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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Sep 13. 2023

한국 자본주의의 오래된 미래를 찾아서

정주영(2015),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살아온 이야기』

한국에서 부자가 존경받기는 어렵다. 부의 원인, 과정, 결과에 대한 불신이 있어서다. 부자는 금수저 물고 태어났거나, 돈 버는 데 반칙을 일삼거나, 자기만을 위해 돈을 쓴다는 시선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회학자 송호근은 한국인의 평등주의 심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부에 대한 불신은 한국적 평등주의와 공명하며 종종 적개심으로도 발전한다. 한국이 고도성장한 자본주의 국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은 이와 무관한 몇 안 되는 부자다. 재벌로서는 드물게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다.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이 땅에 태어나서 : 나의 살아온 이야기」는 정주영이 부자에 대한 보통의 인식과는 다른 차원의 사람임을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역설적으로 정주영은 돈보다 중요한 가치를 평생 좇았기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이었다. 물론 역사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힘이 모여 바뀐다. 하지만 전쟁에서도 가장 뛰어난 장수가 선봉에 서듯, 역사 발전에서도 최선두에 서는 개인은 있다. 정주영은 그 자리를 당당히 받아들인 한국현대사의 거인이다.



     

이 책을 읽는 관점

     

이 책은 정주영이라는 성공한 기업인의 자서전이다. 그런데 개인의 일대기로만 읽기에는 서사가 방대하고 주제가 심원하다. 이는 정주영의 삶이 한국 경제성장의 역사를 그대로 관통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의 독해에는 역사적 관점이 필요하다. 이 책을 ‘흙수저 정주영이 열심히 노력하여 현대라는 대기업을 일궈냈다’고 이해하는 것은 독서의 가치를 반감시키는 일이다. 폐허와 빈곤의 시대에서 정주영의 기업 경영과 역사 발전이 상호작용한 동학을 포착해야 한다. 또한 역사는 미래를 위한 과거의 현재적 이해이기에, 지금의 현실을 바꿀 교훈도 함께 얻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과 변화’라는 관점에서 읽었다. 소규모 수공업에서 시작해 건설, 자동차, 조선, 해외진출, 올림픽 유치, 남북경제협력으로 대형화된 정주영의 사업 이력은 한국 자본주의 성장 과정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의 기원은 전후 형성된 이승만 정부의 미국원조경제와 박정희 정부의 수출 주도 공업화에 있다. 이 체제들은 정부의 정책과 기업의 투자가 시너지를 일으키며 작동했다. 특히 정주영이 일으킨 사업들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이를 통해 거대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다. 따라서 정주영은 자본주의 한국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 중 하나라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기업가의 자서전이지만,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담지하는 보편성으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 성장사의 관점에서 읽기도 좋다.




노동, 플래그십, 사회 공헌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한국 자본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한 정주영의 기업 경영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갖고 있었다.


첫째는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실천했다는 점이다. 언뜻 재벌 정주영과 노동은 서로 안 어울리는 개념들 같다. 그러나 정주영이 기업을 일으키고 키워나가는 방식의 근저에는 노동자의 철학이 깔려 있다. 노동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다. 뿌린 대로 거두고, 일한 만큼 얻는다. 여기에는 어떤 요행이나 우연이 있을 수 없다. 목표 달성이 어렵다면, 투입 노동의 규모와 강도를 늘려 나갈 뿐이다. 될 때까지 말이다. 경부고속도로, 포니, 미포만 조선소, 주베일 산업항, 서울올림픽, 금강산 관광이 모두 그렇게 이룬 성과들이었다. 소년 정주영이 부친으로부터 배웠다는,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돌밭을 일궈 한 뼘 한 뼘 농토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과 다르지 않다. 정직한 노동의 가치에 대한 강조는 이 책의 중요한 대목마다 등장한다. 그래서 정주영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재벌이라고 부르는 것을 싫어한다. 이는 겸손이나 사양의 의미가 아니다. 대신 그는 말한다.


나는 그저 꽤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며, 노동으로 재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일 뿐이다.


실제로 평생 그는 노동의 가치를 기업 경영으로 실천해냈다. 말쑥한 정장보다는 흙먼지 묻은 작업복이, 으리으리한 회장실보다는 거친 현장이 잘 어울렸던 ‘노동자적 기업가’ 정주영다운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정주영은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였지만,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말쑥한 정장보다는 거친 작업복일 것이다.

