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년 전이다. 내가 갓 이직한 지 얼마 안 돼서 합정동 출판사에서 일할 때다. 지방에 왔다 가는 길에, 수서역에서 SRT를 내려야 했다. 수서역 투썸플레이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시켜 놓고 종일 브런치에 과학 글을 쓰는 작가가 있었다. 마침 이번에 과학 교양서를 한 권 내볼까 하여 하나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인세를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써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요즘 팔리지도 않는 과학책 하나 가지고 에누리하겠소? 비싸거든 다른 작가에게 가서 쓰우."
대단히 무뚝뚝한 작가였다. 인세를 내려치지도 못하고 잘 쓰기나 해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스크롤을 올렸다가 내렸다가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더 쓰고 있었다. 멀쩡한 한 꼭지를 통째로 날리지를 않나, 단어 하나를 수십 번 바꾸지 않나, 영어도 못 하는 주제에 어디 논문을 인용한다며 몇 시간이고 PDF 문서를 들여다보기도 했다. 인제 다 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이러다가는 발행 일정이 꼬인다고 대표님한테 털릴 것 같았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이제 마감 쳐야 하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책을 낼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쓴다는 말이오? 작가님, 외고집이시구먼. 대표님한테 털린다니까요."
작가는 퉁명스럽게, "다른 작가에게 가서 쓰우. 난 안 쓰겠소." 하고 노트북 전원을 확 끈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어차피 내일 아침 회의 시간에 털릴 각이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써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망글이 된다니까. 과학 글이란 그래도 양자역학까지는 써야지, 고전물리학에서 끝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노트북을 숫제 옆으로 치워 놓고 태연스럽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리필하고 있지 않은가. 나도 옆에서 브런치의 비슷비슷한 글들을 넘겨 보다가 그만 지쳐 라이킷 누르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한참 지난 후에야 마우스를 이리저리 스크롤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글이다.
이틀 연속으로 대표님께 털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따위로 글을 써가지고 원고 청탁을 받을 턱이 없다. 출판사 본위가 아니고 작가 본위다. 대표작도 없는 주제에 인세만 되게 부른다. 출판 바닥의 룰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작가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작가는 수서역을 내려다보며 태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었다. 그때, 커피를 홀짝거리는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작가다워 보였다. 무릎 나온 츄리닝과 면도도 하지 못해 삐죽거리는 수염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작가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회사에 와서 원고를 내놨더니 직원들은 잘 썼다고 야단이다. 궤도가 쓴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책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교열을 볼 담당자의 설명을 들어 보니, 과학적 개념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인과관계 파악이 어려워 문과 독자들이 조기에 GG를 쳐버리며, 그렇다고 너무 안 들어가면 서사의 짜임새가 허술해지고 논증의 체계가 추상화되기 쉽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작가에게 퍼부은 쿠사리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명문은 완벽한 기승전결과 정교한 맥락의 연결을 중시했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난해한 지식도 체계적으로 담을 수 있으며, 독자의 문해력에 따라 다르긴 하겠으나 그래도 수회 독하면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요새 글은 세줄 요약 안 해주면 욕먹기가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글에 살을 붙일 때, 우선 개요를 세워서 뼈대를 단단히 한 다음에 적확한 개념어들을 더하고 그와 조화를 이루는 조사와 부사를 이으며 문장을 완성했다. 복잡한 문장은 주술호응이 맞는지를 계속 살피고 동어반복은 피하며 논리의 흐름이 엉키지 않는지를 점검했다. 가까이로는 단어와 개념의 적실성을 확인하고, 멀리로는 문장과 문단의 구조적 배치를 따져보았다. 이렇게 해야 무라카미 하루키가 강조한 "글의 리듬"이 살아난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요새는 chat gpt를 돌려서 ctrl c와 ctrl v를 반복한다. 금방 문장이 완성된다. 그러나 글이 견고하지 못하다. 그렇지만 요새 남이 보지도 않는 것을 며칠씩 걸려 가며 무라카미 하루키를 따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레퍼런스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짧은 논문 한 편을 쓰려해도 거기에 참고할 온갖 책과 논문 구독 서비스부터 구매해야 했다.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DBpia만 하더라도 스탠더드 구독 14,900원, 프리미엄 구독 29,800원으로 구별했고, 한울과 까치의 학술서는 몇 배나 비싸다. 한울과 까치란 인문학과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다. 이 책들은 어차피 살 사람이 연구자 등으로 정해져 있어, 출판사에서 애초에 가격을 무지막지하게 올려치고 인터넷에서 할인도 안 한다. 당연히 중고서점에도 매물이 안 나온다. 글만 보아서는 DBpia 논문을 참고했는지 한울과 까치에서 비싼 책을 사서 보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레퍼런스 목록을 믿고 사는 것이다. 신용이다. 지금은 그런 레퍼런스조차 없다. 어느 누가 남이 보지도 않는데 길고 자세하게 레퍼런스를 정리할 필요도 없고, 또 그것을 믿고 몇 배씩 값을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작가들은 인세를 5% 받든 10% 받든, 책을 쓰는 그 순간만은 오직 지적으로 유용한 문장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을 기울여 교양서를 만들어 냈다.
이 책도 그런 심정에서 썼을 것이다. 나는 그 작가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따위로 해서 무슨 작가질을 해 먹는담." 하던 말은 "그런 작가가 나 같은 편집자에게 캐무시당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좋은 책이 탄생할 수 있담." 하는 말로 바뀌었다.
나는 그 작가를 찾아가서 초코 브라우니에 드립 커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다음 일요일에 SRT를 타러 가는 길로 그 작가를 찾았다. 그러나 그 작가가 글을 쓰던 투썸플레이스는 폐업하고 없었다. 나는 그 작가가 앉았던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을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수서역으로 진입하는 SRT를 바라보았다. 육중하지만 날렵한 자주색 몸체의 열차가 미끄러지듯 역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 그때 그 작가가 철덕이라 저 기차를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글을 쓰다가 유연히 역으로 진입하는 기차를 헤벌쭉 바라보던 작가의 덕후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히 "덕중의 덕은 양덕이니라(德中之德, 洋德也)"라는 싯구가 새어 나왔다.
오늘 회사에 들어갔더니 신입 직원이 교열을 보고 있었다. 전에 교열을 보느라 사흘 밤낮을 새고 집에서 쫓겨날 뻔했던 생각이 난다. 교열지 구경한 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퇴고를 하거나 교열을 본다는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애수를 자아내던 그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몇 년 전 브런치에 글을 쓰던 작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 위 글은 패러디로서 100% 허구입니다. 특정 작가, 출판사, 편집자, 책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