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의 어느 날

스탠딩 에그(2023), <스물아홉>

by 배대웅

지금까지의 내 삶은 대체로 평탄했다. 큰 굴곡 없이 흘러왔고, 해야 할 일은 제때 해냈으며, 운도 나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언제냐”는 질문을 받으면, 잠시 말을 고르게 된다. 딱 잘라 말할 만큼 분명한 불행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고 넘길 수는 없어서다. 다만 그렇게 몇 초를 더듬다 보면 한 시기로 생각이 모인다. 2009년. 만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의 해였다.


그해의 나는 흔히 말하는 고학력 백수였다. 원래는 박사과정까지 마치고 연구를 하며 살 생각이었다. 연구실에서 나이 들어가는 미래가 그려졌고, 그게 자연스러운 인생 경로라고 믿었다. 하지만 석사과정 2년을 끝으로 그 계획은 조용히 접었다. 이유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연구를 업으로 삼기에는 내 실력이 모자란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에는 논술강사 일도 그만뒀다. 그때까지 등록금과 생활비를 책임져주던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하지만 몇 년을 하다 보니 회의가 몰려왔고, 무엇보다 학위논문에 집중해야 했다. 그 결과 논문은 겨우 마무리했지만, 대가는 곧장 날아왔다. 생애 처음으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몇백만 원이라는 금액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심각하지 않다. 하지만 난생처음 ‘빚’이라는 걸 떠안았던 당시의 나에게는 꽤 묵직한 숫자였다.


대학원 졸업 후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났으나 취업은 되지 않았다. 언론사 시험에 도전했지만 늘 마지막 문턱에서 미끄러졌다. 논술강사를 하며 모아둔 돈은 바닥을 보였고, 고정 수입은 없었다. 하루하루가 계산의 연속이었다. 이번 달은 어떻게 넘길 수 있을까, 다음 달은 괜찮을까.


그 와중에 결정타가 날아왔다. 5년 넘게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됐다. 사실 전조는 몇 달 전부터 있었다. 관계가 기울고 있음을 모를 만큼 둔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붙잡아보려 했고,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반쯤은 포기한 상태로 이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 얼굴은 보고 끝내자” 그 말에 마지막 약속을 잡았다. 나는 신림동에서 자취하고 있었고, 취업한 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의 회사는 역삼동에 있었다. 이전까지는 늘 신림동이나 역삼동에서 만났다. 그런데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딱 중간쯤 되는 곳, 사당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짜치는 선택이었다.


금요일 퇴근길, 사당역은 데이트하러 가는 연인들의 웃음소리와 서둘러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북적였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5년 2개월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 순간 아픔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두려움이었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그 세세한 일상을 한 사람과 공유해 왔다. 하루의 끝에 전화를 걸고, 별일 없는 안부를 묻고, 다음 만남을 약속하는 삶. 그 시간을 이제 혼자 채워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실감이 났다. 그 공백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오며 휴대폰을 꺼냈다. 단축번호 1번을 지웠다. 그리고 통신사에 전화를 걸어 커플 요금제를 해지했다. 요즘 친구들은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시절 연인들이 헤어지면 가장 먼저 거치는 의식 같은 것이었다.


그날은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집에 들어가면 늘 가장 먼저 하던 일이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것이었는데, 그걸 안 하면 대체 뭘 해야 할까. 그 질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결국 방향을 틀어 잠실구장으로 향했다. 혼자 야구 경기를 볼 생각이었다. 경기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밤 10시가 넘을 테니, 그 시간이라면 좀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야구 인기가 별로여서, 금요일 경기도 현장에서 표를 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입장이 조금 늦었지만 관중석은 한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LG 팬이다. 그날의 상대는 하필 잠실의 라이벌이자 잘 나가던 두산. 맥주 한 잔을 사 들고 1루 쪽에 앉아 멍하니 경기를 봤다.


예상대로 LG는 초반부터 쥐어 터지고 있었다. 5대 0. 딱히 응원하러 간 것도 아니어서, 그저 맥주를 홀짝이며 공의 궤적만 눈으로 따라갔다. 그런데 경기 후반이 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4번 타자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연타석 홈런이 터지며 점수 차가 좁혀졌다. 어느새 5대 4, 한 점 차가 되었다.