둘째는 미개척 영역으로 침투해 새로운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플래그십(flagship)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이미 안정화된 산업 구조에서 부를 축적하는 일은 쉽다. 그런데 창업 초창기부터 정주영은 산업 구조 자체를 개척하는 모험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동차 수리업에서 시작해 건설‧자동차 제조업으로, 다시 조선업으로, 그렇게 쌓은 노하우를 쏟아부어 해외 진출을 감행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다 옳은 방향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때까지 이룬 모든 것을 걸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이교도의 험지에 믿음의 씨를 뿌리는 ‘선교사’에 비유한다. 그런데 몇 세대 전 한국에서 정주영이라는 기업인이 그 선교사의 철학을 이미 구현했다는 것을 그는 아는지 모르겠다.


물론 이는 당시 박정희 정부가 추진했던 중화학공업화의 정책 지원을 받은 덕분이다.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조선소 건설 자금을 빌렸다는 유명한 일화에는, 정주영의 기지 못지않게 한국 정부의 보증도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화학공업화도 정주영의 조선업 도전과 마찬가지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정책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30년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냈지만, 과도한 불균형 투자와 오일쇼크가 겹쳐 국가 부도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만약 이 정책의 플래그십 역할을 한 현대가 없었다면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주영도 설명하는 바, 조선업만 하더라도 현대의 개척이 없었다면 후발업체들이 나타날 확률은 크게 낮아졌을 것이다. 그렇기에 정부 지원을 이유로 정주영의 선구자적 역할이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플래그십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이를 소명으로 받아들인 배포가 조명되어야 한다. 다음 문구는 그래서 인상적이다.


선발업체는 후발업체의 인력 양성소 역할을 하게 마련이다. … 그 인력들이 외국회사로 가는 것도 아니고 결국은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이니 크게 아까워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셋째는 기업 활동과 사회 공헌의 선순환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정주영이 자선사업가는 아니다. 그는 늘 이윤을 최우선에 둔 철저한 자본주의 기업가였다. 그렇지만 이윤과 공익을 하나의 사회적 맥락으로 통합할 줄 알았다. 이는 ‘이윤 발생 ⇨ 고용 창출 및 재투자 ⇨ 신산업 개척 ⇨ 추가 이윤 발생’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기업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회 공헌은 고용을 늘리고, 외화를 벌어오고,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이다. 물론 기업 외적인 기부 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파급효과 측면에서 후자는 전자에 한참 부족하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1960년대 이후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조선, 현대전자 등을 통해 일어난 고용과 투자의 파급효과가 대체 얼마일까? 아무리 유능한 경제학자라도 정확히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세간에는 정주영이 군사독재의 지원으로 부를 일군, 부도덕한 기업인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선입견에 가깝다. 책에서 드러나는 정주영의 자본주의에 대한 견해는 놀라울 정도로 유연하다. 특히 평등을 강조하면서 한국이 ‘유럽형 민주자본주의’로 진화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진보성마저 느껴진다. 유럽형 민주자본주의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자본-노동-정부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는 복지국가를 의미할 것이다. 실제로 현대가 국민경제에 기여한 방식이나 1992년 대선 통일국민당 정책 등을 보면, 이를 그저 수사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좋은 기업은 좋은 사회가 전제되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정주영이 평생 견지한 철학의 소산이다.



     

현대 한국의 자화상과 정주영의 유산

     

정주영은 1915년에 태어나, 1960~80년대에 전성기를 보냈고, 2001년에 타계했다. 그의 서사는 지금 2020년대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시절과 비교해 한국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경제규모에서 세계 10위 반열에 올랐으며 1인당 GDP 역시 G7 멤버 이탈리아를 넘어선다. 정주영이 미포만 사진 한 장 들고 조선소 건설 자금을 빌리러 나섰던 때와 비교하면, 말 그대로 상전벽해다.

현대울산조선소는 조선업이 뭔지도 몰랐던 나라가 아무것도 없는 바닷가에 지은 결과물이다.

