아오겠다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찾지 않겠다는 뜻으로 건네는 큰 용돈을 종종 받아봤으므로, 나는 큰 용돈을 받는 일에 익숙했고 다만 그 순간 거실 뒤편에 모여있던 아이들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듯, 고요하게 뭉쳐지는 듯 뭔가 거실에 파동을 일으켰고 내가 그걸 느끼며 긴장했다는 걸 기억한다. 그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강하게 집중하는 공기가 나를 긴장하게 했다. 이 집에는 내 옷 하나 놓을 곳이 없는데, 나는 이 큰 돈과 함께 이 집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다. 나를 노리는 새끼 맹수들이 저기 있고.


아빠와 아빠의 새여친은 그렇게 떠났고, 나는 홀로 남겨지는데...

어떻게 새끼 맹수들과 최초로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어떤 문구점 앞에서 나를 꽉꽉 가까이 둘러싸고 그 용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 다 같이 상의한 장면이 기억난다. 나는 내 용돈을 그들과 같이 쓰려는 생각을 조금도 하지 않았는데, 걔네들은 이게 우리의 돈인양 열정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의견을 쏟아냈고, 내가 이건 내돈이라는 걸 기억해낼까봐 우리는 니편이야 우리는 한편이야 표정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마치 그런거지, 말은 너무 다정하고 친절한데, 다정한 말로는 숨겨지지 않는 몸의 열기가 나를 둘러싸서 나는 조금 겁 먹었고 그 열기가 내 돈에게 향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차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는 포위된 상황. 돈에 대한 열기를 숨긴 채 친밀함을 연기하는 새끼 맹수들은 정말 무섭다. 연기가 무르익지 않아서 눈으로는 광기가 퍼져나오는 걸 숨기지 못하는게 진짜 무섭다. 그리고 더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난 거기서 막내이기까지 했다. 난 그냥 우리가 한편인 척 아무것도 눈치 못 챈척 했다. 지금 만나도 못 이길 것 같다.

그 뒤로 내가 그 집에서 1년 동안 그들과 보낸 용광로 같은 세월은 정말 할 얘기가 많다. 세계는 알이고,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그랬지? 그곳은 내 알을 도끼로 내려쳐 부순 곳이다. 나 아직 안컸는데 응애? 하고 있었는데 전혀 안 듣고 내 알을 깬 다음, 멱살을 잡아 세상으로 내동댕이 친 곳이다. 이 얘기도 나중에 할 기회가 있을 거다. 어디서나 그렇겠지만, 청소년 5명이 같이 사는 집은 정글이다.



우리 작은 고모는 5명으로 늘어난 새끼 맹수들을 으르렁 한 번으로 다 제압하는 정글의 왕이었다. 나는 고모 옆모습만 봐도 무서웠다. 우리는 참치 한 캔을 따서 먹을지 말지도 고모한테 전화해서 허락을 받아야 먹을 수 있었다. 고모의 지배력은 주방장 깊이 처박힌 참치 한 캔에까지도 미치고 있었다.

근데 고모가 지배했던 그 아이들이 얼마나 강한 맹수였는지 고모는 알았을까? 내가 거기서 배운 싸움의 기술이 하나 있는데, 안경을 쓴 사람이랑 싸움이 붙으면 가장 먼저 안경을 뺏어 발로 밟아 부수면, 앞이 잘 안보이는 사람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안경을 뺏긴 사람은 순식간에 앞이 잘 안보이는 상황에 처하게 되고, 안경을 뺏겼다는 굴욕감과 함께 혼돈에 빠지게 된다. 당연히 전세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게 되고, 싸움이 끝난 후에도 부러진 안경을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삐뚤게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상대에 대한 나의 완전한 승리를 매일 확인할 수 있다. 상대도 나도.

