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Jul 26. 2024

초딩 입맛의 삶

나는 흔히 말하는 초딩 입맛이다. 빵, 소시지, 라면, 만두, 치즈, 초콜릿, 쿠키, 케이크,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만 보면 환장한다. 이런 걸로 삼시세끼를 때워도 끄떡없다. 도전해보지는 않았지만, 최소 한 달은 이것들만 줘도 불만 없이 살 것 같다. 영화 <올드보이>를 보면 15년 동안 군만두만 준다는 설정이 잔혹하게 묘사된다. 나는 그 영화를 볼 때도 좀 갸우뚱했었다. “음… 군만두 맛있는데… 그래도 15년은 무리겠지?” 아 참, 패스트푸드를 빼먹었다. 나는 몇 년째 버거킹의 킹 멤버십(VIP)을 유지 중이고, 주말 아침 식사는 늘 맥모닝으로 먹는다.

      

그 많은 초딩 입맛 메뉴 중에 나의 1선발은 부대찌개다. 부대찌개야말로 초딩 입맛의 올스타팀이다. 스팸, 소시지, 치즈, 라면, 수제비, 만두, 김치 등등 거를 타선이 없다. 대학 시절 학교 앞에 부대찌개 맛집이 있었다. 1주일에 서너 번은 꼭 갔었다. 졸업 후에도 은사님은 한 번도 안 찾아갔지만 이 집은 자주 갔다. 전 여친 현 아내도 신혼 때 이 집에 데려갔는데, 그때 진지하게 물었다. “근데 오빠는 부대찌개 말고는 좋아하는 음식이 없어?”(…) 부부 사장님이 오래 운영해온 이 집은 7년 전쯤 문을 닫았다. 이제 나이가 들어 힘드시다며. 그 소식을 들었을 때, LG 레전드 이병규가 은퇴할 때와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내 청춘의 일부가 또 이렇게 저무는구나.

      

부대찌개와 원투펀치를 이루는 2선발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다. 이것도 딱 내가 좋아하는 구성이다. 소시지, 계란, 베이컨, 감자, 토스트 등등. 여기에 미국식으로 팬케이크까지 들어가면 끝장난다. 23년 전, 입대 직전에 레스토랑 알바를 했었다. 7시에 출근해서 9시쯤 아침 서빙이 끝나면 이걸(팔고 남은 것) 직원들 식사로 줬었다. 이곳은 박봉에 근무환경도 열악해서 퇴사자가 매주 속출했지만, 나는 이 아침 메뉴를 먹는 재미로 6개월이나 다녔다. 알바들 중에는 최장기 근속자였을 것이다.

내 초딩 입맛의 원투펀치들. 그 옛날 월드시리즈를 평정한 랜디 존슨-커트 실링 급 조합이다.


초딩 입맛답게 못(안) 먹는 음식도 많다. 홍어, 개고기, 과메기 같은 거야 기본이다. 순대와 곱창을 제외한 내장 요리도 안 먹는다. 족발, 닭발 같은 발 요리도 안 먹는다. 이건 왠지 요리에서 발냄새가 날 것 같다(…). 채소 쪽으로 가면, 일단 고수를 기본으로 깔고, 고사리, 씀바귀, 취나물, 도라지 같은 나물 종류도 싫어한다. 인삼은 그 냄새조차 거부감이 든다. 고기 구워 먹을 때는 상추와 깻잎이 필요 없다.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안 먹는 음식의 최고봉은 따로 있다. 바로 “닭고기”다. 그럼 치킨도 안 먹냐고? 맞다. 치킨, 삼계탕, 백숙, 닭도리탕 등등 닭으로 만든 요리는 죄다 안 먹는다. 정확히 말하면 조류(鳥類)를 안 먹는다. 그러니까 오리와 꿩도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1년 중 복날이 제일 싫다. 복날은 학교 식당이든 직원 식당이든 죄다 삼계탕만 나온다. 팀 회식도 삼계탕이나 오리백숙으로 한다. 게다가 삼계탕을 파는 식당은 메뉴가 그것뿐인 경우가 많아서, 나는 가도 먹을 게 없다. 그래서 복날에는 회식 불참하고 혼자 맥도날드나 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먹으면 직빵으로 살찌는, 고칼로리 음식이라는 것이다. 살면서 늘 이게 고민이다. 원래 먹는 걸 즐기는 데다, 좋아하는 음식은 죄다 살찌는 것들이라, 조금만 방심해도 몸이 마구 불어난다. 14년 전 서울에서 대전으로 이직해 왔을 때가 절정이었다. 자취하다가 어머니와 살게 되니까 먹성이 그야말로 대폭발했다. 하루 세끼에 디저트와 야식까지 챙겨 먹었다. 거기에 회식도 자주 했었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몸무게가 93kg을 찍었다. 내 키는 182cm인데-_- 정말 눈을 의심했다. 좀 쪘겠다 싶어서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몇 달 만에 8kg이 불었을 줄이야. 이러다가는 100kg도 넘기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기나긴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 그 다이어트 방법이 궁금할 것이다. 사실 별거 없다. 그냥 굶으면 된다(…). 내가 진리라고 생각하는 다이어트 원칙이 있다. 하루에 세 끼 먹으면 찌고, 두 끼 먹으면 그대로, 한 끼 먹으면 빠진다는 것이다. 끼니를 거르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아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런 발상이야말로 다이어트 최대의 적이다. 요즘 같은 영양 과잉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만약 배가 고프지 않은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 그건 곧 살이 찌는 중이라는 의미다.

