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대 이후로 줄곧 글을 써왔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대학원과 직장 초년생 무렵이었다. 글쓰기가 곧 생존과 직결되어 있었던 시절이다. 대학원에서는 논문이었고, 직장에서는 보고서였다.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분량도, 마감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내 글을 낱낱이 해체한다’라는 사실이었다.
교수님들은 내 글을 문장 단위로 끊어 읽었다. 왜 이런 개념을 썼는지, 왜 이 문장은 앞과 연결되지 않는지, 이 주장은 어디서 근거를 가져왔는지, 복잡한 논지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직장에서도 비슷했다. 상사는 한 줄을 고쳐놓고는 이건 보고서의 문장이 아니라며 글 전체를 일축해 버렸다. 수십억 원이 투입될 연구사업의 추진 계획이 너무 길다며, 한 페이지가 넘어가면 읽지 않겠다고 되돌려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억울했고,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그 과정이 일종의 권력 행사처럼 느껴진 적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글이 가장 많이 늘었던 것도 그때였다. 다음에는 지적당하지 않겠다는 강박적인 자기검열, “지난번에 여기서 무너졌으니 이번에는 더 단단한 논거를 세워야지” 하는 처절한 방어기제가 글의 밀도를 높였다. 타인의 차가운 시선은 내 글을 객관화하는 거울이 되었고, 그 속에서 내 문장은 비로소 응석에서 벗어나 어른의 언어로 진화할 수 있었다. ‘비평’이 글을 나아지게 하는 고통스럽지만 확실한 동력이었던 셈이다.
이 관점에서 브런치를 바라보면 묘한 역설이 느껴진다. 브런치는 가장 대표적인 글쓰기 플랫폼이다. 심사를 통과한 이들에게 부여하는 ‘작가’의 정체성도 분명하다. 그런데 정작 글을 발전시키는 핵심 요소인 비평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브런치는 놀라울 정도로 상냥하고 따뜻하다. 밑도 끝도 없는 비난과 혐오가 판치는 여타 온라인 커뮤니티와 비교하면, 브런치의 댓글 창은 갈등이 소거된 평온한 정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브런치만의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작가의 성장이 목적이라면, 이 다정함은 독이 될 수도 있다. 브런치의 독자들은 대개 글을 깊이 파고들어 따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피상적인 공감과 응원을 보내는 데 익숙하다. 글 자체의 완성도보다, 글쓴이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문화가 정착된 탓이다. 비판은 무례함으로 치부되고, 지적은 공격으로 오해받기 쉽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주고받는 라이킷은 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는, 관계적 연대의 표시로 기능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비평의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다. 누군가의 글이 수준 미달이어도, 혹은 논리적으로 심각한 결함이 있어도,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감하고 가요"라는 무해한 문장들만 남는다.
브런치에 비평이 없는 이유는 단순히 독자들이 착해서만은 아니다. 유통되는 글의 성격이 비평의 여지를 봉쇄하고 있다는 이유도 크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유형의 글을 꼽을 수 있다.
첫째는 고통 서사다. 자신이 겪은 비극적인 사건이나 내밀한 아픔을 고백하는 글들이다. 이런 글 앞에서 독자는 냉정한 심사위원석보다는 따뜻한 관객석을 택하게 된다. 글이 엉성하거나 논리적 결함이 보여도, 그 아픔에 대고 기술적인 지적을 늘어놓기는 어렵다. 그것은 안 그래도 아픈 글쓴이에 대한 결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결국 고통은 비평을 막아서는 윤리적 방패가 되고 만다.
둘째는 공자님 말씀 서사다. "최선을 다하자",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자",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와 같은 자기계발 교훈을 담은 글이다. 이 글들은 공자님 말씀처럼 보편타당한 진리를 설파해서 반론의 여지가 없다. 모두 행복하게 살자는 주장에 누구도 돌을 던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는 글이 되기도 한다. 작가는 안전한 포지션을 택함으로써 비평의 위험을 최소화하지만, 그 대가로 글이 가져야 할 날카로운 긴장감마저 포기하게 된다.
브런치 안에서야 공감과 지지가 충분히 자산이 된다. 그러나 한 발만 밖으로 나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공모전, 출판사 투고, 언론 기고. 그 세계의 기본값은 무응답과 거절이다. 낮은 확률을 뚫고 계약에 성공해도, 편집자는 문장을 가차 없이 수정하려 든다. “이건 독자가 이해 못 합니다.” “이 단락은 빼죠.” “너무 뻔한 전개 아닌가요.” 브런치 식 칭찬에 익숙해진 작가들에게 이러한 거절과 교정의 과정은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가 된다. 자신의 글이 완벽하다고만 생각하다가, 시장의 냉정한 평가를 마주했을 때의 무력감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비평이 없는 플랫폼에서 작가적 자의식은 비대해졌지만, 그것을 지탱할 실력의 뼛속은 텅 비어버린 탓이다. 한 마디로 '글쓰기의 골다공증'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나는 브런치가 나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곳은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매우 좋은 공간이다. 무관심과 냉소 대신 지지와 응원을 경험할 수 있는 ‘환대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여기서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낸다. 그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요람 안에만 머무르면 어른이 될 수 없다. 글이 취미를 넘어 작업이 되고, 감상을 넘어 메시지로 나아가려면, 비평이라는 냉정한 통과의례를 피해서는 안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타인의 시선 앞에 자신을 온전하게 내놓는 행위이며, 그 시선이 늘 온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박수 소리가 아닌 적막한 의심 속에서 벼려진다. 타인의 지적에 밤잠을 설치고 논리의 허점을 메우려 분투하는 그 ‘불편한 시간'이야말로 글쓰기의 본질이다. 비평 없는 글쓰기는 달콤한 위안을 줄지 모른다. 그러나 객관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글은 작가라는 자기만족의 정체성을 소비하는 도구가 될 뿐이다. 편안함에만 머무는 글은 결코 세상을 향해 멀리 나아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