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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by 배대웅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이 잘 써질까? 글을 쓰려면 먼저 읽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다독가가 동시에 뛰어난 작가이기도 한 경우는 좀처럼 없다. 읽는 양과 쓰는 능력 사이에는 생각보다 깊은 골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넘어서려면 그저 많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좀 더 전략적인 접근과 실천이 필요하다.


쓰기를 위한 읽기에는 우선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무엇을 쓰기 위해 읽는가?”가 불분명하면, 대부분 정보는 이내 기억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마치 요리할 메뉴를 정하지 않은 채 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보는 것과 같다. 주방에는 재료가 잔뜩 쌓여 있지만, 막상 요리를 하려니 무엇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쓰기를 위한 읽기는 요리부터 정하고 레시피에 맞는 재료만 골라 담는 일이다. 즉 글을 쓰기 위한 읽기는 ‘감상’이 아니라 ‘설계’다.


쓰기형 읽기와 감상형 읽기의 차이


우리는 보통 감상형 읽기를 먼저 배운다. 이는 어려서부터 반복해 온 독후감 숙제와도 연관이 있다.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쓰고, 인상적인 구절을 고르고, “주인공의 용기에 감동했다”라는 식의 소감을 적는다. 물론 감상형 읽기는 그 자체로 즐겁다.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읽기는 감상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감상형 읽기는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책을 읽는다 → 마음에 드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 “좋았다/별로였다”를 판단한다.


반면 쓰기형 읽기는 이렇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의 형태를 정한다 → 그 글에 필요한 재료를 모아서 읽는다 → 글에 쓸 수 있는 구조, 맥락, 연결고리를 포착한다.


쓰기형 읽기는 철저히 목적지향적이다. 이를테면 사회비평 칼럼을 쓰고 싶다고 해보자. 이때 읽어야 할 텍스트는 생기발랄한 문장이나 감성적인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사회비평은 논증의 뼈대가 생명이다. 그러면 읽어야 할 책도 그것에 맞춰야 한다. 사상사 개론서, 현대사회의 주요 쟁점을 분석한 교양서, 꼭 읽어둘 만한 원전 일부 등이 포함된다. 반면 일상 에세이를 쓰고 싶다면? 일상 에세이는 논증보다 개인의 시선, 감정의 떨림, 문장의 리듬 등이 중요하다. 그래서 읽기 재료도 ‘사고의 지도’가 아니라 ‘감정과 문장의 결’을 기준으로 골라야 한다. 국내 유명 소설가들의 에세이나 단편집, 또는 영미권 에세이스트들의 사유형 산문 등이 적절하다.


이렇게 목적을 구분하지 않은 채 무작정 읽기만 해서는 곤란하다. 그러면 책은 쌓이는데 글은 한 줄도 안 써지는 모순의 순간이 찾아온다. 쓰기형 읽기와 감상형 읽기는 아예 본질부터 다른 행위다. 감상형 읽기가 책이 말하는 바에 귀 기울인다면, 쓰기형 읽기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위해 책을 수단으로 삼는다. 그래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정했다면, 읽기 전략도 그것에 맞게 구성되어야 한다.


특히 읽기 전략은 인문학이나 과학처럼 무게감 있는 주제를 다룰 때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이런 주제를 쓰려면 해당 분야의 원전을 여러 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논픽션 작가는 학문을 탐구하는 연구자와는 역할이 다르다. 논픽션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구조의 이해, 사상 흐름의 파악, 시대적 맥락의 포착, 서사의 재구성 능력이다. 즉, 쓰기형 읽기에서는 원전보다 역사·사상·맥락을 보여주는 책이 훨씬 실용적이다. 두 가지 예시를 통해 쓰기형 읽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펴보자.


인문학 예시: 근대정치사상에서 자유 개념의 변천


근대정치사상에서 자유의 의미는 핵심적인 주제다. 이를 다룬다는 것은 고전적 자유주의 → 사회자유주의 → 마르크스주의적 자유 비판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사상의 지형을 그려내는 일이다. 이 작업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은 토머스 홉스, 존 로크,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존 스튜어트 밀, 카를 마르크스의 원전을 줄줄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이는 연구자들의 방식이며, 논픽션 글쓰기의 출발점으로는 지나치게 무겁다. 그보다는 원전의 핵심 맥락을 ‘이미 정리된 지도와 비교·분석의 틀’을 이용해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1단계) 큰 지도 - 사상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해주는 책

먼저 개념의 흐름을 조망하는 책을 읽어야 한다. 이는 글의 전체 구조를 만드는 단계다. 다음의 책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 강정인·김용민 등, 『서양근대정치사상사』

근대 국가의 탄생과 함께 형성된 자유 개념을 홉스–로크–루소–헤겔–마르크스를 통해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자유의 철학적 기원과 이론적 계보를 파악할 수 있다.

