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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25. 2024

브런치 단상

브런치를 처음에는 낙서장처럼 썼었다. 그때 쓴 글들을 지금 보면 가관이다. 정말 아무도 안 읽을, 마이너를 넘어 컬트적이기까지 한 글들이었다. 당연히 라이킷과 댓글도 거의 없었다. 글의 주제도 지금과는 딴판이었다. 아마 그런 걸로 글을 쓴 브런치 작가는 나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다.  

   

첫째로 내 브런치도 SNS의 성격이 커졌다. 이제껏 나는 SNS를 해본 적이 없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은 물론이고, 그 옛날 전 국민이 다 했다던 싸이월드조차 안 해봤다. 물론 귀차니즘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거기서 유통되는 글들도 도무지 성격에 안 맞았다. 허세 넘치고 자신을 과시하는, 항마력의 극한을 시험하는 글들. 이런 글들은 일단 읽는 것부터 괴로웠다. 너무 오글거려서.

그 시절 차마 SNS를 할 수 없었던 이유들.jpg


브런치는 이와는 결이 다르다. 물론 브런치에도 SNS에 어울릴 법한 글들이 꽤 올라온다. 그러나 잘 찾아보면 정말 작가라고 할 만한, 책만큼이나 양질의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다. 이런 분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고 한 수 배우고 싶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교류도 하게 된 것 같다.

     

그 덕분에 조회수, 구독자수, 라이킷수, 댓글수도 많이 늘었다(작가님들 감사해요ㅠㅠ). 변화는 정량 수치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분들의 영향으로 내 글도 많이 바뀌었다. 작가님들의 훌륭한 글을 읽으니, 그간 잘 몰랐던 내 글의 문제점도 보였던 것이다. 작가님들을 모델 삼아 스스로 바꿔보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딱딱한 논문에 가깝던 글이, 가독성 좋은 에세이에 가까워졌다고 느낀다. 나와 교류하는 작가님들께 가장 감사하는 부분이다.

      

둘째로 글의 주제도 많이 달라졌다. 아마 많은 분이 내가 과학 글을 주로 쓴다고 생각할 것이다. 브런치 초창기만 해도 과학 글은 음식으로 치면 사이드메뉴에 가까웠다. 그보다는 정치사회학 이론과 책 리뷰가 메인메뉴였다. 그런데 과학 글들이 계기가 되어 책을 두 권이나 내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업종을 안 바꿀 수 없었다. 비유컨대 내 브런치는 원래 커피숍이었다가 커피보다 빵이 잘 팔려서 베이커리로 재오픈한 경우다. 출판사에서 『최소한의 과학공부』를 홍보하면서 나를 두고 “문과생 과학덕후”라고 했는데, 나는 이 표현에 지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스스로가 아니라 출판사가 붙인 별명이지만… 어쨌든 사실과 거리가 있어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브런치가 SNS처럼 되니 이런저런 사건(?)도 겪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초창기에 구독자는 정말 소중한 존재였다. 그중 한 분이 어느 날 구독을 끊은 걸 알았다. 지금은 누군가 구독을 취소해도 그 사실 자체를 대부분 모른다. 하지만 그때는 구독자 수가 두 자리였던 시절이라, 누군지 대번에 알았다. 댓글도 몇 번 주고받았던 분이기에 충격이 컸다. 왜 갑자기 끊었지? 내가 댓글로 뭔가 실수했나? 직접 이유를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브런치 짬이 좀 쌓이니 이유를 알게 됐다. 내가 맞구독을 안 해서였기 때문인 듯했다. 요즘도 구독했다가 맞구독을 안 하면 곧바로 다시 취소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제는 일상이 된 일이지만, 그때는 이런 세태(?)를 몰라서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다른 분들 구독은 웬만하면 잘 안 한다. 감당이 안 될 것 같아서다. 지금 내가 구독하는 작가님들이 스무 명 조금 넘는데, 그중 꾸준히 글을 발행하는 분들은 열 명 남짓이다. 이 정도인데도 글들을 읽는 데 시간이 꽤 많이 든다. 이 규모가 몇 배가 된다고 하면, 글을 읽지 못함은 물론이고 댓글도 못 남길 것 같다. 가끔 보면 구독을 무려 몇천 명씩 하는, 내 기준에서 매우 신기한 작가님들도 있다. 나는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맞구독을 했지만 먼저 취소한 분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황당한 경우인데… 어느 날 구독을 끊으시길래 거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자기를 저격하냐며 내 글에 항의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 글과 달린 댓글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봤지만, 이 분이 화를 내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결국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좋게 풀고 댓글들도 다 지웠다. 그러자 이분이 다시 구독을 하셨는데, 나는 맞구독을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또다시 구독 취소 크리. 그래도 이분 덕분에 브런치에서 댓글 달 때는 아주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그래서 요즘은 글보다 댓글 쓰고 나서 퇴고를 더 빡세게 한다).

