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자아실현

by 배대웅

2021년 1월 브런치에 한 편의 글을 올렸다. 제목은 <과학은 어떻게 인류의 삶을 바꾸는가>. 과학이 우리의 문명과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풀어본 글이었다. 당시 읽던 과학사 책에서 얻은 지식과 연구소 업무 경험을 섞어서 썼다. 특별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내가 재미있어서 썼다. 처음 그 이야기들을 접했을 때 느꼈던 놀라움과 흥미를,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예상대로 그 글은 조용히 지나갔다. 반응은 크지 않았고 댓글도 없었다. 감성 에세이가 중심인 브런치에서 이런 글이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어떤 목적이 있어서 쓴 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일 아니라는 듯 다음 글을 썼다.


그런데 1년여가 지난 뒤, 출판사에서 이 글을 책으로 내보자는 제안을 해왔다. 그렇게 나온 책이 『최소한의 과학 공부』다. 비슷한 일은 다른 글에서도 반복되었다. 다음 차례는 2020년 12월에 쓴 <그들은 어떻게 최고의 연구소가 되었나>라는 글. 이 글 역시 과학 연구소라는 낯설고 전문적인 소재를 다뤄서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3년이 지나 이 글을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출판사의 제안이 왔다. 그 결과물이 『연구소의 승리』다. 이후의 출간 제안들도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따랐다. 지금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해야 책을 낼 수 있냐?” “출판사의 눈에 띄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 솔직히 말하면 특별한 방법이 없다. 나는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글을 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 붙잡고 만족할 때까지 쓰는 것, 그게 전부다. 그중 몇 편은 책이 되었고, 더 많은 글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출간의 기쁨은 크다. 내 이름이 박힌 책을 처음 쥐었을 때의 감정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베스트셀러 순위에 오르고, 언론에 소개되고, 누군가 내 책을 읽고 말을 걸어오는 일도 기분 좋은 경험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작가의 삶을 그런 장면으로 상상한다. 책을 냈는가, 얼마나 팔렸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는가. 세상의 언어로 쉽게 셀 수 있는 성취들이다.


계속 쓰게 만드는 힘


하지만 글을 쓸수록 그것이 글쓰기의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책을 냈다는 사실이 글쓰기를 계속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방송 출연이나 기사 소개도 마찬가지다. 그 순간은 짜릿하지만 딱 그때뿐이다. 만약 그 반짝임만을 연료로 삼는다면, 글쓰기는 문장을 쓰는 일이 아니라 다음 보상을 기다리는 일이 되어버린다. 그 보상은 쓰는 시간보다 한참 늦게 온다. 그렇게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글을 쓰게 만드는 진짜 힘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내가 쓴 문장이 내 안에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서 생긴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이 문장이 되어 바깥으로 나가면, 그때부터 그것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어떤 독자는 그 덕분에 막연했던 문제를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어떤 독자는 관심 밖에 있던 분야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어떤 독자는 흩어져 있던 지식이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 사람의 내면에서 시작된 생각이 다른 사람의 이해 속으로 건너가, 다른 사유를 낳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가 이 점에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문장은 한 번 세상에 놓이면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 속을 지나며 계속 흐르고, 예상하지 못한 맥락에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내가 내린 정의가 다른 사람의 질문이 되기도 하고, 내가 본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다른 방향의 통찰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 안에 놓인다는 감각을 얻는다. 회사에서의 나는 맡은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해야 할 일과 책임져야 할 과제가 있고, 대개는 정해진 틀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글을 쓸 때의 나는 다르다. 나는 글을 통해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중요하다고 여기는지, 어떤 질문 앞에서 오래 멈추는지를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에게 가 닿아 다시 생각을 일으킨다.