• 이근식, 『자유주의 사회경제사상』

다양한 자유 개념의 분화(고전적 자유주의 → 사회·진보적 자유주의)를 큰 맥락의 사회경제사상과 연관해서 설명한다. 자유 개념이 단일한 사상이 아니라, 시대 변화에 따라 내부 진화를 거쳤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앤서니 아블라스터, 『서구 자유주의의 융성과 쇠퇴』

자유주의를 이념 체제, 역사적 현실, 정치적 실천의 차원에서 통합적으로 분석한다. 이로써 자유를 정치·제도·사회 구조 속에서 변화하는 실천적 개념으로 볼 수 있게 해 준다.


이 세 권을 읽으면, 자유 개념이 철학, 체제, 사회의 다층적인 흐름 속에서 형성되어 왔음을 이해할 수 있다. 글의 스토리텔링은 이 단계에서 이미 절반 이상 완성된다.


(2단계) 쟁점의 비교 - 사상의 대립 구조를 선명히 드러내는 책

다음 단계는 자유 개념을 둘러싼 갈등에 대한 것이다. 즉 자유 개념을 지지하거나, 혁신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의 논쟁을 조명한 책들이라고 할 수 있다.


• 김만권,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

자유주의의 다양한 분파(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정치적 자유주의 등)를 논점별로 비교한다. “자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수많은 관점과 모델들로 갈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종의 ‘쟁점 정리형 교양서’다.

• 김비환, 『자유지상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

자유의 지지자들을 크게 세 부류로 나누고, 이들이 서로를 비판하는 논리와 한계를 검토한다. 자유주의 내부의 이념적 균열과 논증 방식을 관찰할 수 있다.

• 애덤 스위프트·스테판 뮬홀,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앞의 두 책이 자유주의 내부의 갈등이라면, 이 책은 외부와의 대립 구도를 다룬다. 공동체주의라는 외부 비판의 전통이 자유 개념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보여주는 비교 철학서다.


이 책들을 읽으면 자유라는 단일 개념이 실제로는 여러 분기에서 갈라지고 충돌함을 알 수 있다. 이로써 글의 논증에 정교한 근거들을 더할 수 있다.


(3단계) 원전 최소 컷 – 글의 뼈대가 잡힌 후 핵심만 읽기

지금까지 살펴본 논점에 대한 원전을 모두 읽을 필요는 없다. 핵심이 되는 몇 권만 정확히 읽어도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직접 증거는 충분하다. 전체적인 분량과 난도를 고려할 때, 다음의 책들이 유용하다.


존 로크, 『통치론』

자유 개념의 철학적 출발점.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의 최초 모델을 제시한다.

•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개인의 개성, 자율성, 사고의 실험이 사회 발전의 조건이라는 사회적 자유 개념을 주창한다. 즉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사회자유주의로 넘어가는 전환의 정점을 보여주는 책이다. 실제 글쓰기에서는 ‘자유 개념의 확장’을 설명하는 연결고리로 유용하다. 특히 해악 원칙은 자유의 경계를 논할 때 핵심 사례로 활용할 수 있다.

• 카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부르주아적 자유 개념의 허구성을 폭로한다. 자유 개념이 어떻게 해방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변화했는지 설명하는 데 필수다. 밀을 중심에 두면 고전적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의 연결이 분명해지고, 마르크스를 통해 자유 개념의 급진적 재구성이 드러난다. 이렇게 배치함으로써 글의 마지막 부분(자유의 비판적 재해석)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원전을 먼저 읽으면 배경의 큰 흐름을 놓치기 쉽다. 하지만 사상의 지도 → 쟁점 비교 → 핵심 원전 순서로 읽으면 다르다. 원전의 문장 하나하나가 전체 구조에서 어디에 배치되는지 정확히 보인다. 이것이 쓰기형 읽기의 장점이다.


과학 예시: 양자역학의 태동과 성립


양자역학은 물리학 전공자에게도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실제로 양자역학 교과서는 고차원적인 수식과 기호들로 기술되어 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양자역학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분야이며, 처음부터 과학 전공서를 읽어야 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과학 논픽션에서 중요한 것은 이론 자체가 아니라, 그 이론이 어떻게 태어났고, 어떤 문제의식과 갈등 속에서 발전했는지 파악하는 일이다. 이는 논문이나 교과서보다 과학사, 평전, 시대상 서술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의 목표는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양자혁명의 서사와 구조를 읽고, 글로 재구성할 수 있는 저자’가 되는 것이다.


(1단계) 전체 흐름 - 양자역학을 혁명적 서사로 파악하는 단계

이 단계의 목표는 양자역학이라는 거대한 변화를 하나의 서사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다. 즉 어떤 문제에서 출발해 어떤 논쟁을 거쳐 어떤 개념이 정립되었는지, 조감도 수준의 과학사 읽기가 필요하다.


짐 배것, 『퀀텀스토리』

1900년 막스 플랑크의 양자가설부터 20세기 후반의 표준모형까지, ‘양자혁명 100년’을 시간순, 논쟁순으로 정리한 대중 과학사. 양자역학이라는 대전환기의 주요 사건들을 어떻게 배열해야 글이 술술 읽히는지 배울 수 있다.

