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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11. 2020

마르크스 「자본」의 국내 번역자들

칼 마르크스 필생의 대표작은 「자본」이다. 사회과학 태동기에 등장한 이 불세출의 사상가는 철학,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을 넘나드는 독자적 학문세계를 구축하며 수많은 저작을 남겼다. 하지만 그 모든 작업들의 지향은 결국 이 책으로 수렴 및 완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혹자의 표현처럼) 마르크스를 비로소 ‘마르크스’로 만든 것이 이 책이다. 그래서인지 마르크스 저서 중 분량도 가장 많고, 다양한 체계들이 상호 복잡하게 결합하며 내용을 구성한다. 


그런데 국내 한정으로 「자본론」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제목이 대중화된 것은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번역자인 고 김수행 교수 때문일 것이다. 김수행은 1989년 출간된 초판부터 2015년 마지막 개역판을 낼 때까지도 「자본론」제목을 고수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평범한 노동자도 읽을 수 있도록 쉽게 번역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취지에서 「자본」보다는 「자본론」이라는 제목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이 책은 근대의 새로운 정치경제권력으로 부상한 ‘자본’의 본질과 운동법칙에 대해 마르크스 자신의 ‘이론’을 펼치며 전개된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정확히 말한다면 「자본」이 맞다. 원제가 그냥 「Capital」이지 「Theory of Capital」이 아니기 때문이다.


편의상 「자본」으로 부르지만, 정식 제목은 「자본 : 정치경제학 비판(Capital : A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이다. ‘자본’ 뒤에 이어지는 '정치경제학 비판'까지 포함해야 이 책의 주제와 집필 의도가 명확히 드러난다. 제목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정치경제학은 영국의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이 정초한 고전파 정치경제학이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의 원류에 해당하는데, 이때는 경제학에서 이른바 ‘한계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이었다. 즉 경제학의 분석 범위가 '개인의 효용'이 아닌 '국민국가 단위의 생산과 분배'에 맞춰져 있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때의 경제학은 곧 정치경제학을 의미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폭발한 생산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스미스와 리카도의 이론을 국가정책으로 채택해 번영을 구가하는 중이었다. 영국의 부르주아들은 사상 최고 수준의 부를 축적하고, 나아가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정치권력까지 손에 넣는다. 즉 자본가들이 근대의 명실상부한 지배계급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시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착취와 폭력에 주목했다. 고전파 정치경제학이 내세우는 부와 번영은 어디까지나 자본가 계급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자본주의의 또 다른 구성 주체인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착취로 귀결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통찰이었다. 이렇듯 고전파 정치경제학에 내재한 논리적 모순과 폭력적 본질을 폭로하는 것을 마르크스는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마르크스가 바라본 초창기 자본주의의 모습을 짤로 요약하면 대충 이 정도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르크스가 고전파를 무조건 까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성취를 받아들이되, 일부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하고자 했다. 대표적인 것이 노동가치론이다. 스미스와 리카도는 가치 생산의 원천이 노동에 있다고 보았다. 이는 효용 개념 중심의 신고전파 경제학이 등장하면서 주류 경제학에서는 기각돼 버렸다. 그런데 오히려 마르크스가 이를 계승·발전시킨다. 마르크스는 노동가치론을 비판적으로 재해석해 '잉여가치론'을 확립했다. 이 잉여가치론이야말로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고전파의 노동가치론이 마르크스에 의해 자본주의 공격에 쓰이는 ‘양날의 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기획이 광범위하고 정교한 논리체계 위에 세워진 것이 「자본」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통해 자본주의 극복 이후의 사회를 위한 대안적 경제이론을 구성하고자 하였다. 흔히 마르크스를 자본주의를 뒤엎고 사회주의를 건설하려 한 혁명가로 아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마르크스는 혁명가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본업은 ‘자본주의 연구자’였다. 그의 이론적 기획을 경제학사적으로 본다면, (잉여가치론 사례에서 보듯) 고전파 정치경제학의 연장과 단절을 동시에 꾀한 고전파의 또 다른 이론경제학자로도 볼 수가 있다. 물론 현대 경제학에서는 마르크스를 그렇게 스미스-리카도와 동급으로 취급해주지 않지만 말이다.

고전파 정치경제학 내에서 서로를 계승 및 비판한 학자들. 왼쪽부터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칼 마르크스.

