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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Sep 17. 2023

공부하는 이유

학창 시절부터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 나를 아는 사람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너, 꽤 모범생 아니었어? 틀린 얘기는 아니다. 성적을 좋고 나쁨으로 굳이 나눈다면, 좋은 쪽에 속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수재도 아니었다. 어느 반에나 하나쯤 있는 고만고만한 모범생이었을 뿐. 초중고 12년을 개근했고 야간자율학습도 빠진 적 없었다. 그럼에도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이유는 있다. 나 ‘스스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뭔가가 알고 싶어서 공부한 적 없었다. 어른들이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다. 그건 공부를 했다기보다, 공부를 당한 것이었다.

     

처음으로 스스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군대에서였다. 이유가 좀 웃기다. 군입대 직전까지 학생회 간부 생활을 했었다. 학생회 간부의 중요한 덕목은 후배들이 데모질을 하게 꼬시는(?) 것이다. 방법은 다양하다. 밥이나 술을 사주기도 하고, (지방러의 경우) 생활의 대소사를 챙겨주기도 하며, 레포트를 대신 써주기도 한다. 그런 인간적인 신뢰가 쌓이면, 후배도 미안해서라도 한 번은 따라나선다. 하지만 이건 다 미봉책이다. 근본적인 해법은 지식과 논리로 설득하는 것이다. 후배들과 매주 세미나라는 것을 했었다. 주제는 사회과학... 을 가장한 사회 모순에 대한 분노(여러분 이 사회가 이렇게 불합리합니다)였다. 이러한 학습 내용에 수긍해야 후배들은 비로소 불굴의 민족해방전사가 되었다.

     

그런데 무식했던 나는 애로가 많았다. 말빨이 딸려서 후배들을 제대로 설득할 수가 없었다. 하긴 뭘 아는 게 있어야 설득을 하지.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결국 논리로 안 되니 감정을 앞세울 때도 많았다. 한심한 일이었다. 그 시절 많은 후배가 나한테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2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도 창피한 걸 알았다. 마침 학생회 생활에 회의도 들었다. 그래서 동기들에게는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 포장하고, 일단 군대로 튀었다.

      

군대(의무경찰)에서는 위경소 근무를 했다. 그 왜 경찰서 정문에 각잡고 서 있는, 덩치 좋은 경찰들 있잖은가. 나는 키 크다는 이유 하나로 그 일을 하게 되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땡볕이 쏟아지나, 똑바로 서 있어야 하는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 밤에는 편했다. 위경소 안에서 근무했기 때문이다. 고참들은 밤 근무 때는 공부를 해도 좋다고 했다. 나는 책을 가져다 읽기 시작했다. 전역해서 복학하면, 압도적인 말빨로 후배들을 제압할 요량이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시작한 일이었으나, 끝은 창대했다. 전역 때까지 제법 많은 책을 읽었다. 몇 권인지는 모르겠으나, 예스24 회원 등급이 최고 등급 바로 아래까지 올랐던 건 기억난다. 산 책은 이해가 되든 안 되든, (돈이 아까워서) 끝까지 다 읽었다.

     

이때 처음 읽은 책이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마르크스의 사상』이었다. 군대에서, 그것도 경찰이 이런 책 읽어도 되냐고? 고참들은 캘리니코스는커녕 마르크스가 누군지도 몰랐다. 어느 날 맞선임이 그거 무슨 책이냐고 하길래, 철학책이라고 했더니 두 번 다시 묻지 않았다. 이 외에도 조정래의 『한강』,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 등을 읽었다. 심지어 『한국사회구성체논쟁』도 읽었다. 1980~90년대 운동권 이론을 집대성한, 딱딱하고 현학적인 필치의, 무려 4권짜리 핵노잼 책이었다. 학생회실에서도 굴러만 다닐 뿐 아무도 안 읽는 책이었다. 나는 유식해지겠다는 일념으로 그것마저 읽었다.