돌이켜보면 글쓰기로 얻은 가장 큰 가치는 책 몇 권이 아니라, 이 연결의 감각이었다. 내가 세상에 무언가를 내보냈고, 그것이 어디선가 다른 울림으로 되돌아오는 경험. 그것은 책의 판매 부수나 화제성과는 다른 종류의 기쁨이다. 나는 그 감각 때문에 반응이 적은 글도 쉽게 버리지 못했고, 한 번 쓴 문장도 오래 고쳐 왔다. 내 문장이 누군가의 생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 과정에서 내 존재 또한 더 선명해진다는 자각. 내가 계속 쓰는 이유는 결국 여기에 있다.


기능에서 주체로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이 하는 일을 세 가지로 설명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는 노동이 있고,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남기는 작업이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가 있다. 처음 이 구분을 읽었을 때는 행위라는 개념이 쉽게 와닿지 않았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글쓰기를 하면서 그 뜻을 알게 되었다. 회사 업무는 분명 필요하고 성실한 노동이지만,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대개 내가 맡은 기능이다. 즉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보여도, 어떤 사람인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반면 글을 쓸 때의 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등장한다. 그때 나는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해석하는 주체로 서게 된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질문을 붙들고 있는지를 문장으로 밝힌다. 그것은 누가 요구한 답변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 내놓은 시선이다. 아렌트가 말한 행위는 어쩌면 이런 것에 가까운지 모른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문장을 통해, 내가 누구인지 비로소 드러내는 일.


그래서 내게 글쓰기는 자아실현이다. 자아실현이 거창한 성공담이나 위업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가 본 것과 느낀 것, 이해한 것과 의심한 것을 내 언어로 세상에 세우는 일이다. 내 안에만 있던 가능성을 하나의 글로 현실 속에 출현시키는 일이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은 직업이나 역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회사원, 부모, 학생이라는 이름 바깥에서, 나는 무엇을 궁금해하는 사람인지, 무엇에 오래 마음을 쓰는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그리고 그 축적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대답이 된다.


방향으로서의 글쓰기


어쩌면 우리는 정상을 꿈꾸며 글쓰기를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그 위에 올라서면 더는 흔들리지 않을 것 같고, 더는 부족하지 않을 것 같고, 마침내 작가라는 완결된 상태에 이를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막상 써보면, 글쓰기에는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나는 정상의 봉우리가 없음을 알게 된다. 한 편을 쓰고 나면 다음 글이 기다리고, 한 권을 내고 나면 다시 부족한 문장이 보인다. 기준은 높아지고, 시야는 넓어지고, 그래서 끝은 더 멀어진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글쓰기의 의미는 저 멀리 완성의 순간에만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완성된 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글을 쓰는 동안 조금씩 만들어지는 나 자신이다.


그러니 이 책을 덮으며 거창한 결심을 하지 않아도 된다. 대단한 작가가 되겠다고 선언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는 질문 하나를 붙잡아보면 된다. 또는 오늘 하루를 지나치지 않게 만들었던 장면 하나를 적어 봐도 좋다. 그 한 줄이 거칠거나 서툴러도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잘 쓴 문장이 아니라, 마침내 내 문장을 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므로. 그 순간부터 글쓰기는 결과가 아니라 방향이 된다. 그리고 사람을 끝내 바꾸는 것은 언제나 결과보다는 방향이다.


결국 우리는 계속 써야 한다. 즐거워서 쓰고, 외로워도 쓰고, 때로는 삶의 보람을 느끼며 써야 한다. 글쓰기는 삶의 장식품이 아니라 ‘나’라는 세계를 구축하는 가장 정직한 노동이다. 언젠가 뒤돌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글을 남긴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비로소 나를 만들어왔음을. 그러니 그저 쓰고 있다는 것, 어쩌면 그 사실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난 한 번쯤은 저 산을 넘고 싶었어
그 위에 서면 모든 게 보일 줄 알았었지
하지만 난 별다른 이유 없어
그저 걷고 있는 거지
해는 이제 곧 저물 테고 꽃다발 가득한 세상의 환상도 오래전 버렸으니
또 가끔씩은 굴러 떨어지기도 하겠지만
중요한 건 난 아직 이렇게 걷고 있어

- 신해철(1996), <그저 걷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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