「자본」은 원래 네 권으로 기획됐다. 그런데 세 권만이 출판됐고, 그중 마르크스가 직접 완성한 것은 1권뿐이다. 2, 3권은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마르크스 사후 유고들을 편집해 출판했다. 여기에 4권(또는 속편)으로 간주되는 「잉여가치학설사」라는 책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잉여가치론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 전제에 해당하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서는 1권에서 상세히 다루지만, 마르크스는 심화된 논의를 위해 별도의 책으로 내려고 했다. 「잉여가치학설사」는 마르크스의 후계자 중 최고 이론가로 인정받았던 칼 카우츠키가 편집해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을 과연 「자본」 4권으로 보는 게 맞느냐 하는 논란도 있긴 하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1권의 잉여가치 부분에서, 이와 관련된 기존 고전파 이론들을 다룰 4권의 존재를 언급한 것은 사실이다.


국내에서의 첫 번역 시도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영철, 전석담, 허동이 공동번역자로 참여해 「자본론」 1, 2권을 서울출판사에서 발간했다. 대본으로는 독일어판과 일본어판이 쓰였다.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역자 주와 해제도 추가하는 등 꽤 완성도가 있었다고 한다. 이는 일제하 민족해방운동의 주요 분파로 마르크스주의 세력이 성장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3권까지 완간되지는 못했는데, 번역자들이 모두 월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업에서 눈여겨 볼만한 인물이 전석담이다. 도호쿠제국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엘리트 지식인이었던 그는 해방 후 경성상업전문대학(서울대 상대의 전신) 경제학 교수가 되었다. 그러니까 그가 월북하지 않았다면, 김수행 훨씬 이전에 서울대에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가 있을 뻔했다(물론 이후 군사정권이 어떻게든 가만두지 않았겠지만). 하지만 그는 북한을 선택했고, 김일성종합대학과 사회과학원의 교수가 되는 등 그곳에서도 중요한 직위들을 역임했다. 

1947년 서울출판사에서 발간된 최초의 국역 「자본론」. 구하려면 고서점 일대를 꽤나 뒤져봐야 할 것 같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마르크스주의가 그야말로 대가 끊겼기 때문에 「자본」을 번역할 연구자가 없었다. 1950~60년대에는 그나마 시사 잡지 「사상계」에 마르크스주의 관련 글이 가끔 실렸다. 다만 「사상계」의 마르크스주의 문헌들은 사회주의에 비판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경우도 많아, 본격적인 마르크스주의 연구성과물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마르크스와 「자본」을 금기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바뀐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1980년 광주 이후 혁명적 민주화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절멸됐던 마르크스주의도 부활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도권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없었다. 이에 지하 운동권 서클들이 「자본」 번역을 시도했다. 이것이 구체화된 것이 1987년 이론과실천 사에서 나온 「자본」이다. 1권은 김영민이라는 가명(여러 운동권 학생들이 번역했으리라 추측된다)으로, 2, 3권은 강신준(후일 도서출판 길에서 제대로 된 「자본」 완역본을 내놓는다)의 이름으로 발간됐다. 


그러나 역시 군사독재 치하에서 숨어서 진행해야 했으므로 작업이 원활하지는 못했다. 오역도 많고 번역의 질적 수준도 많이 떨어졌다. 게다가 복수의 번역자들이 익명으로 출간했기에 학문적 책임성이 있는 번역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본」 출간을 이유로 출판사 대표인 김태경(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의 전 남편이기도 함)이 투옥되기도 했다. 


1989년에는 백의출판사가 「자본론」 세 권을 발간했다. 이 버전은 국내 연구자가 번역을 한 것이 아니다. 북한 조선노동당이 번역하고 일본 조총련계가 출판한 책을 백의출판사가 들여와 일부 수정해서 낸 것이다(그래도 어쨌든 국내 최초의 완역이기는 하다). 결국 이론과실천에 이어 백의출판사 대표도 투옥됐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이렇게 특정 책(해외에서는 고전으로 추앙 받음에도)을 냈다는 이유로 감옥에 끌려가는 일들이 있었다.

지하 운동권 서클에서 번역을 주도하던 1980년대의 「자본론」. 왼쪽이 이론과실천, 오른쪽이 백의출판사 버전이다.

