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출간 임박 소식
브런치를 시작할 때 세운 목표가 있었다. 구독자 100명만 넘기자는 것. 지금 들으면 의외로 소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자기 객관화가 장점인 사람이다. 내 글은 대중적인 스타일도 아니고, 쉽게 바이럴을 타는 주제도 아님을 잘 안다. 그래서 “100명만”이라는 말은 겸손이 아니었다. 나름 냉정한 계산 끝에 나온 목표였다.
그런데 5년 만에 516명이 되었다. 목표의 무려 5배다. 브런치에는 구독자 몇천 명인 작가들도 많으니, 숫자만 보면 대단한 성취는 아니다. 하지만 구독자 수치보다 더 어려운 건 ‘계속 읽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몇 년 동안 내 글을 찾아 읽는다는 건 단순한 버튼 클릭이 아니다. 삶의 시간과 관심을 기꺼이 내어주는 일이다. 그 지속성과 집중이 얼마나 값진지 안다. 이 점에서 516이라는 숫자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랜만에 구독자 리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넘겨봤다. 초창기부터 꾸준히 댓글을 남겨주는 분이 있다. 댓글은 없지만 묵묵히 라이킷을 누르며 “잘 읽었어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분도 있다. 몇 달에 한 번씩 나타나서 라이킷과 댓글을 한 아름 남기고 사라지는 분도 있다. 구독한 지 얼마 안 됐으나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댓글을 남기는 분도 있다. 반면 하루에 몇 개씩 댓글을 나눌 정도로 친하다가 조용히 구독을 끊은 분도 있다.
이런 걸 보면 브런치도 사회생활과 비슷한 것 같다. 관계는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가까웠다가 멀어지고, 예상치 못한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사회성이 좋다고 할 수 있는 타입은 아니다. 인맥도 그리 많지 않다. 대신 한 번 연을 맺으면 깊게 이어가는 편이다. 그래서 구독자를 숫자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기억한다. 댓글 하나, 문장 하나에 그 사람의 분위기가 묻어난다. 글을 나누면서 관계가 쌓인다. 그분들과 앞으로도 숫자가 아닌 함께 글을 쓰는 동료로 연결되고 싶다.
516명의 구독자가 나에게 바라는 건 각양각색일 것이다. 누군가는 과학 이야기 때문에, 누군가는 글쓰기 이야기 때문에, 또 누군가는 그저 글투가 마음에 들어서 구독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댓글의 반응을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느껴진다. 내가 글을 잘 써서라기보다는, 글에 어떤… 고집? 아니면 근성? 일본어로 곤조라고 하는 그 감각이 있어서. 우리말로 바꾸자면 “버티는 힘, 밀고 나가는 태도” 정도일 것 같다. 나는 과학, 연구소, 역사 같은 글을 주로 쓴다. 이건 브런치에서 비주류를 넘어서 갈라파고스 수준이다. 그런데도 이런 주제를 꾸준히 파고든다는 점 자체를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며칠 전 브런치에도 비슷한 글을 썼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은 많이 읽히는 글보다 계속 읽히는 사람을 만들어준다고. 즉 한 번의 바이럴보다 “이 사람 글은 믿고 본다”라는 축적된 신뢰가 더 큰 힘을 갖게 한다. 그 신뢰가 쌓이면 숫자보다 사람이 따라오게 된다. 나의 516명도 우연히 모인 집합이 아니라, 내가 쌓아온 방향성과 꾸준함의 결과일 것이다.
두 번째 글쓰기 세미나의 첫 모임에서 한 작가님이 이렇게 말했다. “브런치에서 배대웅 작가님이 인기는 없지만, 매니아층은 확실하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빵 터졌다. 이 한 문장에 내 포지션이 완벽하게 담겨 있었다. “아, 내가 딱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러면서 기분이 좋았다. 인기보다 확실하게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 든든하다.
나는 화려한 문장으로 감동을 주는 사람은 아닐지 모른다. 대신 꾸준히 쓰고, 끝까지 파고들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다. 이런 태도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지금 곁에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했다. 앞으로도 괜히 멋 부리거나, 트렌드에 맞추려 하지 않겠다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내 철학과 언어로 더 깊게 쓰겠다고.
516이라는 숫자를 보면서 감사함과 더불어 책임감도 느낀다. 이 정도면 이제 나 혼자 쓰는 글이 아니다. 누군가는 이 글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이 글에서 생각의 방향을 얻고, 누군가는 “이걸 이렇게 파고들었네”라고 흥미로워할지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쓸 거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지금처럼 쓸 거다.
연구소 책의 표지 시안이 드디어 왔다. 이 책은 쓰는 데도 오래 걸렸지만, 후반 작업도 마찬가지다. 시안에는 제목이 일단 『연구소의 승리』라고 되어 있는데…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별로인 것 같기도 하고. 표지 디자인도 2개다. 이것도 뭐 어느 쪽이든 괜찮을 것 같다.
책 작업의 정말 마지막 단계로 저자 소개도 썼다. 첫 책에는 이걸 어떻게 쓸지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이번에는 한 번에 휘리릭 써버렸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과학기술정책을 만들고 있다. 2009년부터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을 거쳐 지금은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재직 중이다. 연구소의 발전전략을 설계하고, 정부의 성과평가에 대응하며, 해외 R&D 제도를 이식하는 업무를 주로 했다. 특히 2012년 설립 직후의 기초과학연구원에 입사해 조직의 비전을 세우고 기반을 닦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때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일본 이화학연구소, 미국 에너지부 국립연구소를 벤치마킹한 경험은 이 책을 쓰는 최초의 밑천이 되었다. 문과생인데도 과학기술정책 업무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전공인 사회학 덕분이라고 여긴다. 사회학을 통해 과학‧정책‧제도‧사회를 연결하는 통합적 관점을 갖출 수 있었다. 첨단 과학도 사회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 역시 그 과정에서 깨달았다.
2024년 첫 책인 『최소한의 과학 공부』를 출간했다. 문과생이 문과적 언어로 과학을 설명했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2024년 도서관 사서들이 뽑은 우수도서,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로 선정되었다. 작가로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느 면도사에게나 철학은 있다.”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면도사가 매일 칼날을 갈고 얼굴 곡선을 기억하며 신중히 칼을 밀어 나가듯, 글쓰기도 축적된 반복 속에서 단단해지는 능력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