그러나 외부 규모에 비해 내부 동력은 불안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 지 오래다. 수저계급론이 보여주듯, 노동소득에 대한 자본소득의 우위는 역전 불가능한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 노동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재테크 열풍이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 또한 넓어졌다. 일만 해서는 자수성가할 수 없음을 잘 아는 개인들이 노동자이기를 거부하고 투자자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 잘해서 승진 빨리 하는 사람들이 직장생활의 롤 모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고 재테크로 한몫 잡아 조기 은퇴하는 이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이는 개인들로서는 합리적 선택일 것이나, 사회적으로는 노동 숙련도와 생산성의 저하라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노동 대신 그저 돈을 순환시키며 차익을 노리는 금융이 대세가 될 때, 자본주의는 발전을 담보하기 어렵다. 여기에 현실로 다가온 저출산‧고령화까지 겹치면 한국은 저성장의 덫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일어난다.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많아졌다. 하지만 대규모 고용이나 원천기술 개발 투자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국 자본주의는 고용 없는 성장을 반복하며, 기술강국 일본의 무역보복에 속절없이 당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재투자하기보다는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막대한 이윤을 사내유보금으로 쌓아 놓고 부동산 투기의 큰 손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골목상권으로 들어가 쇼핑몰과 프랜차이즈 빵집을 무기로 만만한 소상공인과 경쟁한다. 그조차 귀찮으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며 경쟁 자체를 회피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개인 차원에서 노동의 가치가 사라진다면, 기업 차원에서는 혁신의 의미가 무색해진다.


화려한 외관 속 한국의 자화상은 이렇다. 분명히 경제는 성장하고 기업들은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고용은 늘지 않고, 기술력은 제자리이며, 개인들은 각자도생하고 있다. 현실이 이토록 냉엄한데 4차 산업혁명, 혁신성장 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담론들만 무성하다. 하지만 말의 상찬일 뿐, 실제로는 아무도 혁명하지 않고 혁신하지 않는다.

경부고속도로 옥천군의 당재터널은 불안정한 지반 때문에 공사 과정에서 큰 희생을 치러야 했다. 정주영의 현대건설이 흑자를 포기하고 공사를 강행해 개통 이틀 전 겨우 완공했다.

그래서 정주영의 유산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경영 철학은 내부에서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오늘의 한국 자본주의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정직한 노동의 가치를 기초로, 혁신의 플래그십으로서 미개척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며, 이윤과 공익이 조화를 이루도록 기업 활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요컨대 정주영의 기업 경영이야말로 혁명이고 혁신이었다. 혁명과 혁신은 모두 기존 체제와 기득권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정주영의 기업 경영이 바로 그러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여 수많은 직원을 고용하고, 대량의 외화를 벌어들였으며, 거액의 세금을 납부했다. 오직 노동으로 성과를 이뤘던 정주영의 우직하고 투박한 방식은 세련된 경영학적 개념으로 치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 보니 오늘날 그렇게도 강조하는 혁명과 혁신의 본질에 누구보다 충실한 것이 바로 그였다. 그렇기에 정주영을 지나간 시대의 옛사람으로 치부하기에는 이르다. 아직 그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 그는 한국 자본주의의 오래된 미래이기 때문이다.



     

한국 자본주의 '건국의 아버지들'

     

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한결같은 국민적 존경을 받는다. 여기에는 이념과 정파의 구분이 없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자유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건국의 아버지들은 뭔가 문제가 생길 때 미국인들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이 된다.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와 마주할 때마다, 미국인들은 건국의 아버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간다. 그들이 남긴 옛 기록을 뒤적이며 오늘의 해법을 찾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문화가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그런 통합의 역사적 상징이 없다. 한국현대사는 산업화 서사와 민주화 서사로 나뉜다. 둘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가치판단의 기준이 전혀 다르다. 존경받는 인물의 계보 역시 상이하다. 한쪽에서는 영웅으로 칭송받는 이가 다른 쪽에서는 대역죄인이 되기도 한다. 역사 해석이 지나치게 정치화되어서 일어나는 일이다. 정주영도 양 진영의 서사에서 평가가 꽤나 다르다. 산업화 서사에서는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신격화된다. 그러나 민주화 서사에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묶여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비판받는다. 그러나 양쪽의 평가 모두, 정주영의 객관적 실체와 업적보다는 이념적으로 덧씌워진 이미지에 치중하는 듯하다.


나는 정주영을 비롯하여 박태준(포항제철 창업자), 최형섭(KIST 초대 소장) 등은 산업화 서사와 민주화 서사 모두에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경제성장을 주도하며 우리나라가 민주복지국가로 진화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념을 떠나 후대에 귀감이 될 철학과 인품도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이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할 수 있다. 박태준이 타계했을 때 민주화 진영의 대표 작가인 조정래가 추도사와 평전을 쓴 일이 있다. 이런 사례가 더 많아져야 한다. 언젠가 정주영도 민주화 서사의 작가가 평전을 쓰기를 기대해본다. 그리하여 우리도 역사적 교훈을 전해주는 건국의 아버지들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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