서울대 김수행 교수가 1989~90년 비봉출판사에서 「자본론」 완역본을 발간하여 대중들은 비로소 제대로 된 「자본」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이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김수행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여했다가 영국 런던대에서 공황론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1세대 마르크스 경제학자다. 당시 국내에서 마르크스를 전공할 수 없었기에 마르크스 연구의 정착에는 해외 유학파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82년 김수행은 역시 해외 유학에서 돌아온 정운영, 박영호와 함께 한신대 교수로 부임했다. 신학대였던 한신대가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설치한 경상학부는 제도권에서 마르크스의 학맥을 잇는 계기가 됐다. 이후 윤소영, 이영훈, 강남훈 같은 소장파들도 결합하면서 명실상부한 마르크스 경제학의 거점으로 성장한다. 


그런데 몇 년 못 가 학내 민주화 투쟁에 휘말린 김수행, 정운영 두 교수가 해직되었다. 재야 학자가 될 뻔했던 김수행에게 중요한 전기가 된 것은 서울대 경제학과의 마르크스 전공 교수 채용 운동이었다. 민주화와 함께 대학에서도 마르크스를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퍼졌고, 대학원생들의 수업 거부와 농성을 통해 1989년 김수행이 서울대에 부임할 수 있었다. 30여 명의 경제학과 교수 중에 1명뿐인 마르크스 전공자였지만 파급력은 적지 않았다.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수업을 듣고(1,000명이 넘는 수강생이 서울대 노천강당에 모여 강의를 들었다는 레전설도 있다) 문하에 들어가 마르크스 또는 진보성향 경제학자로 성장했다. 즉 김수행 교수 1명으로 인해 국내 최고 학부에도 마르크스 학파가 형성된 것이다. 


김수행은 서울대에 부임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본론」 완역본을 내놓았다. 본인 말로는 잡아가려면 잡아가라는 생각(출판사 대표들의 구속이 불과 몇 년 전이었으니)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역시 서울대 교수라는 배경 때문인지, 금서로 지정되거나 구속되는 일은 없었다(비슷한 예로 「러시아 혁명사」를 쓴 서울대 정치학과 김학준 교수가 있다). 2008년 퇴임한 김수행은 후임으로 마르크스 전공자를 뽑고자 했고, 1988년 그랬듯 대학원생들이 또 학교와 싸웠지만 이번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김수행은 마르크스 전공자가 안 된다면 제도주의 경제학자인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라도 데려오고 싶었으나 그 조차도 안 됐다고 회고한다. 아마 김수행은 서울대 최초이자 최후의 마르크스 경제학 교수로 남을 것 같다.

김수행과 그의 유작이 된 2015년「자본론」개역판.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30여 명 교수 중 단 한 명의 마르크스 전공자였지만, 후학들에게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김수행 번역 「자본론」의 최대 미덕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비교적 쉽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본인도 인정했듯 이 책은 정말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난해하다. 이는 자본이라는 고도로 추상화된 체계를 다루는 데다, 독일인 특유의 장황한 만연체로 서술되었기 때문이다(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할 생각은 아니지만, 독일인이 쓴 책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다 어려운지 모르겠다). 여기에 「자본」 이론적 기획의 특성도 한몫한다. 「자본」은 정치경제학 책이지만, 핵심 논리를 이끌어가는 자원은 철학과 역사학에서도 상당 부분을 가져온다. 따라서 근대 초기 유럽사는 물론, 당시 첨단을 달린 독일 관념론 철학, 프랑스 사회주의 이론 등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김수행 본은 이런 것들을 마구 펼쳐놓기보다는, 노동자 계급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자각케 하는 데 번역의 중점을 두었다. 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서울대 교수로 부임할 수 있었던 김수행은 마르크스의 대중화를 평생의 업으로 삼았다. 그는 이 책의 주인공인 노동자 계급이 스스로 필요에 의해 책을 읽고 논리를 습득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철학은 번역에도 반영됐다. 그래서 딱딱한 어투와 부자연스러운 개념들이 최대한 우리말 체계와 우리 실정에 맞는 표현으로 바뀌어 등장한다. 예컨대 영국 화폐 단위 '파운드'가 '원'으로 번역되고, '근'이나 '필' 같은 익숙한 단위들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 한글학자 이오덕의 「우리말 바로 쓰기」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했다는 2015년 마지막 개역판은, 우리말로 쓴 「자본론」의 최종 진화 버전이라 할 만하다.


물론 한계도 있다. 첫째는 이 책이 중복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즉 독일어 원본이 아닌 영어판을 대본으로 쓴 것이다. 이에 대해 김수행은 「자본」의 이론적 토대와 현실적 예증이 모두 영국 사회에 근거하므로 번역에도 영어판이 적합하다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본인이 영국에서 유학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중역에 우리나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도 마다하지 않았으니, 원전에 대한 충실성은 부족할 수 있다. 