     

학생회로 돌아와서 한동안 책 좀 읽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별로 오래가지 못했다. 아는 게 병이었다. 공부를 해보니 소위 운동이론이란 게 얼마나 노답인지 깨달은 것이다. 유식해지려고 공부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그 공부 접어야겠다는 역설적 결론에 이르렀다. 대신 제대로 된, 정식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이론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그런 허황된 공부 말고. 그래서 대학원에 갔다. 사회과학을 기초부터 다시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사회학을 새 전공으로 택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자로 살 생각이었다. 공부한 성과로 먹고사는 학자의 삶, 얼마나 멋진가?

     

실제로 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라 재미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연구실에서 밤새우고 기숙사 돌아가는 길에 본, 저 멀리 어슴푸레 동이 터오던 풍경. 그때마다 형언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대학원도 사람 사는 곳이었다. 타인과 비교가 안 될 수가 없었다. 나의 빈곤한 이론과 글빨은 수업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도드라졌다. 학위논문을 쓰면서, 오래 외면해왔던 사실을 결국 인정했다.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는 것. 나는 공부에 재능이 없다는 것. 그래도 2년은 정말 열심히 했기에, 떠나면서도 전혀 미련이 남지 않았다.

     

직업으로서의 공부를 그만두니 편했다. 그렇게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대학원을 떠나면서 공부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은 이어가겠다고 결심했었다. 그게 어디 말처럼 쉽나. 처음에는 학회도 찾아가고 논문도 읽곤 했지만, 얼마 못 갔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책은 꾸준히 읽었다. 전공과 무관한 과학계에서 밥을 먹게 되었기에, 과학책을 안 읽을 수 없었다. 또 내 업무는 글 쓰는 일이라, 글만큼은 좀 더 잘 쓰고 싶었다. 그 목적에 맞는 책도 읽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 사이에서는 공부하는 직장인으로도 통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 공부를 해왔던 걸까? 나는 그동안 어떤 목적이 먼저 있고, 그걸 이루려고 공부한다고 믿었다. 이 전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는 애초에 이유가 없다. 뭔가를 알았다는 것, 공부는 그걸로 의미를 다 한 것이다. 물론 인생에서 현실의 목표를 이루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필요한 학습은 공부보다는 기술에 가깝지 않을까. 공부는 그저 “왜?”라는 질문에서 발동해서 “아!”라는 감탄사로 끝나는 일, 그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즈음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계기는 있다. 어쩌다 보니 책을 내게 되어서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본다. 아내는 진작 그렇게 공부했으면 판검사도 되었겠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이 내 인생에서 가장 유의미한 일이 될 것임을 안다. 그래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꼭 그 목적 때문만은 아니다.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재미있다. 쓰려는 책의 작업은 과학과 역사의 큰 줄기를 따라가며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부분적으로 알고 있던 지식들이 큰 맥락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주 깨닫는다. 그럴 때마다 어떤 희열을 느낀다. 데카르트가 30년 전쟁의 혼란 속에서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세우려 했다는 것, 문과생 볼테르의 지적 전통은 이과생 뉴턴에서 시작한다는 것, 헨리 8세의 해군 대포 교체가 산업혁명으로 이어진다는 것, 재미있지 않은가? 세상에 내가 모르던 이런 꿀잼의 역사가 있었다니.

     

이 즐거움은 공부 본연에 충실한, 정말 아무 목적이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쓰면서도 회사를 다닐 것이다. 책이 잘 안 팔려도, 아마 안 팔릴 것이지만, 내 삶에는 영향이 없다. 생활에 필요한 돈은 회사에서 벌 거니까. 만약 이 책에 내 생계가 달렸다면, 나는 이 작업을 지금처럼 즐겁게 못 할 것 같다. 안 팔리면 어쩌나 하고 밤에 잠도 안 오겠지. 철학자 스피노자는 생계를 위해 안경을 갈고닦는 일을 했다. 이 안경사라는 직업이 어쩌면 스피노자가 위대해진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에게 철학은 말 그대로 공부였기에, 훨씬 더 즐겁게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내 공부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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