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고의 기술 ②

문장을 읽히게 만드는 마지막 공정

by 배대웅

“완벽한 문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완벽한 절망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오는 이 문장은 글쓰기에 대한 일종의 선언에 가깝다. 소설 속에서 이 문장은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전제로 한다. 인간의 감정, 기억, 경험은 애초에 언어로 완전히 포착될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장도 언제나 어딘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하루키의 이 문장은 작가의 한계에 대한 고백이자, 모든 글쓰기가 출발하는 조건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완벽한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목표로 글을 써야 할까? 답은 바로 퇴고다. 완벽은 도달하는 지점이 아니라 밀어붙이는 방향이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고치는 것. 글쓰기는 결국 그 반복을 어디까지 밀고 가느냐에 달려 있다.


퇴고의 마지막 단계


앞에서 우리는 퇴고의 두 축을 다루었다. 하나는 태도였다. 타인의 지적을 받아들이고, 자기 문장을 의심할 수 있는 자세. 다른 하나는 구조였다. 글 전체를 하나의 논지로 수렴시키고, 문단 간의 관계를 재배열하는 작업. 이 두 단계를 거치면 글은 더 이상 ‘무너진 초고’의 상태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완성된 것도 아니다.


여기서 마지막 단계가 등장한다. 앞에서도 말했듯, 독자는 생각의 흐름이 아니라 논리의 구조를 따라 읽는다. 글이 이해되려면 구조가 먼저 명확히 정리되어야 한다. 그런데 독자가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구조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구현된 문장이다. 따라서 마지막 단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렇게 정리된다. “이 문장은, 그 안에 담긴 구조를 독자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해 보이지만 여러 층위의 점검을 포함한다. 의미는 정확하게 전달되는지, 호흡은 자연스러운지, 불필요한 저항은 없는지, 무엇보다 독자가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지. 문장 단위의 퇴고는 이 질문에 체계적으로 답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의 퇴고는 미세하지만 결정적이다. 구조가 아무리 잘 짜여 있어도, 문장에서 한 번이라도 멈추는 순간 흐름은 끊긴다. 독자는 구조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통해서만 따라가기 때문이다. 결국 글의 완성도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결정된다.


문장 퇴고를 위한 다섯 가지 원칙


구조적 퇴고가 글을 재설계한다면, 문장 퇴고는 그 설계가 실제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작업이다. 이 단계에서의 문제는 더 이상 “무엇을 말할 것인가”가 아니다. 이미 말할 내용은 정해져 있고, 논리의 흐름도 확보되어 있다. 그럼 남은 문제는 “그 내용이 독자에게 저항 없이 전달되는가”이다.


문제는 이 작업이 매우 미세하다는 데 있다. 구조의 오류는 눈에 잘 띄지만, 문장의 오류는 대부분 그럴듯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작가는 충분히 잘 썼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독자는 읽으면서 그 문장에서 계속 멈춘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작은 저항은 작가에게는 보이지 않고, 독자에게만 쌓인다.


그래서 문장 퇴고 역시 감각이 아니라 절차로 다뤄야 한다. 다음의 다섯 가지 원칙은 그 보이지 않는 저항을 드러내기 위한 질문들이다.


1) 줄일 수 있는 문장은 반드시 줄였는가?


문장 퇴고의 출발점은 삭제다. 초고의 문장은 대개 필요 이상의 말을 품고 있다. 생각을 따라가며 쓰다 보면, 이미 전달한 내용을 한 번 더 풀어 말하거나 단정을 피하려고 완충 표현을 붙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틀린 표현이 아니다. 그래서 더 쉽게 살아남는다.


"~라고 할 수 있다",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하는 과정에서" 같은 표현은 의미가 아니라 문장을 늘리는 경우가 많다. 이런 부분은 과감히 덜어내야 한다. 문장을 줄인다는 것은 짧게 꾸미는 일이 아니다. 같은 의미를 더 직접적인 경로로 전달하는 일이다.


2)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동어반복은 초고에서 가장 흔한 오류다. 자신의 판단을 강조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슷한 표현을 더 얹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 문장은 길어지고, 정보는 늘어나지 않는다.