둘째는 「자본」 원전 해석 방식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이는 김수행 본뿐만 아니라 모든 버전의 「자본」 번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번역도 제2의 창작이어서 그 방향을 설정하고 적확한 개념을 고르는 데 번역자 주관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특히 마르크스처럼 논란의 여지가 많은 사상가는 이 문제가 더 클 수밖에 없다. 김수행은 1970년대 영국 좌파들의 온상이었던 런던대 버크벡 칼리지에서 유학했다. 이때 사사한 학자들이 벤 파인과 로렌스 해리스 등 공황론 연구자이다. 이들은 마르크스 경제학의 핵심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주기적 과잉생산 공황과 연관해 재구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시도는 논쟁의 소지가 커서, 다른 마르크스 경제학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자본론」에도 김수행이 스승들의 입장을 대변하여 공황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는데, 이 역시 마르크스 방법론의 중대한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꼭 이 해석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외로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자들 중에 김수행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국 마르크스 연구의 충실한 계승자를 자임하는 한신대 윤소영 교수가 대표적이다. 윤소영의 저서 곳곳에서 이런 비판을 볼 수 있다. 그는 김수행이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뚜렷한 학문적 입장이 없으며, 제시하는 대안들도 마르크스주의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고 비판한다.


1990년 이후 오랫동안 국내에서 「자본」은 곧 김수행 본과 동의어였다. 그런데 2008년 동아대 강신준 교수가 도서출판 길에서 새롭게 완역본을 내놓으며 이 구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듯 강신준은 1987년 이론과실천 판 「자본」 번역에도 참여했었다. 김수행 본이라는 압도적인 번역본이 있는데도 새 버전이 나오게 된 데에는, 김수행 본의 한계로 지적된 사항들이 계기가 됐다. 일단 강신준은 학부에서 독일어를, 대학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자본」 번역에 있어 상당한 강점이 있었다. 


강신준 본의 최대 장점은 ‘원작에의 충실함’이다. 강신준 본의 대본은 독일어판 「마르크스 엥겔스 저작집(Marx Engels Werke, MEW)」이다. 즉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독일어 원본을 그대로 한글로 옮겼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도서출판 길에서도 이 점을 집중 부각하면서 마케팅을 했다. 다만 개인적으로 강신준 본 「자본」을 읽어보지 못해서, 실제 번역의 엄밀성이 어느 정도로 다른지는 모르겠다. 둘 다 읽어본 선배의 말로는 ‘이미 김수행 본을 읽은 사람이 굳이 다시 강신준 본을 사서 읽을 필요는 없는 수준’이라던데, 아무래도 판단은 독자들 각자의 몫인 듯하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자본」을 번역하면 감옥에 끌려갔는데, 이제는 어떤 버전으로 읽을지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일단 지금은 김수행 본, 강신준 본이라는 2개 선택지만 있지만, 앞으로 또 다른 번역본이 나오며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을까 한다.

2008년 발간된 강신준 번역 「자본」(왼쪽)과 그 대본이 된 Marx Engels Werke(오른쪽).

물론 김수행 본이든 강신준 본이든 「자본」의 접근성은 엄청나게 떨어진다. 읽다 보면 문장의 각 부분들은 무슨 뜻인지 알겠으나, 문단 단위로 모아 보면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초심자라면 아주 높은 확률로 1권의 1편 '상품과 화폐'에서 책을 덮을 가능성이 크다. 1권이 자본에 대한 다소 추상적인 논의를 바탕으로 전개된다면, 2권부터는 이 책이 왜 경제학 서적인지 그 이유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사실 나도 1권은 선배들과 세미나를 하면서 어찌어찌 읽긴 했는데, 2권부터는 읽다가 중도 포기해버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자본」을 읽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전공 지식이 아닌 교양 습득이 목적이라면 굳이 완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수행과 강신준 두 번역자들이 쓴 「자본」 해설서나 마르크스 경제학 입문서들이 꽤 있다. 「자본」의 난해함에 질리느니 이 책들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의 얼개와 논지를 파악하는 게 낫다. 아니면 마르크스 경제학이 포함된 경제학사 책을 통해, 전체 경제학의 흐름에서 마르크스와 「자본」이 점하는 사상사적 위상과 맥락을 파악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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