그리고 그 안경은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먼저 부러지므로, 스카치 테이프가 어제보다 오늘 더 두껍게 감겨져있다고 해도 고모는 싸움이 추가로 있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가 없다. 싸움이 끝난 후, 눈물 범벅인 얼굴,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허허헙하고 아직 남아 있는 울음끝을 간헐적으로 훌쩍이며 부러진 안경들을 주워 테이프로 붙이고 있는 언니를 지켜본 나만 알 수 있다. 다른 애들은 그 모습을 봐주지도 않았다. 나는 테이프로 부러진 안경들을 붙이는 언니를 혼자 두는게 안 됐는데, 다른 애들은 그냥 놀러 나갔다. 물러터지고 순했던 그 언니는, 4남매 중 가장 큰 언니였는데도 자비 없는 동생들한테 그렇게 얻어터졌다. 지금 잘 살고 있으려나


고모는 집에서 매일 일어나는 잔혹한 전쟁들을 전혀 몰랐다. 적어도 내 짐작은 그렇다. 고모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저녁, 아이들은 너무 조용하고 얌전했기 때문이다. 차분히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책상으로 돌아가 책을 펼쳐 앉고...그건 고모가 정말 무서웠기 때문이다...그 정글의 왕이었던 고모.

그런 고모가 잘생긴 백수 고모부 앞에서는 토끼가 되었다. 고모랑 고모부 둘이 거실에 나란히 누워 티비를 보면 우리는 저 뒷 방으로 물러나 멀찌감치에서 간신히 티비를 봐야만 했는데 그럴 때 기분이 좋은 고모부가 고모 옆구리를 간지럼 태우면, 성량 너무 좋은 고모가 온 아파트에 다 들릴만큼 크게 웃었다. 여럿이 모여있는데 한 명이 너무너무 크게 웃으면 다른 사람들은 좀 의아한 기분이 되는데, 자주 그랬다. 고모는 고모부의 간지럼 한 방이면 그렇게 크게 웃었다. 그런 순간들 몇 번이면 고모는 영원히 고모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잘생긴 남자의 삶이란 저토록 손쉬운 것이다. 대학도 나오지 못한 여자가 혼자 벌어 오빠의 딸까지 다섯 아이를 먹여 살릴 만큼 돈을 벌어오는 수고는 잘생긴 남편의 눈웃음과 간지럼 한 방이면 잊혀지는 것이다.

나도 우연히 만난 웃음 한 번에 등에 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뚝 떨어져 나가는 듯한 순간을 자주 경험한다. 등에 진 가방 안에 삶의 문제들을 담고, 담고, 담고, 영차, 영차 심각한 얼굴로 걸어가다가 친구가 던진 팔랑팔랑 농담에 사실 가방에 아무것도 안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는 작은 기적 같은 순간들 말이다. 그 농담을 잘생긴 남편이 던지면 더 좋다 이거지?


잘생기고 예쁜 외모에 대해서 더 숙고하고 싶지만, 더 이상 떠오르는 영감이 없다. 그냥 사람들은 잘생기고 예쁜 외모를 아주 많이 좋아하고, 비논리적일 정도로 강렬하게 끌려간다. 식량 확보와 전쟁의 연속이었던 대부분의 인류 진화 과정 속에서 예쁜 외모를 선호하는 취향은 어떻게 발달된 건지 모르겠다.

나는 예쁘지 않은 여성으로 태어나 잘생긴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했다가 포기하고, 예쁜 사람들을 보고 비참해하고 부러워하며, 또 여기서 더 못생기게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지 나를 다독이고 일으켜가며, 또 아주 가끔은 이 정도면 선방한거다 가슴 팡팡치며 있는자신감 없는자신감 다 끌어모아서 살아간다.


잘생긴 남편에게 버림 받은 못생긴 어머니를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던 주인공이 커서 못생긴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 소설은 아주 솔직히 납득이 안간다. 아무리 그럴 수 있다고 상상하려 해봐도 납득이 안간다. 소설에 나오는 말처럼 이건 설득이 아니라 납득의 문제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면, 미인이 아닌 나는 가슴이 아프다. 이 책은 나를 오랫 동안, 자주 생각에 잠기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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