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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ug 13. 2024

노래의 사연과 의미

해바라기(1989), <사랑으로>

4자매 가난 비관 동반 음독
1명 사망 3명 중태 “막내 남동생 잘 키워주세요”     

27일 오후 2시 50분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 4의 43 양태범씨(44‧공원) 집 건넌방과 마루 등에서 양씨의 네 자매 순미(12‧공항중 입학 예정), 정미(10‧공항국 5년), 은미(8‧공항국 3년), 세원 양(6)이 극약을 마시고 신음 중인 것을 어머니 김옥순씨(36)가 발견, 병원에 옮겼으나 세원 양은 숨지고 나머지 3명은 중태다.
어머니 김씨에 따르면 인근 쌀가게에 쌀배달을 주문하고 돌아와 보니 세원 양은 대문 앞에, 나머지 세 딸은 방안과 마루 등에 쓰러져 있었고 아들 종모 군(3)은 방안에서 울고 있었다는 것.
이들 옆에는 먹다 남은 액체로 된 극약 2병이 놓여 있었고 큰딸 순미 양이 달력 뒷면에 검정색 사인펜으로 쓴 「엄마 아빠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걱정마세요. 나쁜 딸 올림.」 「동생들아 미안해. 나쁜 언니가.」라는 유서가 안방 책장 위에 놓여 있었다.
순미 양은 병원에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데다 자신은 중학교에, 넷째는 초등학교에 진학, 부모님 부담이 너무 커지게 돼 남동생과 부모님만이라도 잘 살게 해드리기 위해 동생들과 함께 극약을 마셨다”라고 말했다.     

- 동아일보, 1989년 2월 29일


내 또래에서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는 애국가급 노래이다. 온갖 행사에서 참 많이도 불렀다. 이 곡은 특히 수련회, 극기훈련, 여름캠프, 수학여행 등의 대단원을 상징했다. 다들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날 밤에 촛불을 켜고 갖는,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는 시간. 하나둘 훌쩍훌쩍 눈물을 흘릴 때쯤 어김없이 이 노래가 울려 퍼졌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심지어 대학 때 시위 현장에서도 불렀었다. 2004년 탄핵 반대 투쟁이었던 것 같다. 시민들도 많이 모이니 투쟁가보다는 대중적인 곡을 부르자며 지도부가 이 노래를 골랐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사랑으로>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어버렸다. 대동단결이 필요할 때마다 맥락 없이, 기계처럼 불리는 노래. 그러다 보니 가사도 저절로 외워졌다. 한 번도 문장의 뜻을 제대로 음미해본 적이 없었다.

     

이 노래에 사회적 배경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다. 도입부에 인용한 신문 기사가 그것이다. 해바라기의 이주호가 이 곡의 멜로디를 만든 것은 1986년이다. 원래는 서울 아시안게임을 위한 캠페인송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가사는 오랫동안 완성하지 못했다. 그러던 1989년 2월, 이주호는 우연히 신문에 실린 작은 기사를 보게 된다. 서울 공항동에서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네 자매가 음독자살을 시도한 사건이었다. 자살의 이유는 생활고. 중학교 진학을 앞둔 큰딸이 가난한 부모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동생들과 극약을 마셨다는 것이다. 어머니의 발견으로 첫째부터 셋째까지는 간신히 회복했지만, 막내딸은 결국 사망했다. 이 기사를 읽은 이주호는 단 2분 만에 <사랑으로>의 가사를 써 내려갔다고 한다.

     

1989년이면 선진국이 멀지 않았다며 온 나라가 들떴던 때다. 1980년대 중반의 3저 호황은 19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화룡점정을 찍었다. 그 여파로 부동산과 증권 시장도 활황을 맞았다. 급격한 경제성장은 수많은 졸부를 만들어냈다. 때마침 해외여행과 수입도 자유화되면서 이들은 단군 이래 최대의 풍요를 누렸다. 다만 그것은 빈부격차의 한 단면일 뿐이었다. 부동산 투기로 일확천금한 사람도 있었지만, 빈민촌에 거주하는 사람 또한 많았다. 올림픽을 앞둔 정부는 이 달동네와 판잣집들이 외국인 보기 안 좋다며 대대적인 철거를 단행했다. 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강제로 이주당해야 했다. 이때의 부조리와 갈등을 그린 다큐멘터리가 바로 1988년작 <상계동 올림픽>이다. 위의 신문 기사에 등장한 공항동의 가족도 이런 삶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항동은 상계동 철거민들이 이주한 곳이기도 했다.

     

공감 능력이 심히 부족한 나도 이 사연을 알고 나니 <사랑으로>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이 노래는 모두 사랑하자는 허공에 떠도는 호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수백 번은 따라 불렀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는 6살 아이의 비극적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부모가 경제적 부담을 덜기를 바라며 죽음을 택한 아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리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발견한 부모는,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까. 나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감정들이다.

     

흔히 아름답고 시적인 가사를 문학적이라고 한다. 이 <사랑으로>의 가사는 문학을 넘어 철학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갖는 근원적 의미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사가 이주호가 기독교인임을 고려하면 종교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문학, 철학, 종교, 어느 관점에서 봐도 이 <사랑으로>의 울림은 크다. 그것은 고난과 아픔을 겪는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위로를 건넨다.

      

고등학교 때부터 포크는 즐겨듣던 장르였다. 하지만 동물원과 여행스케치에 비해서 해바라기는 후순위였다. 아무래도 나는 해바라기의 전성기와는 거리가 먼 세대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나중에 <내 마음의 보석상자>, <모두가 사랑이에요>를 알고 나서는 꽤 즐겨 듣는 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랑으로>야말로 해바라기, 나아가 한국 포크음악의 위대한 성취를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한다. 학창 시절 아무 감흥 없이 따라 부르던 노래가, 그 사연을 알고 의미를 되새기니 새롭게 다가온다. 나는 <사랑으로>의 담담하면서도 무한한 힘이 느껴지는 메시지가 참 좋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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