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대웅 Aug 08. 2024

딸 키우기

이제 만 3살인 딸아이를 보면 신기하다. 나와 닮은 듯하면서도 안 닮아서다. 일단 이 녀석은 외모부터 나와 빼박이다. 딸이 아직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첫딸은 아빠를 닮는다고들 해서 걱정했었다. 에이 미신이겠지 설마 그러겠어? 근데 그거슨 사실이었다(…). 지인들은 딸을 보면 이렇게 말한다. “배대웅이 배대웅을 낳았네?!” 하긴 내가 봐도 ctrl c + ctrl v 수준이긴 하다.

나도 내 유전자가 이리 강할 줄 몰랐다.


딸은 날 닮아서 먹는 것도 잘 먹는다. 애 키우는 부모의 대표적인 고민이 밥 먹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졸졸 따라다니면서, 한 번만 먹자고 통사정하면서 먹여야 한다. 밥 한 끼 먹이는 데 1시간씩 걸리는 집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고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무거나 줘도 군소리 없이 참 잘 먹는다. 어릴 때 편식 대마왕이었고 지금은 초딩 입맛인 나와는 다르다. 딸은 아재 입맛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별 걸 다 먹는다. 매실 원액을 물에 타 마시는 3살은 이 녀석이 유일할 것이다.

     

음악 좋아하는 것도 날 닮은 것 같다. 차에 탈 때나 집에 있을 때나, 늘 자기 노래 틀어달라고 조른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노래는 <꼬마버스 타요>, <캐치! 티니핑>, <포켓몬스터> OST 중 하나다. 핸드폰을 건네주면 벅스앱에서 뭘 들을지 아주 신중히 고른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꽂히는 노래가 있으면 그것만 듣는다는 것이다. 요즘은 <티니핑 100>이라는 노래에 꽂히셨다.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과 비슷한, 티니핑들을 한 명씩 소개하는 노래다. 내게는 수능 금지곡과도 같다. 하도 들어서 가사를 다 외울 지경이고, 잊을만하면 그 깜찍발랄한 멜로디가 떠오른다. 언젠가 이 녀석도 내가 좋아하는 짙은, 백예린, 미스터 칠드런을 듣는 날이 오겠지ㅠㅠ

먹는 것도, 듣는 것도 좋아하는 딸.
생각해보니 아무 데나 잘 드러눕는 것도 딸이 나와 닮은 점 같다;;

   

반면 안 닮은 점도 있다. 어릴 때부터 혼자 놀기 대마왕인 나와 달리, 딸은 여럿이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한다. 연령과 성별과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딸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나랑 같이 놀자!”이다. 딱 딸의 나이를 대변하는, 상징성이 있는 말 같아서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만 이렇게 친구를 좋아하다 보니, 친구가 삐지거나 다른 애랑만 놀면 마음 아파하기도 한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딸이나 친구들이나 다들 어리니. 언젠가 딸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는 때가 오면, 이 말만큼은 해주고 싶다. 친구 눈치를 살필 시간에 너를 더 배려하면 좋겠다고. 인생에서 친구보다는 네가 즐거운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나랑 같이 놀자!” 딸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갓 태어난 딸을 보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아무 재능이 없어도 좋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상관없으니,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라고. 그만큼 부모로서 딸에게 뭔가를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만 책과 지식은 가까이했으면 싶었다. 공부 잘해서 출세하라는 뜻에서가 아니다. 몰랐던 것을 아는 것만큼 인생에서 재미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중년에 접어든 내가 요즘 절실히 느끼는 것이기도 하다. 궁금한 것을 공부해서 알아내는 일,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깨닫는 일만큼 즐거운 것이 없다. 이렇게 아는 게 많아지면 인생이 풍요로워지고, 미래의 가능성도 넓어진다. 회사원이었던 내가 책 쓰는 작가가 된 것처럼 말이다. 딸도 그런 앎과 지식의 즐거움을 체화했으면 좋겠다. 딸의 이름인 서우도 이런 바람을 담아서 지었다. 글 서(書)에 짝 우(偶), 책과 단짝이 되라는 의미다. 다행히 딸은 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직 글자는 모르지만(ㅋㅋㅋ)

아직 글자는 모르지만 책은 참 좋아한다. 물론 도서관도.


나의 작가 일을 아내가 전폭 지원해주는 이유도 딸 때문이다. 아빠가 책을 쓰면 딸에게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치겠냐며. 딸도 이제는 아빠가 책을 쓴다는 사실을 안다. 어디 가서 아빠 이야기를 할 때, 늘 우리 아빠는 책을 쓴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아내가 웃긴 동영상을 찍었다. 보다가 웃겨서 뒤집어질 뻔했다. 영화 <친구>에서 유명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패러디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책 씁니더ㅋㅋㅋㅋ


『최소한의 과학 공부』 에필로그에도 쓴 것처럼, 나의 모든 글은 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딸이 내 글을 읽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를, 인생을 즐겁게 할 지식을 얻기를 소망한다. 그럼으로써 작가인 아빠를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다.

아무 재능이 없어도 좋고,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괜찮아. 건강하고 행복하게만 자라줘.


매거진의 이전글 초딩 입맛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