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힘이 세다고 한다. ‘결과’만 보면 그럴 수 있다. 감춰진 진실이 대중과 만나며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로 확산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드레퓌스 사건, 헤이마켓 사건, 워터게이트 사건이 그렇다. 드레퓌스의 누명은 시오니즘 운동의 중요한 계기가 됐고, 헤이마켓 시위 주동자에 대한 오심은 8시간 노동제의 기폭제가 됐으며, 워터게이트의 은폐는 닉슨을 사임시켰다. 우리 현대사도 예외는 아니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2016년 국정농단 태블릿 PC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생각보다 지난하다. 진실은 모든 사람이 쉽게 인지할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누군가가 온갖 방해와 어려움을 뚫고 그것을 세상으로 끄집어내야만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통신과 미디어가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더욱 그러하다. 정보는 쏟아지지만, 진실이 무엇인지 인식하기 더 어려워진 역설적 상황.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중요한 특징이다. 왜 정보의 유통량은 많아져도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어려운가? 그것은 정보 유통의 핵심에 권력이 관계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은 정보들을 가려내 대중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한다. 정보를 독점화하여 권력 운용의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는 통치의 기본 기법이다.
올리버 스톤의 영화 JFK를 관통하는 두 키워드도 ‘진실’과 ‘권력’이다. 양자의 첨예한 긴장이 영화의 선 굵은 서사를 이끌어간다. 여기에 1960년대 미국의 혼란한 사회상이 퍼즐처럼 덧입혀지며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게 만든다. 사실 처음에는 이 영화, 존 F. 케네디 암살 음모를 다루는 미스터리 스릴러인 줄 알았다. 그런 면도 있긴 하다. 진실이나 권력 같은 골치 아픈 개념들은 넣어 두고, 암살 음모의 추적 과정에만 집중해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 케네디 암살이야말로 20세기 음모론의 대표 떡밥이니 말이다.
물론 음모론을 믿을지 말지는 감상자의 자유다. 이 영화에서도 자세히 다루지만 케네디 암살 음모론의 핵심 논거는 이른바 ‘마술탄환’ 이론인데,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논박 자료들이 넘쳐난다. 오히려 음모론이 맞냐 틀리냐 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의 메시지다. 감독은 190분에 이르는 러닝타임을 통해 감상자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진실은 권력을 이길 수 있는가?” 그것은 영화 속 대사로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그를 ‘왜’ 죽였는가가 문제입니다.” 그 ‘왜 죽였는가’를 설명하려고 감독은 역사적인 문제 설정을 시도한다.
“‘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였느냐가 아니라, 그를 ‘왜’ 죽였는가가 문제입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50~60년대 미국의 사회·정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미국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는다. 여기에는 전쟁 중 급성장한 군수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중 무기대여법(Lend-Lease)을 통해 연합국에 공급한 식량·석유·무기 등의 규모는 500억 달러가 넘는다. 이 기간 동안 세계의 전쟁물자를 미국이 도맡아 만들어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군수자본가들이 경제는 물론 국방·외교 등 국가정책에도 영향을 미치는 수준으로 성장했고, 정계 및 백악관과도 결속력이 높아진다. 군부, 산업자본, 정치가, 관료들이 단일한 이해관계로 묶이면서 거대한 권력 카르텔로 부상한 것이다. 이들은 냉전이라는 기회를 맞아 지속적으로 전쟁 위기를 조장해, 우방국들에게 무기를 판매하거나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국방·외교정책을 운용했다. 따라서 미국이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연달아 참전한 것도 이러한 산업적 요구의 반영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교정치경제학에서는 이렇게 군사적 수요를 창출하여 경기 호황과 일자리 창출을 이어나가는 경제운영원리를 ‘군사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로 개념화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생산량을 보여주는 몇 장의 사진들
일부 학자들은 미국이 대공황을 벗어나 전후까지 호황을 이어나간 원동력이 뉴딜정책이 아니라 군사 케인스주의에서 나왔다고 본다. 다만 호전성·폐쇄성·보수성이 특징인 군사 케인스주의의 권력 카르텔은 민주주의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1956년 저작 「파워엘리트」에서 이들을 정치·경제 권력을 독점하며 미국 사회의 진보적 요구를 막는 폐쇄적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보수정치인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1961년 퇴임 연설에서 비슷한 경고를 남겼다. 그는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한 군부·관료들의 권력 카르텔을 의미하는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개념을 통해, 미국이 항상적 전쟁 위기에 놓이게 됐고 민주주의도 위기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1961년 퇴임 연설에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경고한 군산복합체의 영향력. JFK의 가장 첫 장면이기도 하다.
