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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21. 2024

출간의 비결

책을 내니까 주위에서 신기하게 여긴다. 브런치에서는 출간 과정을 상세히 썼지만, 현실에서는 갑자기 책이 띡 나오니 더 그런 듯하다. 아무 정보 없이 서점에 갔다가 내 책을 보고 놀라서 연락한 지인도 있었다. 저자명만 보고 긴가민가했다가, 이력을 보고서야 나라는 걸 알았단다.

     

그래서 다들 궁금해한다. “작가도 아니면서 어떻게 책을 낸 거야?” 나는 대충 이렇게 답한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글을 썼는데, 그걸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내게 됐다” 대부분은 무슨 책을 그리 쉽게 내냐며 의아한 반응을 보인다. 일부는 그럼 나도 출간을 해야겠다며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이해 안 된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건 마찬가지다. “너 브런치에서도 듣보던데? 뭔가 다른 비결이 있는 거 아냐?”

     

비결을 과연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출간은 어렵다면 어렵고, 또 쉽다면 쉬운 일이다. 출간의 가장 흔한 방법은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확률은 1%가 채 안 된다. 일례로 내 책을 낸 출판사는 최근 몇 년간 투고로 출간한 책이 단 1권뿐이라고 했다. 반면 내 경우는 브런치 글을 보고 출판사에서 제의해왔으니, 이보다는 쉬웠다. 다만 이건 특수한 사례에 가깝다. 출판사의 기획과 내 글이 서로 잘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다. 우연이 많이 작용한 결과인 셈이다.

     

그럼 출간은 결국 우연의 산물인가? 그렇지는 않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글의 완성도다. 그게 된 다음에야 우연이든 로또든 기대해 볼 수 있다. 즉, 좋은 글이야말로 출간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다른 것들, 예컨대 투고 매체나 홍보 방법 같은 요소들은 곁가지다. 소개팅할 때 남자는 여자가 마음에 들면 지구 밖에서라도 연락을 한다. 출간도 비슷하다. 글만 좋다면 아무 데나 걸어놓아도 그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반드시 생긴다. 출판업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분들은 밥 먹고 하는 일이 남의 글을 읽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브런치도 꽤 많이 본다. 따라서 좋은 글은 어떻게든 눈에 띌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좋은 글이란 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다만 몇 가지 기준은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는 브런치이니 브런치를 예로 들어보자. 브런치에는 구독자와 라이킷이라는 성과지표가 있다. 그럼 구독자 라이킷이 많은 글은 출간 확률 높아지는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브런치에서는 좋은 글일지 몰라도 책으로서는 좋은 글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브런치에서 인기를 얻는 글의 패턴은 SNS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우선 길이가 짧아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즉 브런치 인기 글의 비결은 ‘분량의 간결함과 내용의 보편성’에 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책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다. 일단 책은 최소 200페이지는 넘어가야 한다. 브런치나 SNS에서 통용되는 짧은 글로는 채우기가 만만치 않은 분량이다. 공감에만 치중하려는 태도도 마이너스가 된다. 공감을 많이 얻으려면, 결국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 위주로 서사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면 메시지도 흐리멍텅해진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뻔한 이야기를 책으로 내주는 출판사는 없다. 적어도 책을 내려면, 반골 기질까지는 아니어도, 기존의 결에서 벗어난 관점과 작법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출간이 목표라면 발상부터 바꿔보는 게 좋다. 아예 구독자나 라이킷이 적거나, 에디터 픽이 안 될만한 주제를 노려서 쓰는 것이다. 내가 만나본 편집자들도 브런치를 꽤 보는 편이었지만, 구독자, 라이킷, 에디터 픽 여부는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었다. 1969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독일 생물학자 막스 델브뤼크는 “유행하는 과학을 하지 말라(Don’t do fashionable science)”라고 했다. 출간을 목표로 하는 작가들도 이 문장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가만의 특장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오리지낼리티라고 해도 좋고, 전문성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그게 나의 경우는 전공(사회학)과 직업(과학정책)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사회학 전공자 중에 과학정책 업무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 두 가지 덕분에 과학을 사회와 접목해서 서술하는 작업이 가능했고, 이는 책으로 낼 만한 오리지낼리티가 있는 것이었다(라고 내게 출간을 제안한 편집자 선생님이 말했다). 이건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개성이 있다. 관건은 그걸 발굴해서 책으로 쓸 수 있도록 조직하는 것이다.

     

글 제목은 출간의 비결인데, 뻔한 일반론만 늘어놓은 것 같다. 마치 “서울대 가려면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라”와 비슷한 느낌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출간에는 특별한 왕도가 없으니. 고3이 국영수 공부를 반복하듯, 작가가 좋은 글을 많이 쓰면 출간의 확률이 높아진다. 단언컨대 그 외의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사족으로 한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이고자 한다. 에세이는 피하라는 것. 에세이는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다. 당장 브런치 글만 봐도 절대다수가 에세이다. 그것도 그 옛날 『샘터』나 『좋은생각』을 연상케 하는 감성 에세이들. 그런 글이 나쁘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새로이 출간하기에는 이미 많이 소모되어온 레드오션이라는 뜻이다. 나와 일한 편집자 선생님도 에세이는 충분히 검증된 초인기 작가나 유명인에게나 제안한다고 한다. 하긴 그 무라카미 하루키조차 소설로 대성한 다음에야 에세이를 다. 그러니 출간이 목표라면 에세이는 지양하자. 나만의 사유와 개성을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독자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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