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은 “실제 사건이나 사실에 관한 글”이라는 정의만으로 다 담아낼 수 없다. 전기, 칼럼, 에세이, 평론, 교양 등의 장르가 각각의 전통과 개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논픽션이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결과물이 다르다. 기자는 취재와 인터뷰로 모은 1차 자료가 돋보이고, 소설가는 문장과 표현의 미감이 빛난다. 비전공자가 집요한 조사로 대하 역사서를 완성하기도 하고, 인문학도가 대중적인 영화평론을 선보이기도 한다. 학문적 경력 없이도 교양서를 써서 수백만 독자를 모으는 작가도 있다.
그래서 논픽션 읽기는 작가라는 존재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이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다섯 명의 작가가 있다. 월터 아이작슨(전기), 무라카미 하루키(에세이), 시오노 나나미(역사), 이동진(평론), 채사장(교양). 이들의 글쓰기는 학문이나 제도적 권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공통점은 하나다. “좋아하는 분야를 깊이 팠고, 파다 보니 쓸 말이 넘쳤고, 쓰다 보니 작가가 되었다”라는 것. 그러니 초보자 입장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길잡이는 없다. 다섯 작가가 어떤 배경에 있었고, 무엇을 어떻게 썼는지 함께 살펴보자.
월터 아이작슨은 세계적인 전기 작가다. 그는 <타임>의 기자와 편집장, CNN의 최고경영자를 지낸 언론인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보도 기사와 같은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문체가 특징이다. 장면 전환이 빠르고, 매 장의 초입부터 갈등의 쟁점을 부각해 독자의 호기심을 끌고 간다. 그런데 그가 언론사에서 배운 것은 문장력만이 아닌 모양이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는 데 탁월하다. 스티브 잡스도 “아이작슨은 털어놓게 하는 능력이 있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렇듯 그는 신뢰를 바탕으로 인터뷰이를 붙잡아 끝까지 듣고, 서로 모순되는 증언을 가려내 사건의 타임라인을 세운다. 그의 전기는 취재와 경청의 훈련 위에 서 있다.
아이작슨은 ‘천재 전문 작가’라는 평을 듣곤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벤저민 프랭클린, 헨리 키신저,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등 역사를 바꾼 거인들의 전기를 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는 ‘천재성’보다는 ‘혁신’에 있다. 실제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똑똑하기만 한 사람은 어디에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다른 상상력과 창의력, 혁신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혁신은 어떤 추상의 선언이 아니다. 그보다는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는 구체적 행위다. 그래서 그의 전기는 주인공들의 명석한 두뇌를 조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분야를 연결하거나, 당대의 상식과는 정반대 선택을 감행하는 모험의 순간에 집중된다. 다빈치가 회화와 해부학을 넘나들었고,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을 결합했듯, 혁신은 늘 경계를 허무는 자리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이작슨의 전기는 ‘교차’라는 키워드가 중심이 된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우선 개인과 시대의 교차다. 즉 그는 “한 인물의 삶 × 시대의 구조”라는 프레임을 구축하고, 개인의 결정을 그 시대의 역사적 맥락 속으로 배치한다. 예컨대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에서는 아인슈타인을 상대성이론의 혁명가로 그리면서도, 전쟁과 망명, 핵 시대의 윤리라는 맥락을 더해 과학자-지식인-시민의 복합적 캐릭터를 조명한다. 마찬가지로 『스티브 잡스』에서는 1960년대 신좌파 운동과 히피 문화 속에서 잡스의 철학이 형성된 과정을 추적한다. 잡스라는 인물을 통해 기술혁신과 시대정신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셈이다. 『코드 브레이커』에서는 제니퍼 다우드나와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의 유전자 편집 기술 이야기뿐 아니라, 과학자들의 협업과 연구소라는 제도적 환경이 갖는 중요성도 다룬다. 과학기술 혁신의 군상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이는 전략이다.
이러한 교차는 과학기술과 인문학에서도 선명히 드러난다. 아이작슨은 역사와 문학을 전공했지만, 과학의 원리를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에서는 물리학의 개념들을 시각적 비유와 인간적 서사로 풀어냈다. 또한 『코드 브레이커』에서는 분자생물학의 난해한 실험을 연구자의 고민과 윤리 논쟁 속에 배치했다. 덕분에 독자는 수학 공식이나 염기서열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 선택, 가치관을 통해 과학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작가로서 아이작슨의 철학이기도 하다. “과학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비로소 가치가 창출된다.”
