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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Oct 20. 2023

얼굴 없는 가수

책 작업이 어느새 막바지다. 본문의 약 80%를 탈고하니 출판사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휴가를 내고 서울에 갔다. 서울역에 내리니 감회가 새로웠다. 참 오랜만에 왔구나 싶어서. 나 완전 촌사람 다 됐다.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하도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려니, 노선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플랫폼이 헷갈렸다@0@ 합정까지 그 짧은 거리를 가는데 승차 플랫폼을 자꾸 틀려서 우왕좌왕했다. 이제 서울에서 어디 가려면 카카오맵은 필수가 됐다. 예전에는 눈 감고도 다녔는데.

     

출판사에 가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사실 이번에도 에디터 선생님이 역으로 나온다는 걸 내가 사무실로 가겠다고 했다. 그래도 이 출판사에서 책을 내는데 한번 구경은 해보고 싶어서. 그런데 알고 보니 본사가 아닌 일종의 사무소였다. 오피스텔을 임대해서 작업실(?)로 쓰고 있었다. 들어가니 10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인사를 해서 깜놀했다. 에디터 선생님 드리려고 성심당 튀소 세트를 사서 갔는데 후회했다. 이렇게 많을 줄 알았으면 몇 박스 더 사 올걸.

     

에디터 선생님이 글은 더 이상 손볼 데가 없다고 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업 초반 원고가 출판사 기획과 맞지 않아서 고생을 많이 했었다. 몇 번을 갈아엎고 다시 써서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었다. 에디터 선생님은 정말 고민을 많이 한 것 같다며, 피드백을 수용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 고마울 일은 아니었다.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니고, 무명작가가 책을 내는데 기회를 준 출판사에 맞추는 건 당연하다. 목차, 구성, 문장톤 등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었지만 대부분 사소한 것이었다. 이제 정말 마무리 작업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에디터 선생님으로부터 의외의 단어가 튀어나왔다. 마케팅이 제일 고민이라고 하신다. 으잉? 그런 것도 해주나? 출간 작가들 경험담 보면 책이 인쇄돼서 나오면 출판사 역할은 끝이라고 하던데. 에디터 선생님이 아니라며, 이제부터가 중요하단다. 책이 얼마나 팔릴지는 순전히 회사의 마케팅에 달린 거라며. 이 책도 최소 8,000부 이상은 팔아야 한단다. 귀를 의심했다. 8,000명이면 거의 1개 사단 병력이다. 아무리 내가 이 책을 썼지만, 그렇게 많이 읽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재차 물어보았다.(여기서부터는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그대로 옮겨본다.)

     

나 : 8,000부요? 대부분 초판 2,000부도 못 팔지 않나...요?

에 : 보통 그렇지만 우린 안 그래요. 8,000부는 나가야 기본은 하는 거예요.

나 : 그... 그렇군요. 뭐 많이 팔린다면야 저도 좋지만...

에 : 작가님 혹시 별명 같은 거 있으세요?

나 : 별명이요?

에 : 네, 이를테면 과학계의 이야기꾼, 뭐 이런 거.

나 : 없는데요(-_-). 저 근데 그런 건 안 했으면....

에 : 주위에 추천사 부탁할만한 유명 인사는 없어요?

나 : (한참 생각한 후) 음... 현택환 교수님이나 김빛내리 교수님은 제가 일 도와드린 적이 있어서 부탁은 할 수 있어요. 해주신다고 장담은 못 하지만.

에 : 그게 누군데요?

나 : 한국인 첫 노벨상 수상자 감이라고 얘기 나오는 유명한 과학자들인데...

에 : 그런 분보다는 출판계에서 유명한 분들이어야 해요. 김상욱 교수님, 정재승 교수님 같은.

나 : 그럼 어렵겠는데요.

에 : 사실 콘셉트가 애매해서 마케팅 방향을 잡기가 쉽지는 않아요. 작가님이 유명한 교수님이나 지식인은 아니니까, 일단 책 내용을 전면에 부각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반응이 좋으면 누가 쓴 거냐 이런 궁금증이 생길 거고... 작가님 이야기는 그때 하면 되겠죠.

나 : 그러니까 가요로 치면 얼굴 없는 가수라는 말이네요? 김범수 같은?

에 : 네?ㅋㅋㅋㅋ 아니 뭐 그렇게 까지는... ㅋㅋㅋㅋㅋ

나 : 제가 잘 생기기라도 했으면 마케팅에 도움이 됐을 텐데 아쉽네요.

에 : ㅋㅋㅋㅋ그래도 뭐, 똑똑하게(?)는 생기셨으니까...

나 : ...

     

사실 책 제목이 가장 고민이다. 『인문학 건너 과학』, 『관계로 이해하는 과학』이라는 제목을 준비해갔는데 에디터 선생님이 단칼에 안 된다고 하셨다. 너무 루즈하다며. 이대로라면 에디터 선생님이 소위 먹히는(?) 워딩으로 정하실 것 같다. 이 출판사 책들은 인문학 분야라도 제목이 다 예사롭지 않던데, 갑자기 두려워진다. 그래도 어쨌든 올해 안에는 책이 나올 것 같다. 기나긴 터널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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