    

구독자는 아니지만 악플(?)을 단 사람도 있었다. 어떤 책에 대한 아주 긴 리뷰 글이었다. 그 글에서 나는 오랫동안 지지해온 어떤 정치세력을 비판하고 그에 대한 회한도 남겼다. 그랬더니 어떤 분이 댓글로 “그래서 000 찍었냐? 개소리하지 마라”라는 댓글을 달았다. 그것도 실명으로. 나는 내 글에 달리는 댓글에는 무조건 대댓글을 달지만, 이건 그냥 두었다. 뭔가 논리가 있는 반론이었으면 나도 예의와 논리를 갖춰서 대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댓글은 그럴만한 가치가 없었다. 그래도 댓글은 댓글이니, 원글과 함께 그대로 두고 있었다. 그러자 지인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곧 책도 나올 텐데, 이런 글은 내리는 게 어떻겠냐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 그렇게 했다. 그리고 정치 이야기는 가족뿐만 아니라 브런치에서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또 얻었다(배대웅님의 브런치 경험치가 1 상승하였습니다).

     

구독 작가님 글들은 빠짐없이 읽지만, 브런치 메인에 올라오는 글들은 읽지 않는다. 내 관심 분야가 아닌 글들(ex. 이혼, 요리, 퇴사, 여행)이 대부분이라서 그렇다. 그런 내가 보기에도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작가들 글이 있다. 아마도 브런치가 밀어주는(?) 경우인 듯하다. 브런치도 엄연한 편집국이고 자기들이 추천하거나 띄우고 싶은 작가가 있는 건 당연하다. 다만 무슨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한때 브런치가 영혼까지 끌어모아서 밀어주던 젊은 작가가 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하루 건너 하루씩 글이 픽되는 느낌이었다. 그쯤 되니 나처럼 무신경한 사람도 안 읽어볼 수 없었는데, 읽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필력이 너무 별로여서. 필력까지는 그럴 수 있다 쳐도, 자기의 경험과 통찰을 과장하려는 듯한 나르시시즘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분은 젊은 나이에 평범하지 않은 경험을 한, 예사롭지 않은 경력의 소유자이기는 했다. 그건 브런치 에디터 픽은 물론이고 출간을 할 만한 가치도 충분했다. 하지만 본인도 그걸 너무 잘 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쨌든 그 이후로 더욱 브런치 메인 글은 읽지 않고 있다(내 글이 메인에 못 가서가 아니다).

      

다 쓰고 보니 의도와 달리 브런치에 대한 디스성(?) 글이 된 듯도 한데… 그럼에도 나는 브런치를 사랑한다. 브런치 덕분에 글과 삶의 본보기가 되는 좋은 작가님들을 알게 되었고, 평범한 회사원이던 내가 책까지 냈기 때문이다. 요컨대 브런치는 내 인생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브런치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브런치는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브런치에게 술이라도 한잔 사고 싶은 마음이다. 사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브런치만큼 쾌적한 환경에서 자기 글을 꾸준히 써 나갈 수 있는 플랫폼이 없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또 읽고자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철학과 기준에 따라서. 그러다 언젠가 브런치를 그만두는 날이 온다면, 나는 굉장히 아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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