물론 그가 영웅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잡스와 머스크 같은 거물들에게 관대해서 전기가 곧잘 ‘위인 서사’로 흐른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그의 책은 여전히 방대한 독자층을 사로잡는다. 그의 전기는 거창한 교훈보다 흡인력 있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이렇게 강조한다. “세상에는 설교하려 드는 사람이 너무 많다. 차라리 멋진 이야기를 들려줘라. 그러면 사람들은 스스로 메시지를 깨닫는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에서도 독보적 매력을 발휘한다. 그는 등단 이후 틈틈이 에세이를 발표해 왔고, 이제는 이 분야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정작 본인은 에세이를 두고 “맥주회사가 만드는 우롱차 같은 것”이라며 부업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러나 독자 중에는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좋아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만큼 그의 에세이는 ‘하루키 월드’로 들어가는 가장 가까운 입구 역할을 한다.
하루키 에세이는 간결하고 경쾌한 문체, 그리고 위트로 유명하다. 소설에서 보여주는 세련된 문장과 예민한 감수성이 그대로 발휘된다. 그는 “많은 것을 관찰하되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이 소설가의 업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물과 현상을 오래 지켜보고 의외의 포인트를 포착해 내는 감각이 에세이에서도 빛을 발한다. 보통 그의 소설은 현실이 오컬트나 판타지 세계와 기묘하게 엮이는 구성을 취한다. 하지만 에세이에서는 이런 상징을 거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직설적으로 담아낸다. 그래서 에세이에서 하루키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독자들이 많다.
원래 그는 대학을 마치고 재즈 바를 경영하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그러던 1978년 어느 날, 도쿄 진구 구장에서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야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나도 소설을 쓸 수 있겠다”라는 영감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렇게 돌연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서 세계적 거장이 되었다. 이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살던 사람이 문득 작가가 되었다”라는 이력은 에세이에서도 일관되게 흐른다. “어쩌다 작가가 된 사람”인 만큼 에세이에서도 거창한 메시지나 교훈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보고 느낀 것들을 담백하게 풀어내는 작법에 충실하다. 그 편안한 필치는 잘 조율된 재즈 연주처럼 독자를 가볍게 감싸 안는다.
하루키 에세이의 매력은 폭넓은 소재와 진솔한 시선에 있다. 여행기에서 르포르타주까지, 자신이 흥미를 느낀 주제는 뭐든 글로 옮겼다. 이를테면 『먼 북소리』는 그가 막 전업 소설가가 된 1980년대에 유럽에 머물며 쓴 여행기다. 그리스의 섬과 이탈리아 골목을 배경으로 현지인들의 일상을 관찰하며, 소설가로서 창작에 대한 고민도 함께 녹여낸다. 실제로 그는 길 위에서 본 사소한 장면들을 곧바로 글쓰기의 화두로 연결한다. 이로써 『먼 북소리』는 여행의 낭만적 기록을 넘어, 하루키의 작법과 감수성을 드러낸 초기의 자화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의 색깔은 전혀 다르다. 1995년 도쿄 지하철에 사린가스를 살포한 옴진리교 테러 사건을 르포 형식으로 다뤘다. 피해자들과 옴진리교 신도들을 인터뷰하여 엮은 이 책들은, 사회파 작가 하루키를 세상에 알린 이정표적 작품이다. 개인의 내면적 고독에 집중하던 하루키가 처음으로 사회적 참사와 집단적 경험을 다뤄서 화제가 되었다. 1990년대 미국에서 체류하며 쓴 『이윽고 슬픈 외국어』도 여행기이자 사회파의 성격이 중첩되어 있다. 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나 걸프전 직후 미국 사회의 애국주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에피소드들이 섬세하게 드러나 있다. 제목처럼 “슬픈 외국어”를 익히는 고충과 더불어, 낯선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는 예리함이 돋보인다.
이렇듯 하루키는 여행, 음악, 사회, 일상 등 자신이 관심을 둔 모든 주제를 에세이로 승화시켰다. 뛰어난 작가는 무엇을 써도 결국 잘 쓴다는 진리를 증명한 셈이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쓴다”라는 그의 신조는 초보 작가들에게도 교훈을 준다. 좋아하는 주제,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있다면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자기 스타일대로 써보라는 것. 소설과 에세이를 넘나드는 하루키의 글쓰기는, 평범한 사람도 자기만의 이야기를 밀고 나가면 누구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듯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15권에 달하는 대하 역사 논픽션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하다. 그녀는 ‘역덕후(역사 덕후)의 전설’로도 불린다. 10대 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읽고 서양 문명에 심취하여, 혼자 이탈리아로 건너가 역사를 독학했기 때문이다. 이후 『르네상스의 여인들』,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같은 작품으로 이름을 알렸고, 1990년대부터 쓴 『로마인 이야기』는 일본과 한국에서만 수백만 부가 팔렸다. 방대한 사료를 모으고 현지를 답사하는 집념, 그리고 대중을 사로잡는 글솜씨 덕분에 그녀는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 작가가 되었다. 이 모든 게 그저 “좋아서 시작한” 열정 하나로 이뤄낸 성취라서 더 놀랍다.
