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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ug 11. 2024

세 번째 책 출간

작가가 되니 삶이 단순해진다. 회사, 가사, 육아, 집필이 일상의 전부다. 사실 이전에도 내 생활은 복잡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도 만나고, 술도 마시고, 플스도 하고, 미드도 정주행하고는 했었다. 책을 쓰기 시작한 뒤부터 이 모든 활동이 사라졌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만 반복한다. 내가 전업이 아닌 겸업 작가라서 더 그럴 것이다. 여가와 자투리 시간을 몽땅 쏟아붓지 않고서는 책을 완성할 수 없다.

     

그래도 그동안 삶에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당연하지만, 주로 책에 대한 것들이다. 우선 첫 번째 책인 『최소한의 과학 공부』가 5쇄를 찍었다. 출간 7개월 만의 일이다. 책이 나오는 순간에도 과연 초판을 소진할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 그보다 훨씬 많이 팔려서 다행이다. 브런치에도 썼지만 이건 순전히 출판사 덕분(외쳐, 킹일북!)이다. 정작 출판사에서는 생각보다 책이 안 나간다며, 나보고 실망하지 않았냐고 걱정한다. 아니 실망을 왜 함? 요즘 같은 노잼유죄 유잼무죄 시대에 이런 책으로 5쇄나 찍었는데. 책을 내준 출판사와 책을 사준 독자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두 번째 책이 될 『(가제) 연구소의 탄생』도 어쨌든 순항 중이다. 이 작업은 『최소한의 과학 공부』 때보다 집필 난도가 훨씬 더 높다. 일단 레퍼런스가 매우 부족하다. 연구소의 역사를 다룬 선행 작업이 없다시피 하다. 따라서 이 책은 쓰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아마도 이쪽 분야에서는 처음 나오는 책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래서 안 팔릴 가능성도 크다. 기존에 나온 책이 없다는 건 그만큼 수요가 적다는 뜻이니.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타겟 독자의 상이 불분명하여 서사의 조직적 힘도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결국 출판사 대표님에게 SOS를 쳐서 만났다. 대표님은 브런치로 원고를 봤는데 잘하고 있다며, 몇 가지만 보완하면 되겠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더욱 다행인 점은 대표님도 이 책이 별로 안 팔릴 거라고 예상한다는 것. 그럼 대체 왜 이 책을 기획했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도 드는데… 뇌피셜이지만 대표님 본인이 궁금한 걸 나보고 쓰라는 듯한 느낌도 있다.

     

그리고 세 번째 책의 출간이 결정되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이 그랬듯, 이번에도 브런치 글이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발행한 <출간의 비결>이라는 글이다. 모 출판사 대표님이 논픽션 글쓰기 책을 쓸 작가를 찾던 중에, 우연히 이 글을 읽고 놀랐다고 하셨다. 평소 본인이 생각한 바와 매우 비슷해서. 그래서 내가 브런치에 쓴 다른 글들을 찾아보셨고, 그냥 넘길 수 없어 출간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작업은 글쓰기 방법론과 코칭이 주가 될 것 같다. 마침 나도 두 번째 책이 끝나면 다음에는 뭘 해야 하나 고민하는 중이기도 했다. 대표님과 몇 차례 의견을 나눠 본 뒤, 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생겼다. 특히 다음의 두 가지 점에 확 끌렸다.

      

첫째는 아직 출간 경험이 없는 신생 출판사라는 점이다. 대표님은 오랫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고, 얼마 전까지 온라인 교육회사의 콘텐츠제작본부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제 막 출판사를 직접 차리게 된 것이다. 나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책은 나름 이름 있는 출판사에서 냈다. 출판사의 뚜렷한 기획이 먼저 있고, 그 프로젝트에 내가 픽업되는 방식이었다. 반면 이 세 번째 책의 무게중심은 출판사보다는 내게 있다고 느낀다. 물론 논픽션 글쓰기 방법이라는, 출판사가 정한 틀은 있다. 그러나 그것의 구체적인 실현은 내 경험과 철학에 근거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아마도 작가로서의 내 삶이 대부분 투영되지 않을까 싶다.

     

이는 대표님이 만들어온 기획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이전 두 번의 출간에서는 출판사의 기획안이랄 것이 없었다. 회의 한 두 번만 하고,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출판사가 첫 제의 후 2주 넘게 시장 조사와 콘셉팅을 해서 상세한 기획안을 만들었다. 나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글쓰기에 대한 나의 이력과 지론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됨은 물론, 유사한 기존 책들과도 비교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님이 나에 대해 얼마나 알아보고 고민하셨는지 이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무명작가에 가까운 내가 이런 황송한 기획안을 받아도 될까 싶을 정도였다. 사실 나로서도 이제 첫발을 내딛는 새 회사와 일한다는 건 큰 동기부여가 된다. 마치 커다란 하얀 도화지를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어떤 색과 스타일로 그림을 그려낼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둘째는 책의 주제가 내가 잘 쓸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이미 출간한 두 권은 과학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나는 과학정책을 만드니 과학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을 업으로 삼은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길게 잡아 봐야 15년 정도다. 그래서 『최소한의 과학 공부』와 『(가제) 연구소의 탄생』은 완벽히 준비된 상태에서 풀어낸 이 아니었다. 나도 실시간으로 공부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그 즉시 채우면서 써내야 했다. 이를테면 이 책들 과학지식성장기이기도 했다.

     

반면 글쓰기라는 주제는 다르다. 그것은 내 삶을 관통하는 인생의 과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글쓰기는 늘 고민과 훈련과 개선의 대상이었다. 어떤 방법을 써서든 내 글을 더 좋아지게 하고 싶은 열망을 품고 살아왔다. 그 열망이 만들어낸 결과는 다양하다. 대학원 때 논문을 잘못 써서 공개 망신도 당했었고, 얼마 전에는 쓴 책이 인터넷 서점 대문에 걸리는 영광도 맛보았다. 이런 폭넓은 경험들이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조언과 교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쌓아온 경험, 그걸로 정립한 철학, 이를 현실에 적용한 기술을 조합하면, 책 한 권 분량의 글쓰기 방법은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다.

     

늦지 않게 세 번째 책의 출간이 계획되어 다행이다. 작가로서 나의 목표는 단 한 가지다. 이렇게 계속 책을 내는 것. 어차피 내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유시민도 아니고, 대작이나 베스트셀러를 쓸 수 없음은 잘 안다. 나는 그저 마흔이 넘어 얻은 이 작가라는 업을 이어 가고만 싶다. 200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스즈키 이치로는 242안타를 치며 타격왕, 신인왕, MVP에 올랐다. 그럼에도 다음 해 목표를 '레귤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최소 3년은 이렇게 해야 진정한 메이저리거가 된다는 취지였다. 무언가를 꾸준히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나도 작가로서 이치로가 강조한 '레귤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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