“중요한 핵심 문제”, “새로운 변화의 전환점” 같은 표현이 그렇다. 겉으로는 여러 단어를 쓴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의미를 겹쳐 말한 것이다. 이런 반복은 글에 힘을 더하기는커녕 속도만 떨어뜨린다. 문장을 점검할 때는 이 말이 정말 새로운 내용을 더하는지, 아니면 이미 한 말을 되풀이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동어반복을 제거하면 문장은 짧아질 뿐 아니라, 정보 단위가 분리되면서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3) 주어와 서술어가 정확하게 대응하는가?


주술 호응은 가장 기초적인 문법이다.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맞지 않으면 문장은 곧바로 틀어진다. 따라서 이 문제는 문장을 더 세련되게 다듬는 차원이 아니라, 문장을 정확하게 성립시키는 최소 조건에 가깝다.


초고에서 주술 호응이 자주 무너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주어 뒤에 설명과 수식이 길게 끼어들면, 작가도 처음 세운 주어를 잊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지막에 오는 서술어가 원래의 주어와는 따로 놀게 된다.


그래서 퇴고 단계에서는 문장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이 서술어가 정말 이 주어를 받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긴 문장일수록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그 관계가 틀어져 있다면, 중간 설명을 덜어내거나 문장을 둘로 나누는 편이 낫다.


4) 문장의 리듬이 단조롭지 않은가?


문장은 뜻만으로 읽히지 않는다. 길이와 호흡도 함께 읽힌다. 그래서 모든 문장이 비슷한 길이와 구조로 이어지면 글은 금세 단조로워진다.


짧은 문장이 계속되면 간결해 보일 수는 있으나 강조가 사라진다. 긴 문장이 반복되면 독자가 호흡을 잃는다. 어느 한쪽이 늘 문제인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패턴만 계속되면 글 전체가 평평해진다.


따라서 문장 퇴고에서는 길이와 호흡의 변화를 통한 완급 조절도 중요하다. 짧은 문장은 판단을 또렷하게 하고, 긴 문장은 설명을 이어가게 한다. 이 차이가 잘 드러나야 글에 생동감이 생긴다.


5) 이 문장은 한 번에 이해되는가?


문장 퇴고의 마지막 기준은 결국 이것이다. 독자가 문장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가. 어법에 맞고 의미도 통하더라도, 한 번에 읽히지 않으면 좋은 문장이라고 하기 어렵다.


다시 읽어야 이해되는 문장은 대개 구조가 과하게 압축되어 있거나, 정보가 겹쳐 있거나, 논리의 연결 관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경우다. 작가는 머릿속에서 이미 연결 과정을 알고 있어서 이런 문제를 잘 못 느낀다. 하지만 독자는 문장에 드러난 정보만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퇴고 단계에서는 처음 읽는 사람이 되짚지 않고도 바로 이해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 이 다섯 가지 원칙을 실제 문장 퇴고에 적용해 볼 차례다. 다음은 “팀 프로젝트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에 대한 예문이다.


(Before) 팀 프로젝트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팀원들이 각자 맡아야 할 역할이 충분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지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거나 반대로 아무도 맡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또한 팀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일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 점검도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들이 반복적으로 계속 쌓이게 되면 프로젝트의 완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따라서 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여러 문제들을 미리 점검하고 사전에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After) 팀 프로젝트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역할과 일정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무엇을 맡는지 선명하지 않으면 같은 일을 두 번 하거나, 반대로 아무도 맡지 않는 일이 생긴다. 여기에 일정 관리와 중간 점검까지 늦어지면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기 쉽다. 결국 문제는 협업 자체가 아니라, 협업의 운영 기준이 느슨하다는 데 있다. 따라서 팀 프로젝트를 제대로 진행하려면 우선 시작 단계에서 역할을 명확히 나눠야 한다. 더불어 일정과 점검 기준까지 함께 세워 두어야 한다.


그럼 Before의 문장이 다섯 가지 원칙을 거치며 어떻게 After로 바뀌었는지 살펴보자.


1) 줄일 수 있는 문장은 반드시 줄였는가?


Before에는 문장을 늘리기만 하고 의미는 거의 보태지 않는 표현이 여럿 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충분히 명확하게”, “사전에 조정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같은 표현이 그렇다. 이런 말들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문장의 핵심을 흐리게 만든다.


After에서는 이런 완충 표현을 덜어내고 판단을 바로 제시했다. “팀 프로젝트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역할과 일정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첫 문장은 Before보다 짧지만, 전달하는 내용은 더 또렷하다.


2) 같은 의미를 다른 말로 반복하고 있지 않은가?


