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구독자 수가 대체 뭐길래

by 배대웅

브런치에 접속하면 가장 먼저 시선을 강탈하는 숫자가 있다. 바로 '팔로워', 과거에는 '구독자'라 불렸던 그 숫자다. 그 옆에는 내가 팔로잉하는 숫자도 떠 있긴 하다. 하지만 왼쪽부터 글을 읽는 우리네 습성상 주인공은 단연 왼쪽의 구독자 수다.


이건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숫자는 늘 단순하지 않다. 677과 6,770은 비슷한 구조를 갖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급'의 차이는 가차 없다. 그래서 이 숫자가 남들보다 작으면 괜히 지는 기분이 들고, 어떻게든 키워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생긴다. 이런 경쟁 유도 방식은 묘하게 한국적이다. 어쩌면 브런치 구독자 수는 한국인의 종특인 '서열화'의 디지털 버전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를 6년째 하고 있는 나도 이 숫자에서 자유롭지 않다. 물론 나는 그동안 “구독자 수보다 글쓰기라는 본질이 더 중요하다”라는 지론을 가져왔다. 이것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구독자 수가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다익선인 건 맞다. 작가의 영향력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면서, 이곳에서는 일종의 ‘레벨’로 통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6년간 677명이라는 내 구독자 숫자는 그다지 자랑할 만한 수치는 아니다. 브런치 시작 몇 달 만에 수천 명을 찍는 괴물 신인들이 수두룩한 판국에, 나는 거북이의 속도로 중간중간 졸면서 기어 온 셈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 숫자를 겸허히 받아들이며 득도한 스님처럼 지내온 건 아니다. 나에게도 “이번에야말로 터진다”라며 김칫국 드링킹했던 변곡점들이 있었다. 다만 그 기세등등했던 기대감에 비해 결과값이 지나치게 소소했을 뿐이다. 내 브런치 인생을 흔들 뻔했던, 그러나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난 그 역사적 현장들은 대략 이렇다.


첫 번째는 출간 계약이었다. 그것도 이 바닥에서 잘 나가는 웨일북에서 제안이 와서 맺은 계약이었다. 나는 당연히 “이제 나도 메이저의 길로 들어서나?”라며 셀럽이 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당시 구독자 수는 100명 초반대였다. 하지만 결과는? 변화 없음. 출간 계약이 구독자를 데려다주지는 않았다.


두 번째는 다음 메인 입성이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리뷰 글이었는데, 하루 조회 수가 몇천 단위로 뛰는 경험을 처음 해봤다. 그래서 확신했다. 브런치의 자매 격인 다음의 간택을 받았으니, 브런치에서 한자리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결과는? 구독자 약 10명 증가. 이때도 “역시 다음은 네이버나 구글에 비하면 쩌리구나”하고 넘어갔다.


가장 드라마틱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다. 브런치의 슈퍼스타 소위 김하진 작가님이 나를 소개하는 글을 브런치에 올렸을 때다. 그날 브런치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렸다. 대부분이 구독 알림이었다. 그 글이 브런치 메인에까지 걸리면서 정점을 찍었고, 이틀 새 100명 가까이 구독자가 늘었다. 브런치 생활 중 가장 ‘폭발’에 가까웠던 순간이다. 이건 마치 유재석 옆에 앉았다가 덩달아 분량이 살아난 조세호가 된 기분이었다. 소위 김하진 작가님을 내 브런치 생활의 은인으로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이후로 다시 평온한 정체기가 이어졌다. 잠깐의 반짝임은 신기루였을 뿐이다. 책을 두 권 냈고, 두 권을 더 낼 계약도 했지만, 구독자 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나는 자기객관화를 포기하고 본격적인 남 탓 모드로 전환했다. 내 글이 문제가 아니라, 이 판때기 자체가 문제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거 브런치 형, 이거 장난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 5년 넘게 과학과 인문학 글을 꾸준히 써온 유저를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 거요? 메인에 한 번을 안 걸어주니 내가 구독자가 안 늘잖음?”


그러니까 내가 비주류 장르를 써서, 혹은 브런치가 나를 쌩까서 그렇다는 나름의 정신승리정당화였다. 급기야 브런치의 이 편협한 행태에 분노하는 작가님들과 함께 브런치노동자당까지 결성했다. 브런치 내부 혁신이 안 된다면, 외부에서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체 게바라 찜쪄먹을 논리였다(10만 브런치 작가 중 혁명동지들이 8명밖에 안 되는 건 안 자랑이다).