JFK는 이 아이젠하워의 퇴임 연설을 프롤로그로 삼아 시작한다. 이어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과 마틴 루터 킹이 이끄는 민권운동, 쿠바 미사일 위기 등 진보와 반동이 격렬하게 교차했던 당시 미국 사회를 스케치해서 보여준다. 사실 감독이 영화를 통해 말하려는 바는 이 오프닝 시퀀스에 거의 담겨 있다. 1960년대는 미국에서도 민권운동, 반전운동, 학생운동을 기반으로 진보세력이 성장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런 흐름을 정치적으로 대변한 것이 미국 민주당이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이후 민주당은 이른바 ‘뉴딜연합’으로 불리는 진보적 유권자 연합을 주 지지층으로 삼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군산복합체와 냉전주의자들로 상징되는 보수파와 민권·반전운동이 이끈 진보파들이 대립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1961년 민주당 진보계를 대표하는 케네디가 집권해 힘의 균형이 진보 쪽으로 기울게 된다. 케네디와 동생이자 법무장관인 로버트 케네디는 민권운동 지지자이자 반냉전주의자였다. 그래서 군부, 정보부, 관료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던 기존 정치를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받았다.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민권운동 지도자들과 백악관에서 만난 존 F. 케네디. 그는 민주당 진보계 수장으로서 민권운동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대변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런데 3년도 안 돼 케네디가 암살된 것이다. 사건을 조사한 워렌 위원회는 소련 스파이 출신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건을 단순하게 정리하기에는 의혹과 우연의 일치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암살자로 지목된 오스왈드는 체포 이틀 뒤 잭 루비라는 나이트클럽 사장에게 저격당했고, 잭 루비도 두 달 만에 암으로 사망하는 등 관련자들이 연이어 죽었다. 가장 중요한 단서인 케네디의 뇌는 사라져 버려서 당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지도 못했다. 이러니 음모론이 제기되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뉴올리언스의 지방검사 짐 개리슨도 공식 조사 결과를 불신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본인이 독자적으로 수사에 착수했고, 그 기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영화다(영화에서는 실제 개리슨 검사가 워렌 위원회를 이끈 얼 워렌 대법원장으로 카메오 출연한다). 케네디는 오스왈드가 아닌 암살 장소 곳곳에 있던 여러 명(일명 ‘배지맨’)의 동시 사격으로 사망했으며, 그 배후에는 케네디 정부에 불만을 품은 군산복합체와 CIA가 있다는 것이 결론이다. 이를 은근히 암시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 중반부부터 아예 대놓고 못 박는다(감독의 패기 한번 후덜덜하다).
물론 음모론이 얼마나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후 말콤 X,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 같은 진보파의 지도자들도 연달아 암살당했고, 이들이 이끈 미국의 68혁명도 패배했음은 명확하다. 1968년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 당선은 진보의 열망이 정점에 올랐던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은 1992년 빌 클린턴이 집권할 때까지 기나긴 보수의 시대(중간에 지미 카터가 한번 집권했으나 대세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로 접어든다. 이 과정이 정당한 민주적 절차가 아닌 반동세력에 의해 조작되었고, 그 진실 또한 은폐되었다는 것이 올리버 스톤이 가장 말하고 싶은 바일 것이다.
1960년대 연이어 암살된 미국 진보파의 리더들. 이들의 죽음 이후 미국은 기나긴 보수주의의 시대로 이행한다.
