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성과는 없다

by 배대웅

얼마 전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보내온 것이었다. 상자를 열어 보니 복각판 책 두 권이 들어 있었다. 오래전에 수십만 부가 팔렸던 베스트셀러들이라고 했다. 저자도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다. 출판사 대표님이 메모를 하나 붙여 두었다. “아내분께 선물해주세요.”


나는 그 말 그대로 했다. 사실 나는 이런 종류의 책을 읽지 않는다. 흔히 '자기계발서'로 불리는 책들. 삶의 의지를 이야기하고, 용기와 자신감을 강조하고, 독자에게 앞으로 나아가라고 떠미는 책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너무나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 같다. 그래서 이런 책을 보면 대체로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게 그렇게 많이 팔릴 만한 책인가?


그런데 며칠 뒤 아내가 책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 정말 잘 썼다.”

“그래?”

“읽기가 너무 편해. 완전 술술 넘어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해.”


그리고 나를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오빠도 이렇게 좀 쉽게 쓰면 좋겠다.”

“에이 내 글 정도면 교양서 치고는 쉬운 편이지.”

“아니야. 오빠 글은 어렵더라.”


아내는 평소에도 내 글을 꽤 읽는 편이다. 무엇보다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독자다. 그런 사람이 글이 어렵다고 한다면, 그 평가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그 책들을 읽어보았다. 뭐가 다르길래 그렇게 칭찬했는지 궁금했다. 내용 자체는 놀랄 만큼 단순했다. 가정과 일, 아내의 꿈, 엄마의 성장 같은 주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메시지는 명확했고 구조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한 가지 특징이 보인다. 무엇보다 글이 논리로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을 먼저 움직인다. 저자의 경험이나 일상의 사례가 계속 등장하고, 그것이 독자의 기억과 자연스럽게 공명한다. 독자는 논증을 따라가기보다는 자기 삶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건 내 이야기다”라는 감각이 형성된다.


이 방식은 설명이 아닌 공감으로 작동한다. 목표가 독자의 판단을 바꾸는 데 있지 않고, 감정을 움직이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장도 분석보다는 대화에 가깝다. 글을 읽는다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느낌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감정의 흐름이 독자를 몰입시킨다.


그래서 독자의 반응은 단순한 지점에서 갈린다.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발견하느냐, 아니면 남의 이야기로 남겨 두느냐. 아마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독자가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했을 것이다. 수십만 부라는 결과 그렇게 해야 비로소 설명된다.


결국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그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책이 많은 사람에게 읽힌 이유까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되지 않는 성공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왜 어떤 책은 수십만 부가 팔리는지. 왜 어떤 작가는 폭넓은 팬층을 확보하는지. 왜 어떤 작품은 높은 평가를 받는지.


그럴 때 우리는 쉽게 이유 만들어낸다. “운이 좋았겠지” “출판사가 마케팅을 잘했나 보지” “대중의 취향이 단순하니까 그렇지” 이런 설명들은 꽤 편리하다. 무엇보다 작가의 자존심을 보호해 준다.


하지만 글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한다. 차라리 다른 질문이 필요하다. “왜 그 책은 그렇게 많은 독자의 경험을 건드렸는가?” “왜 그 문장은 그렇게 쉽게 읽히는가?” “나는 그 구조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작가에게 불편하다. 그러나 글을 개선하는 동력은 대체로 이런 불편함 속에서 나온다.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것도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충족이유율이라고 하는 이 원리는 합리주의 철학의 핵심 명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렇게 된 이유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이다. 아마 책의 성공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다른 사람의 책이 아니라 내 글의 문제로 돌아온다. 이제 이해되지 않는 성공을 만나도 예전처럼 쉽게 평가부터 내리지 않는다. 대신 그 작품에서 단 하나라도 배울 만한 요소가 있는지 먼저 살펴본다. 세상에 이유 없는 성과는 없다. 다만 내가 아직 그 이유를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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