Before의 “여러 가지 다양한 문제”, “반복적으로 계속 쌓이게 되면” 같은 표현은 동일한 의미를 겹쳐 말한 경우다. “여러 가지”와 “다양한”은 거의 같은 뜻이고, “반복적으로”와 “계속”도 의미 차이가 없다. 이런 중복은 독자의 읽는 속도만 늦춘다.


After에서는 이를 모두 정리했다. 예컨대 Before의 “누가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가 불분명해지고,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거나 반대로 아무도 맡지 않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는 설명은 유지하되, 문장의 군더더기는 덜어냈다. 그 결과 정보 단위가 분명해지고 더 빨리 읽힌다.


3) 주어와 서술어가 정확하게 대응하는가?


Before의 다음 문장은 주술 호응이 어긋나 있다. “또한 팀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일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 점검도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문장의 주어는 “팀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이다. 그렇다면 뒤에는 “~때문이다”, “~에 있다”처럼 이유를 설명하는 서술어가 와야 한다. 그런데 실제 문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로 끝난다.


즉 이 문장은 사실 두 문장이 섞인 것이다. “팀 프로젝트가 잘되지 않는 이유는 일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정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 점검도 늦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두 구조가 한 문장 안에서 겹치면서 주어와 서술어의 관계가 무너졌다.


After에서는 이를 “여기에 일정 관리와 중간 점검까지 늦어지면 프로젝트는 방향을 잃기 쉽다”로 고쳤다. 주어와 서술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문장이 곧바로 이해된다.


4) 문장의 리듬이 단조롭지 않은가?


Before는 거의 모든 문장이 비슷한 길이와 설명 방식으로 이어진다. “~하는 경우가 많다”, “~하게 된다”, “~할 수 있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글이 평평해진다. 이런 문장은 뜻은 통하더라도 읽는 힘이 떨어진다.


After는 문장 길이와 호흡을 의도적으로 나누었다. 첫 문장에서는 원인을 단정적으로 제시하고, 다음 문장들에서는 그 결과를 풀어 설명한다. “누가 무엇을 맡는지가 선명하지 않으면 같은 일을 두 번 하거나, 반대로 아무도 맡지 않는 일이 생긴다” 같은 문장은 설명형이지만, 앞의 짧고 단정한 문장과 결합하면서 리듬을 만든다.


5) 이 문장은 한 번에 이해되는가?


Before는 말하려는 바가 아주 불분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독자가 읽으면서 스스로 문장 구조를 정리해야 하는 지점이 많다. 원인과 결과가 한 문장 안에서 뒤엉키고, 같은 의미가 반복되며, 핵심 판단이 뒤로 밀려 있기 때문이다.


After는 핵심 원인을 제시하고, 그다음에 구체적인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낸다. 역할의 혼선, 일정 관리의 실패, 중간 점검의 지연, 그리고 그 결과까지 순서대로 드러난다. 그 결과 독자는 되돌아가지 않고도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작가가 아니라 글을 살리는 퇴고


퇴고는 글쓰기의 마지막이면서 가장 힘든 단계이기도 하다. 이미 초고를 쓰느라 진이 빠진 상태에서, 방금 전까지 애지중지하며 만든 문장들을 냉정한 눈으로 다시 읽어내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내 분신과도 같은 문장을 자르고, 쪼개고, 이어 붙이는 작업은 단순한 노동을 넘어 감정적인 인내까지 요구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글은 이 과정을 거쳐야만 나아지기 때문이다. 작가는 글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어떤 희생도 감수할 수 있다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타인의 지적을 수용하고, 어제 쓴 문장을 오늘 과감히 지워버리는 용기는, 결국 작가 자신보다 글을 우선하는 일이다. 이는 글에 대해 ‘부모의 마음’을 갖는 것과도 비슷하다. 여기서 말하는 부모의 마음은 내 자식이 무조건 예쁘다는 맹목적인 애정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식에게 좋은 일이라면, 아무리 힘들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도 결국 해내고 마는 헌신이라고 할 수 있다.


서두에 언급했듯 완벽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가능한 지점을 향해 끊임없이 고쳐 쓰는 행위만이 우리를 그 근처에라도 데려다준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제임스 미치너는 역사와 문화의 방대한 흐름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가 자신의 작가 인생을 요약한 말이 있다. 퇴고가 힘겨운 사람에게 미치너의 이 말이 위안이 될 것이다.


“나는 뛰어난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남보다 더 자주 고쳐 썼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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