• 존 에이거, 『20세기, 그 너머의 과학사』

양자역학이 20세기 초의 정치적 불안, 기술적 전환, 지식체계 변동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는 과학의 사회사. 과학 이론이 사회·정치·경제 구조와 맞물려 변화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권을 읽으면 양자역학이 문제의 폭발 → 가설의 등장 → 실험의 반박 → 이론의 통합 → 철학적 해석의 분기를 거쳤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로써 양자역학을 거대한 전환 서사로 엮을 수 있는 뼈대가 잡힌다.


(2단계) 인물 중심 - 개념이 아니라 ‘사고 흐름’을 따라가는 단계

이제 조감도에서 내려와, 양자혁명 주역들이 가졌던 생각의 궤도를 따라가야 한다. 이 단계는 글에 감정선, 긴장감, 목소리를 만들어줄 것이다.


에른스트 페터 피셔, 『막스 플랑크 평전』

막스 플랑크가 어떻게 고전역학의 틀 안에서 고민하다가 양자가설이라는 급진적 해를 택하는지, 그 내적 갈등과 과학적 보수성의 충돌을 보여준다. 즉 “혁명적 발견은 언제나 보수적 맥락 속에서 탄생한다”라는 핵심 서사 구조를 제공한다.

• 월터 아이작슨,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양자역학의 공로자이자 비판자이기도 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다양한 면모를 조명한다. 고전역학과 양자역학의 거대한 대립을 인물의 감정과 고뇌 속에서 읽을 수 있다. 추상적인 논쟁을 생생한 이야기로 풀어낼 때 유용하다.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부분과 전체』

하이젠베르크가 직접 쓴 회고록이다. 닐스 보어와의 대화, 코펜하겐 해석의 형성, 측정 문제의 대두 등 역사적 현장을 당사자의 시선에서 볼 수 있다. 양자역학 내부의 풍경을 서술할 때 강력한 1차 자료가 된다.


이 단계의 책들은 양자역학이 개인적 신념, 과학적 문제, 세대 간 갈등이 결합된 드라마임을 보여준다. 논픽션에 필수적인 인간적 긴장감을 제공하는 자료들이다.


(3단계) 시대상 결합 – 양자혁명을 20세기의 변동 속에서 재구성하는 단계

마지막으로 양자역학을 20세기 초의 지적·문화적 위기 속에서 발생한 전환점으로 확장해야 한다. 여기에는 과학 자체보다는 사회학적 배경이 있는 책들이 유용하다.


토비아스 휘터, 『불확실성의 시대』

제1차 세계대전, 정치적 극단주의, 유럽 지식사회의 불안정 속에서 왜 불확실성을 따르는 물리학이 등장했는지 설명한다. 양자역학을 시대적 정서와 연결하는 최고의 서사 참고서다.

• 남영, 『휘어진 시대』

과학과 정치, 이론과 이념의 교차점에서 과학자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는 국내 작가의 독보적 과학사 저작. 과학자도 결국 시대의 인간이라는 관점을 뒷받침해 줄 수 있다.


이 책들은 양자혁명을 문화·사상·정치적 위기와 연동된 사건으로 재구성할 수 있게 해 준다. 즉, 양자역학은 수식의 혁명이 아니라 20세기 지성사의 대격변이라는 관점이 완성된다.


쓰는 사람의 읽기는 다르게 움직인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이 잘 써질까?” 독서가 글쓰기의 필수 조건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사이에 아무 장치도 두지 않으면, 읽기는 쉽게 사라지는 감상이 되고 만다.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입력의 양이 아니라 입력의 설계다. 무엇을 쓸지, 그것에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읽을지에 따라 같은 책도 전혀 다른 자산이 된다. 쓰기형 읽기는 이 과정을 의식적으로 설계하는 일이다.


쓰기형 읽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목적에 맞게 재료를 구해서 전략적으로 읽는 것.” 감상을 완전히 버리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감상은 출발점이지 도착지가 아니다. 쓰기형 읽기는 “좋았다/별로였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이 책이 내 글의 어디에 들어갈지, 이 개념은 어떤 문단을 떠받칠지, 이 장면은 어느 대목에서 독자의 시선을 붙들지, 그런 질문을 던지며 읽는다.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마찬가지다. 지도 → 쟁점 → 최소 원전이라는 구조를 따라가면, 읽는 행위는 그 자체로 목차와 논지를 구성하는 예비 작업이 된다.


이를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다.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 전에,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 한 가지를 정하고, 그 글에 필요한 책 세 권을 골라 목록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 세 권을 "감상이 아니라 설계의 눈으로 읽어보는 것". 그 순간부터 읽기는 더 이상 막연한 취미가 아니다. 쓰기를 위한 준비 작업이 되고, 준비가 쌓일수록 문장은 조금씩 달라진다.


결국 쓰는 사람의 읽기란 남의 문장을 유유히 즐기는 시간이 아니다. 자기 문장을 미리 짜두는 치밀한 준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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