      

나는 이런 결론을 내리고 살을 빼기로 했다. 당연히 쉽지 않았다. 몇 달 고생해서 5kg이 빠져서 안심하고 원래대로 먹으면, 어느새 7kg이 다시 찌고는 했다. 그럼 눈물을 머금고 다이어트 재돌입. 이런 식으로 왔다리 갔다리 장기전으로 살을 뺐다. 결국 다이어트 시작 11년 만에, 고점 대비 16kg을 줄인 77kg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만 그 이후로 좀 더 쪄서 요즘은 79~80kg을 또 왔다리 갔다리 한다. 내 몸은 참으로 정직해서, 하루 두 끼만 푸짐하게 먹어도 고스란히 살로 킹반영된다. 간만에 회식이라도 하면 곧바로 80kg을 뚫어 버린다. 하아… 79는 괜찮아도 80은 안 되는데… 이게 앞 숫자가 주는 무게감이 천지 차이다. 80을 허용하는 순간 90도 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다이어트를 한다. 매일 체중계에 올라가되, 80이라는 숫자가 보이는 순간 먹는 걸 확 줄이는 것이다. 하루에 제대로는 한 끼만, 간소하게는 두 끼까지만 먹는다. 하지만 이럴 때 힘든 건 역시 나의 초딩 입맛이다. 특히 디저트ㅠㅠ 빵과 단 음식들을 달고 사는 나는 이것만큼은 도저히 못 끊겠다(흡연자들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택한 고육책이 밥 대신 쿠키나 케이크를 먹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살 빼는 효과까지는 없어도, 그럭저럭 현상 유지는 된다.

     

이미 마흔이 훌쩍 넘은 중년이지만 다이어트를 하려는 이유는 있다. 딸아이 때문이다. 가끔 딸과 아내를 데리고 공원이나 여행지를 가면, 우리처럼 놀러 온 가족들을 꽤 본다. 그런데 딸과 비슷한 또래의 애들 아빠들인데도 배 나오고 뚱뚱한 경우를 많이 봤다. 물론 타인을 대상으로 얼평이나 몸평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솔직히 그런 아빠들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저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요즘 애들은 영악해서, 애들끼리 부모의 외모에 관심도 많고 예민하다고 한다. 실제로 “아빠(또는 엄마)는 뚱뚱해서 창피하니까 유치원 오지마!”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다. 만약 내 딸이 그러면 자괴감이 들 것 같다. 그런 꼴을 안 당하려면, 부지런히 다이어트를 하고 옷차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몸무게 80kg을 넘기지 말자는 것과, 평상복으로 등산복을 입지 말자는 것(…) 뭐 옷을 패셔너블하게 입을 것까지는 없겠지만, 최소한 아재처럼 보이지는 말아야 한다. 옷 입을 때 중요한 건 상의보다는 하의다. 셔츠 종류는 크게 상관없다만, 바지는 꼭 슬림핏으로 입어야 한다. 그래야 아재 같아 보이지 않는다. 살이 찌면 슬림핏 바지를 입을 수 없으니, 이것도 다이어트와 연관된다. 초딩 입맛을 버리지 못하면서 슬림핏 바지를 입는 건 쉽지 않다. 결국 그렇게 평생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 같다.

먹성 좋은 초딩 입맛인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이유는, 다 이 녀석에게 미움 받지 않기 위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단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