그리고 9회 말 1사 만루. 다시 페타지니의 차례. 긴장감이 팽팽하던 야구장에 날카로운 타구음이 울려 퍼졌다. 공은 밤하늘을 가르며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끝내기 만루홈런. 그 순간 나는 괴성을 지르며 옆에 있던 아저씨(그날 처음 본)를 끌어안고 무적 LG 만세를 외쳤다. 집에 들어가기 두려워 도망치듯 찾아온 야구장이었는데, 그 만루홈런 하나로 내 인생의 5대 0 패배도 뒤집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찼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1978년 야쿠르트 스왈로스 데이브 힐턴의 2루타를 보고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는 2009년 LG 트윈스 로베르토 페타지니의 끝내기 만루홈런을 보고, 그때까지의 불안과 절망에서 기어 나올 용기를 얻은 셈이다.


신기하게도 긴 연애의 후유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2주쯤 지나자 마음은 꽤 차분해졌다. 아마도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끝난 관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야구 경기를 본 지 한 달쯤 지나, 한 연구소에서 계약직 일을 시작했다. 선배의 소개로 들어간, 과학기술정책이라는 낯선 일을 하는 곳이었다. 그때는 일이 낯설고 말고를 따질 여유도 없었다. 당장 생계가 중요했으니까. 그렇게 스물아홉의 어둠 속에 조금씩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만약 그때, 사당역에서 울음을 삼키며 걷던 스물아홉의 나에게 누군가 미래를 말해줬다면, 나는 믿었을까? "너는 번듯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가질 것이고, 좋은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릴 것이며, 네 이름으로 된 책을 내는 작가가 될 거야." 아마 나는 학자금 대출 이자 고지서를 집어던지며, 그 입 닥치라는 표정으로 상대를 훑어보았을 것이다. 그 시절의 나는 희망을 거절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감당할 여유가 없어서 믿지 못하던 상태였으니까.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2009년 4월의 어느 날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우연히 알게 된 한 노래 덕분이었다. 스탠딩 에그의 <스물아홉>.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특별한 감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몇 구절을 지나면서, 이 노래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나에게 새로울 말은 없었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정확히 필요한 문장들이어서 그랬을 것이다.


특히 가사의 마지막 부분. “많이 넘어졌어도 멈추지 않던 시간들”


돌이켜보면, 나는 잘 버틴 사람은 아니었다. 계획은 자주 틀어졌고, 선택에는 늘 확신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넘어지면서도 완전히 멈춰 서 있지는 않았다는 것. 사당역을 걸어 나오던 밤에도, 집에 들어갈 용기가 없어 향했던 야구장에서도, 텅 빈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던 순간에도, 나는 다음 날을 향해 아주 조금씩 밀려가고 있었다.


어떤 노래는 추상적인 감각으로 남지 않고, 삶의 구체적인 파편으로 스며든다. <스물아홉>도 그렇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4월의 서늘한 밤바람, 쌉싸름한 맥주의 맛, 그리고 한 타석이 그려낸 찬란한 포물선이 떠오른다. 그 장면들은 위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실제로 통과해 왔다는 증거처럼 내게 남아 있다.


그날 사당역에서, 잠실구장에서, 그리고 텅 빈 집으로 돌아오던 밤의 나에게, 지금의 나는 이 정도는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괜찮다고. 정말로, 괜찮아진다고.


해 질 녘 거리에서 문득 생각해
그땐 어른이 되는 게 이럴 줄 몰랐네
누군가에겐 어른, 어디선간 막내
내 자리는 어딘지 가끔 어지러워

거울 속 얼굴은 변한 게 없는데
아이와 어른 사이의 나는 어디에

한잔, 한잔 오늘을 위해
애썼던 나의 하루를 위하여
한잔, 한잔 우리를 위해
조금씩 나아지는 작은 무언가를 위하여

갖고 싶던 그 사람과 닿고 싶던 그곳
이젠 그저 흐릿하게 웃고 마는 추억
우린 모두 누군가의 '그때 그 사람'
너도 어딘가에서 내 생각을 할까?

너와 마시던 술은 쓴맛이 났는데
술이 달콤한 오늘 밤 너는 어디에

한잔, 한잔 그대를 위해
지키지 못 한 약속을 위하여
한잔, 한잔 지금을 위해
닿지 않는 곳에서 머무를 그대를 위하여

안녕, 안녕 나의 지난날
서툴고 여린 마음의 시간들
안녕, 안녕 나의 젊은 날
많이 넘어졌어도 멈추지 않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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