시오노 작품의 최대 장점은 역사를 한 편의 드라마처럼 생생하고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는 것이다. 흔히 역사서는 딱딱하고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런데 그녀의 역사 글은 다르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소설처럼 빠져들게 된다. 정사 『삼국지』보다 나관중이 각색한 『삼국지연의』가 더 흥미롭듯, 사실 기록이 드라마적 서사로 재구성될 때 독자는 비로소 몰입한다. 플루타르코스가 『영웅전』에서 인물들의 실제 행적에 일화와 대화를 곁들여 극화한 것도 같은 이유다. 시오노의 역사 서술 역시 이 전통 위에 서 있다. 학술적 엄밀성보다는 이야기의 힘을 살려, 역사를 살아 있는 인간 드라마로 바꿔놓는 것이다. 그녀의 지론이다. “역사는 위대한 교훈인 동시에 탁월한 오락이다.”
시오노의 역사 논픽션은 『로마인 이야기』에서 정점을 이룬다. 15권에 걸친 이 대작은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이어지는 로마사를 드라마적 스펙터클로 그려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처럼 유명한 영웅들을 중심으로, 평범한 조연들에게도 정밀하게 서사를 배분하여 로마라는 집단적 행위자의 형상을 구축했다. 이러한 기조는 초기의 저작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르네상스라는 전환기를 정치, 예술, 전쟁의 무대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만들어낸 군상극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작법은 두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첫째, 사료의 충실한 흡수와 현장 답사를 통한 고증이다. 시오노는 방대한 1차 자료를 탐독하고, 실제 현장을 방문해 공간적 감각을 기록에 세심히 덧붙인다. 둘째, 역사 기록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메워 극적 긴장감을 형성한다. 그녀는 사료의 빈틈에 인물의 심리나 대화를 과감히 삽입해 독자의 몰입을 이끌었다. 그 결과 그녀의 논픽션은 전통적인 학술 역사서와는 다른 차원에 존재하게 된다. 사실의 엄밀성보다는 역사를 사실과 상상이 결합된 드라마적 서사로 표현하는 데 무게를 둔다. 이 점에서 시오노는 정통 역사학자와 구별된다. 그녀는 대중적 역사 서사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방식이 늘 환영받는 건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오랫동안 시오노의 책에 비판을 제기해 왔다. 가장 큰 문제는 사료를 다루는 태도다. 역사 연구라면 자료의 신뢰성을 갖추고 반론의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시오노는 이를 그저 상상력으로 채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독자가 읽을 때는 흥미롭지만, 학계에서는 검증 불가능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또 다른 비판은 관점의 편향이다. 영웅과 승자의 행보를 거의 예외 없이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실제로 시오노는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이 “카이사르빠”임을 밝힌 바 있다. 『로마인 이야기』에서도 카이사르의 권력 장악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술이 이어진다. 로마제국의 팽창을 ‘질서와 번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역사가 복합적인 갈등의 장이라기보다는 위대한 영웅의 행진처럼 읽히게 된다.
결국 시오노의 역사 논픽션은 대중적 서사로서의 매력과 학문적 한계가 공존한다. 그녀가 보여준 건 “역사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지만, 그만큼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도 있다. 중요한 점은 그녀가 애초에 ‘학자’가 아닌 ‘이야기꾼’으로서 역사에 접근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로마사라는 방대한 주제를 수백만 독자가 자발적으로 읽게 만든 공로는 작지 않다. 따라서 독자는 그녀의 서술을 최종적 해석이 아닌 역사 읽기의 입구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할 때 그녀의 책은 여전히 흥미로운 역사 논픽션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동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영화평론가다.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그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이동진은 글쟁이를 넘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또한 많은 논픽션 작가가 그렇듯 작품의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는 종교학을 공부했고, 1993년 조선일보에 입사하여 2007년까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독립하여 평론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의 가장 큰 강점은 대중성과 인문학적 깊이의 균형이다. 그의 글은 짧은 단락과 명확한 구조를 갖춘다. 핵심 명제를 제시한 뒤, 영화 속 장면을 한두 개 근거로 붙이고, 마지막에 감상의 의미를 정리한다. 난해한 비평이론이나 전문용어 대신 일상적 비유와 간결한 문장을 사용한다. 예컨대 어떤 영화의 미장센을 설명할 때도 “이 장면을 잘 보면 마치 ○○같이 느껴질 것”하는 식이다. 그래서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도 무리 없이 그의 안내를 따라가게 된다. 흔히 평론을 어렵게 느끼는 이유가 전문용어의 장벽 – 미장센, 몽타주, 서브텍스트 같은 - 때문이라면, 이동진의 글은 그것을 무너뜨린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평론이 마냥 쉽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동진은 인문학 전공과 폭넓은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 해설에 깊이를 더한다. 판타지 영화에서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의 영웅서사를 소환하고, SF 영화에서는 사회학자 앨빈 토플러의 문명 비평이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개념을 덧붙인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이나 프리드리히 니체의 철학을 참조해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지식을 끌어오지만, 그것은 학문적 과시가 아닌 독자의 이해를 돕는 도구로 기능한다. 이러한 평론은 영화가 다양한 인문학적 맥락에 놓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동진은 평론의 대중화 전략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칼럼, 단행본, 라디오, TV, 팟캐스트와 온라인 플랫폼까지 매체가 달라져도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독자와 소통했다. 그래서 글과 방송 어디에서든 핵심 독자가 얻는 경험은 같다. “아, 그런 의미구나”하는 공감이다. 이는 평론이 독자와 나누는 대화라는 점을 일깨운다. 혼자서 진리에 이르는 발견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본 장면을 다시 말해주는 작업이라는 것. 이런 겸손한 태도 덕분에 이동진은 영화마니아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까지 신뢰를 얻었다. 그의 글은 영화평론을 대중문화 속에 안착시킨 몇 안 되는 경우로 꼽힌다.