그런데 무려 만 5년이 지나서, 브런치가 정말 “옛다 관심”하듯 내 글을 메인에 걸어주었다. 다음 출간작인 <자기만의 글쓰기 수업> 매거진의 연재글 중 하나였다. 심지어 몇 주 뒤에는 구독자 80만 명의 카카오톡 브런치 채널에까지 글을 꽂아줬다. 그러자 나는 언제 브런치를 욕했냐는 듯 다시 설레발 모드로 태세 전환했다. “역시 존버는 승리하는구나. 이제야 진짜로 터지겠다.” 물론 브런치노동자당에서는 반동분자로 찍혀서 자아비판을 해야 했지만, 숫자가 터질 텐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번에야말로 진짜 대폭발을 기대해 볼 만했다.


그리고 대폭발의 최종 스코어는 이랬다.


‧ 브런치 메인: 구독자 +3

‧ 카카오톡 채널: 구독자 +60


기대는 핵분열이었으나, 실제로 일어난 건 겨울철 정전기였다.(…)


이로써 모든 변명이 차단되었다. 다음 메인, 브런치 메인, 카카오톡 채널까지, 브런치가 제공하는 모든 치트키를 다 써봤음에도 숫자가 이 모양이다. 이건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된다. 그냥 내 글이 노잼인 거다. 6년의 글쓰기 끝에 얻은 결론이 “내 글은 노잼”이라니, 처참할 만큼 명확한 자기객관화다.


하지만 그래도 677이라는 숫자를 실패의 기록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숫자 안에는 대소 비교로만 환원되지 않는, 다른 성질의 결이 뚜렷하게 섞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내 구독자 중에는 댓글을 정성스럽게 남겨주시는 분이 많다. "잘 보고 갑니다" 같은 영혼 가출 리액션이 아니라, 글을 꼼꼼히 읽고 고민한 사유의 흔적이 역력하다. 가끔은 내 원문보다 날카로워 공동 필진으로 초빙하고 싶은 분도 있다. 또한 나는 구독자를 늘리려는 어떤 잔기술도 쓰지 않았다. 예컨대 감정적인 소재로 동정심을 자극하거나, 선구독 후 맞구독 안 해주면 구독을 끊거나, AI로 쓴 댓글을 무지성으로 뿌려서 구독을 유도하는 등의 전략들. 결국 나의 677명은 노잼이라는 거대한 진입장벽을 뚫고, 오직 문장의 공명만으로 모인 정예들이다. 나는 이렇게 수준 높은 집단을 확보했다는 사실에 80만 카톡 채널 노출보다 더 큰 자부심을 느낀다.


사실 요즘 브런치를 보면 현타가 밀려온다. 다들 글을 쓰는 건지, 구독자를 관리하는 건지 모르겠어서다. 숫자가 앞서니 비교가 되고, 비교가 생기니 전략이 등판한다. 물론 예전에도 구독자 늘리기 전략은 있었다. 그런데 어째 작가들의 필력은 퇴보하는데 전략만 발달하는 것 같다. 인류 진보의 총아인 AI가 고작 브런치 구독자 늘리기에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현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건 참 덧없는 짓이다. 여기서 구독자 몇천, 몇만 명을 찍으며 여포질을 해도, 브런치 밖으로 한 발짝만 나가면 우리는 듣보잡일 뿐이다. 브런치에서 1년에 수백 권의 출간작이 쏟아지지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만큼 자생력 있는 책은 극소수다.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도 브런치 네임드 작가를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요컨대 구독자 수는 이 안에서만 의미가 있는 '지역 화폐'와 같다.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구독자 수에 목을 매기 시작하는 순간, 옆에서 글을 쓰는 작가는 동료가 아니라 숫자 1을 올려줄 도구로 전락한다. 그리고 그가 쓰는 문장이 아니라 구독을 눌러줄지 말지만 관심사가 되어버린다. 이런 태도는 글쓰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짜치는 것이다. 글쓰기의 이유가 고작 숫자 1을 더하기 위해서란 말인가? 숫자에 맞춰 문장을 깎고, 구독을 유도하려 문체에 필터를 끼우다 보면, 결국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증발하고 만다. 그 질문을 잃어버린 사람을 작가라 할 수는 없다. 그건 자기 인지도 높이기에 급급한 글팔이일 뿐이다.


그러니 숫자에 매몰되어 빛나는 문장을 갉아먹지 말자. 브런치를 로그아웃하는 순간 우리는 그저 글쓰기를 좋아하는 무명의 개인으로 돌아간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그 서늘한 익명성 속에서 나만의 사유를 기록하기 위한 문장을 벼려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숫자놀음보다 훨씬 작가다운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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