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김정준 작가님의 2024년 1월 24일 글 ‘단관 극장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어서 썼습니다.
대학에 입학한 1999년, 서울은 별천지였다. 적어도 막 자취를 시작한 지방러인 내게는 그랬다. 대학을 품은 그 거대한 도시는 자유분방함과 즐길 거리로 넘쳐났다. 아마 서울에서만 평생 산 사람은 특별함을 모를 게다. 나는 주중에는 학교생활(이라 쓰고 술자리라 읽는다)에 충실하고, 주말에는 무작정 거리로 나섰다. 인사동, 대학로, 경복궁, 남산, 한강, 신촌 등등. 그저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구경만 해도 재미있던 시절이었다.
종로는 그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혼자서도 자주 갔지만, 여자친구와 데이트하거나 친구들과 만날 때도 약속 장소는 늘 종로였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취방에서 가장 가까운 번화가였고, 아무리 서울이라도 한강을 건너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영화는 무조건 종로에서 보았다. 요즘 세대는 종로에 영화 보러 간다는 말이 이해가 안 될 게다. 하지만 종로3가의 서울극장은 (당시 기준)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곳이었다. 한석규와 심은하가 시대의 아이콘이던 시절, 둘이 나오는 영화는 대부분 이곳에서 보았다. 물론 이내 멀티플렉스가 유행해서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서울극장에서 본 마지막 영화는 2003년작 <올드보이>였고, <살인의 추억>부터는 강변 CGV에서 보았다. 그러고 보면 극장에서 멀티플렉스로의 전환은 한국영화의 뉴웨이브와도 맞물린다. 박찬욱, 봉준호, 최동훈 같은 거장들이 걸작을 쏟아내는 시점이 딱 그 무렵이었다.
종로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타워레코드다. 가난했던 대학생 시절, 생활비를 아껴서 열심히 샀던 유일한 물건이 CD였다. 타워레코드는 건물 하나를 통으로 차지할 만큼 대형 업체였다. 매장 내에는 여기저기 플레이어를 두고 미리듣기 서비스도 제공했다. CD가 그때의 내게는 비싼 물건이라, 여러 번 고심해서 들어보고 구매를 결정했었다. 2003년의 어느 추운 겨울날, 그곳에서 아바의 앨범을 샀던 기억이 난다. 난 그때 꽤 힘든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밤늦은 시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바의 CD를 재생시켰다. 그때 이어폰에서 <Thank You for the Music>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전에도 알고 있었던 곡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다르게 들렸다. 마치 노래에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종로가 늘 노는 공간은 아니었다. 그곳에는 젊은 날의 고민이 짙게 드리워 있기도 하다. 대학 시절 경험했던 집회는 대개 종로에서 열렸다. 민중대회, 노동자대회, 농민대회를 비롯하여, 이젠 제목도 기억 안 나는 온갖 현안 투쟁이 다 거기서 있었다. 보통 대학로에서 결의대회를 한 후, 종로를 행진하여, 광화문이나 명동성당 앞에서 정리집회를 했었다. 대부분 평화롭게 진행되었으나 가끔 아닐 때도 있었다. 종로4가 사거리에서 처음 전경들에게 두들겨 맞았던 날은 너무 억울해서 잠 한숨 못 잤다.
유독 기억에 남는 두 장면이 있다. 2003년 여름, 나는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어떤 중년 여성분에게 유인물을 건넸다. 그랬더니 그분은 받지 않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라고 꾸짖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난다. 나는 내심 이번에도 그럴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그 여성분은 어른들이 잘못해서 학생들이 이 고생을 한다며,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 손에 5천 원을 쥐여주었다. 시원한 거라도 마시면서 하라고.
반면 같은 해 가을의 기억은 또 다르다. 10월답지 않게 쌀쌀했던 어느 날, 종묘공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주말마다 반복되는 집회들에 질렸던 나는 어서 끝나기만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 옆으로 달려갔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시너 냄새와 탄내가 뒤섞이듯 느껴졌다. 집회에 참석한 한 노동자가 분신한 것이었다. 불과 내 옆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거리였다. 그때 난 온 세상이 먹구름으로 뒤덮이는 듯했고, 지금 서 있는 이곳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다만 그 감정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절망인지 좌절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종로의 추억은 20대 후반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30대 들어 삶의 기반을 대전으로 옮기자, 종로에는 더 이상 갈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40대가 된 지금, 아주 가끔 종로를 지날 때면 그곳에서 보냈던 20대의 시간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뭔가를 추억하기에는 너무 빠르게만 흘러간 날들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허무하다. 좋았던 젊은 날을 왜 그렇게 보내 버렸을까. 어쩌면 그곳에서 인연을 맺었던, 지금은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다.
너는 없지만 우린 없지만 내 가슴이 기억하니까 난 변했지만 달라졌지만 넌 아물지 않으니까 사랑만으로 사랑이 되던 그 시절을 돌아보니 너는 나의 20대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