사실 정치적 주제의식이 워낙 선명해서 그렇지, 이 영화는 완성도가 높고 기술적으로도 탁월하다. 오히려 정치적 논란과 음모론이 작품성까지 깎아먹는 안타까운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올리버 스톤은 제작 기간 동안 살해 협박도 받았고,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다고 한다. 그래도 할리우드 대감독 반열에 드는 그 역량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다. 온갖 논란 속에서도 꿋꿋하게 선 굵은 정치·법정 스릴러 수작을 만들어냈다. 아카데미가 절대적 지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해 시상식에서 8개 부문 후보에 올라 2개 상(편집, 촬영)을 받았다는 점이 이를 시사한다.
실제로 190분의 러닝타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세련된 편집과 카메라 테크닉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올리버 스톤은 이후에도 미국 대통령을 소재로 한 작품 두 편(‘닉슨’, ‘W’)과 비슷한 주제의 작품 한편(‘스노든’)을 더 만들었다. 그러나 어디서도 JFK에서 보여준 스타일리시함을 재현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JFK의 마지막 법정 장면을 디렉팅하는 올리버 스톤 감독. 비주류적이고 날선 문제작들 때문에 종종 어그로를 끌지만, 선 굵은 서사와 화려한 테크닉을 뽐내는 장인임에 틀림없다.
개봉 후 한참 지나서 그런지, 중년의 아재들을 빼면 이 영화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래도 나는 지인들과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이 작품을 늘 언급한다. 재미도 뛰어나지만 영화가 전하는 ‘권력에 맞선, 진실에 대한 용기’라는 메시지가 좋아서다. 이미 50년이나 지난, 태평양 건너 먼 나라의 한 지방검사가 하려고 했던 일이 지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그 대답은 2016년의 국정농단 태블릿 PC 보도가 한국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를 되새겨보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진실과 권력의 긴장은 특정 시기나 지역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사회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보편성을 갖는다. 1963년 사건을 다룬, 1991년 제작한 미국 영화를, 21세기의 우리가 보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이 이 영화 최고의 장면으로 꼽는 개리슨 검사의 마지막 변론은 한 번쯤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믿는다’. 단독범 오스왈드가 희생양으로 쓰러진 후 로버트 케네디, 킹 목사처럼 개혁과 평화를 바라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우린 햄릿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왕위를 빼앗았으니 말이죠.
케네디의 유령은 아메리칸드림에 대해 우리들에게 묻죠. 헌법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가치는? 또 민주주의의 미래는? 대통령이 살해됐는데 법은 무엇을 한 거죠? 잇따른 증인들의 죽음은 자살, 암, 심장마비로 또 교통사고로 위장됐죠.
‘반역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면 성공하면 반역이 아니니까. 제프 루더 필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왜? 검시 결과와 X레이도 못 봤죠. 왜? 이 사건의 많은 자료를 왜 공개 안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원하면 왜 ‘국가기밀’이라면서 거부합니까? 누구를 위한 비밀이죠? 대체 무슨 비밀이 또 누구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겁니까? 바로 그런 국가기밀이 악취를 풍기며 나타날 때 그걸 바로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중략)...
저는 지금 40대니까 전혀 희망이 없죠. 하지만 8살 난 제 아들은 2038년 9월 어느 날 CIA와 FBI의 문서 보관소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또다시 연기될지 모르죠. 그래서 백 년 뒤에나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진실은 밝혀져야죠. 그게 안 된다면 이런 정부는 필요 없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있듯이 새 땅을 찾아가야죠.
우리들 선조가 말했습니다. ‘애국자는 정부와 싸워야 한다.’ 힘든 결정이 남았습니다. 공개 안 된 증거도 보셨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정의’라고 하면 배운 말이 있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죠. 정의는 늘 권력으로부터 심한 위협을 받기 때문에 권력과 싸우는 게 힘들죠. 여러 증인과 목격자들이 용기 있게 앞에 나섰고, 8,000달러란 큰돈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한 푼 한 푼 평범한 가정주부에서부터 노동자, 학생, 세일즈맨 같은 어려운 사람들이 보낸 겁니다. 심지어 택시 기사들, 간호사들, 아들을 월남에 보낸 사람들까지. 왜죠? 관심이 있기에. 진실을 원하기에. 나라를 되찾고 싶기에. 믿음을 갖고 싸우는 한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란 믿음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인데 정부가 진실을 숨기고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그건 이미 내 조국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