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Feb 13. 2024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책 세 권

세상일이 의지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책을 좋아하지만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읽다가 어려워서 중도 포기하는 책도 정말 많다. 그중 가장 임팩트 있었던 세 권을 꼽아본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정신현상학』

     

대학원 생활의 매운맛을 처음 느끼게 해준 책이다. 첫 학기 사회학 이론연구 수업의 레퍼런스였다. 헤겔을 배우는 수업은 아니었는데, 고전 사회학을 시작하기 전에 헤겔에 대한 선행 검토가 필수라고 해서 읽었다. 담당 교수님은 우리나라 번역을 믿을 수 없으니 웬만하면 영어로 읽으라고 하셨다. 아니 번역이 돼 있는데 왜 영어로 읽어? 나는 꿋꿋하게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국역본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책을 펼치니 서문부터 범상치 않았다. 헤겔 센세는 이렇게 일갈하셨다.

     

“보통 책의 서문은 집필 동기와 배경을 서술한다. 하지만 철학서에는 그런 거 필요 없다. 철학은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으면서 으스대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쓸데없는 건 다 빼고 목적과 결론만 제시하겠다.”

     

크으 호연지기 한번 마음에 든다. 논지와 무관하게 변죽만 울리면서 분량을 잡아먹는 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역시 대학자의 책은 다르다며 본문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문은 헤겔 센세의 훼이크였다. 본문을 몇십 페이지나 읽어 내려갔으나 한 단락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개념도 낯설고 설명은 배배 꼬이는 데다 문장까지 만연체였다. 한 문장이 무려 대여섯 줄이 넘어갔다. 이보시오 헤겔 양반, 깔끔하게 결론만 말한다더니 이 무슨…

     

더욱 충격적인 일은 다음 날 수업에서 있었다. 나 빼고 죄다 책을 읽어왔고, 다들 이런저런 코멘트도 술술 덧붙이는 게 아닌가. 그것도 교수님이 읽으라고 한 영어 번역본으로. 심지어 독일어 원본으로 읽어온 굇수도 있었다. 그날 나는 입학 심사 과정에 뭔가 오류가 있어서, 떨어졌어야 할 내가 합격한 건 아닌지 의심했어야 했다.

     

카를 마르크스, 『자본』 2권

     

대학원 입학하자마자 선배들과 『자본』 세미나를 했었다. 내가 다닌 사회학과학과 이름과 달리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유일한 예외는 뭔가를 가르쳐줄 때였다. 다들 선생 본능 있어서 그때만큼은 친절했다. 물론 설명을 듣기 전에 이런 것도 모르냐는 쿠사리는 먹어야 했지만. 이런 똑똑한 선배들과 세미나를 하면, 평소 선망과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자본』을 어떻게든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냉큼 하겠다고 했다.

     

예상대로 『자본』은 길고 지루하고 노잼에다 어려웠다. 1권을 읽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세미나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발제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내 차례가 돌아왔다. 그때마다 온갖 해설서와 리뷰 논문과 인터넷 문서를 뒤져서 겨우 발제문을 완성했다. 그런 노력과 선배들의 해박한 지식 덕분에 1권을 끝낼 수 있었다. 선배들에게 고맙고 스스로 감개무량했다.

     

다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세미나는 중단되었다. 그래서 2권은 혼자 힘으로 읽어 보기로 했다. 어찌 됐든 1권은 뗐으니, 2권도 어떻게 읽어지지 않겠어? 하지만 아니었다(ㅋㅋㅋㅋ). 정말 징글징글하게 어려웠다. 『자본』은 정치경제학 책이지만, 1권은 기초 개념을 다지는 총론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철학 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권부터 비로소 경제학 전공 서적의 위엄드러난다. 난해하기로 유명한 자본의 재생산표식도 바로 이 2권에서 등장한다.

     

그렇게 읽어 보려고 한 2주 몸살을 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내 능력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지금도 굳이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를 교양으로 공부할 필요는 있지만, 그것은 마르크스가 포함된 사상사 책 정도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주위에서 『자본』을 읽겠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뜯어 말렸다. 전공자도 아닌데 굳이 안 그래도 된다고. 물론 요즘 같은 대난독의 시대에는 그렇게 말릴 사람도 없지만 말이다.

    

위르겐 하버마스, 『사실성과 타당성』

     

이것도 대학원에서 읽었던 책이다. 사회철학 세미나라는 철학과 수업의 교재였다. 수강생은 열 명 남짓이었는데, 나만 사회학과였다. 담당 교수님은 그런 나를 보고 아주 흡족해하셨다. 이건 사회학과 학생들도 꼭 들어야 하는 수업이라며. 그래서 타과생인 나는 발표를 빼주시겠거니 기대했는데, 그런 거 없었다. 꼼짝없이 책 하나를 골라 발표해야 했다.

    

후보는 셋이었다.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그리고 이 책. 나는 그나마 조금 익숙한 하버마스를 골랐다. 완벽한 실수였다. 읽어 보니 당최 뭔 소린지 이해가 안 됐다. 이 책은 민주주의 법이론을 철학적으로 다루는 데다가, 언어학적 문제설정까지 끼어든다. 말 그대로 대환장파티다. 이건 헤겔 때랑은 상황이 또 달랐다. 그때는 수강생들 사이에서 묻어갈 수 있었지, 이번에는 수업 내내 발표해야 한다고!

     

발표 준비하느라 3박 4일을 꼬박 새웠지만, 결과는 망이었다. 도대체 뭘 준비한 거냐며 교수님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당시 교수님의 코멘트다.

     

“자네가 이렇게 엉망으로 하면, 나 포함 여기 있는 사람들의 소중한 시간을 죄다 낭비하는 거야.”

    

교수님께 이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 죽고 싶었다. 고문과도 같았던 3시간 수업이 끝나고, 나는 수강생 전원에게 사과의 메일을 돌렸다. 그랬더니 마음씨 착한 수강생들이 답장을 보내왔다. 발표 충분히 좋았다며. 그중 한 분은 그 교수가 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감정적으로 디스했는데, 조금 위안이 되었다(…). 아무튼 이날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15년이 지난 지금도 이 책만 보면 흠칫 놀란다.

     


※ 한 줄 요약 : 독일인이 쓴 인문사회 고전은 그냥 스킵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