채사장은 다섯 명 중 가장 젊은 작가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지만, 박사학위를 취득해 학문적 경력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졸업 후에는 논술 강사, 주식 투자 등 여러 일을 전전했다. 그러다 2011년 제주도에서 큰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동료를 잃는 충격 속에서 그는 자신이 공부한 지식을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다. 그 결과물이 2014년 출간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시리즈다. 이 책은 철학, 경제, 역사, 과학 등의 핵심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냈다. 제목 그대로 깊이는 얕으나 범위는 넓다. 이 전략은 보기 좋게 적중했다. ‘지대넓얕’이라는 브랜드를 세우며 300만 부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사로잡았을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이 책은 복잡한 개념을 직관적으로 바꿔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치경제체제를 게임의 규칙에 비유한 대목이 그렇다. "자본주의는 자유 경쟁의 게임, 공산주의는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뛰는 게임, 사회주의는 경쟁은 허용하나 최소한의 안전망을 규칙으로 정해놓은 게임"이라는 식이다. 철학도 마찬가지다. 어렵게만 보이는 사상 논쟁을 “삶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안경”이라 규정한다. 종교는 “세계관을 바꾸는 거대한 틀”, 과학 혁명은 “게임의 규칙이 송두리째 바뀌는 순간”으로 비유한다. 학문적 맥락과 디테일을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독자가 단숨에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는 방식이다.
물론 이 선택은 대가를 치른다. 사상의 복잡한 논리와 거대한 체계가 잘려나가면서, 설명은 몇 줄로 단편화된다. 그래서 인스턴트 인문학이나 지적 허세만 채운다는 비판도 받게 된다. 채사장은 이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 적이 있다. “지식이 많아도 삶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요컨대 쉽게 쓴 지식이 독자의 삶 속에서 작은 실천이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누구든 처음부터 임마누엘 칸트나 카를 마르크스를 읽기는 어렵다. 이 점에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같은 입문서가 깊은 탐구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그의 책을 계기로 철학의 원전에 도전했다는 독자들도 많다. 그렇다면 채사장의 작업은 인문학의 거대한 입구를 수백만 명 앞에 열어 놓았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채사장의 등장은 논픽션 글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연구자가 아니어도 지식을 전파할 수 있음을, 인문학이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의 성공 이후 젊은 층을 겨냥한 쉬운 인문서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한 발 떨어져서 그 맥락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독자에게 친절하고 재미있게 접근하되, 이론적 깊이를 잃지 않는 균형이 중요할 것이다. “호기심만 있다면 누구나 지식을 즐길 수 있다” 채사장이 입증한 이 메시지는 논픽션을 시작하려는 작가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논픽션 작가들이 가진 색깔은 이처럼 다채롭다. 혁신의 기록, 일상의 단상, 역사의 드라마, 영화의 문법, 인문학의 지도까지. 앞서 소개한 다섯 작가는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방향만큼은 한 곳을 가리킨다. 좋아하고 궁금해한 대상을 집요하게 따라가 글로 남기는 것.
물론 그 작업이 늘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미화나 단순화라는 비판을 받았고, 학문적 검증의 잣대 앞에서 한계도 드러냈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작가들의 이러한 끈기가 있었기에 비판과 논란 속에서도 수많은 독자가 통찰과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논픽션은 사실과 해석, 개인적 경험과 사회적 맥락 사이에서 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바로 그 경계 위에서 새로운 서사가 태어난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교훈은 단순하다. 작가가 되는 길은 자격증이나 스펙에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좋아하고, 얼마나 오래 파고들며, 그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는가에 달려 있다. 논픽션을 읽고 쓰는 일은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렇게 된다면 언젠가 누군가는 당신의 글을 읽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