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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Aug 18. 2022

케네디가의 비극과 미국의 불운

존 카사르(2011), <케네디스(The Kennedys)>

정치 미드를 좋아해서 즐겨본다. 이 분야의 양대산맥은 역시 <웨스트윙(West Wing)>과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다. 다만 두 작품은 정치를 바라보는 관점과 다루는 방식에 있어 양극단에 있다. 웨스트윙의 정치가 신념의 공적 실현 수단이라면, 하우스 오브 카드의 그것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권모술수에 불과하다. 이는 휴먼 드라마와 스릴러라는 두 작품의 장르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요인이기도 하다.

    

존 카사르(감독, 제작)의 2011년작 <케네디스(The Kennedys)>는 미국의 정치 명문가인 케네디가(家)에 대한 이야기다. 장르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두 작품의 중간쯤에 있다. 1960년대 미국을 이끈 이상과 야망을 조명하되, ‘케네디가의 비극(Kennedy Tragedies)’으로 알려진 어두운 면도 함께 다룬다. 따라서 이 작품은 희망과 음울함이 교차하는 묘한 톤앤매너를 보인다. 1960년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당선부터 1968년 로버트 F. 케네디의 암살까지가 메인 플롯에 해당한다. 여기에 과거 사건들(대부분 케네디가의 이력들)을 군데군데 플래시백으로 보충하여 흥미롭게 서사화했다.

 




파격적 설정, 입체적 캐릭터

    

그런데 미국 현대사의 정사(正史) 관점에서 보면 상당히 파격적이다. 세간에 떠돌던 루머와 스캔들 사실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우선 존 F. 케네디의 혼외정사 상대로서 주디 캠벨, 메리 마이어, 그리고 저 유명한 마릴린 먼로가 실명으로 등장한다. 또한 애디슨병을 앓았던 존 F. 케네디의 건강 문제도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극심한 허리 통증 때문에 철제 복대를 착용해야만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고, 고통을 잊기 위해 마약성 약품을 쓰기도 했다. 대통령에게 이런 약을 처방한 의사 맥스 제이콥슨(별명이 Dr. Feelgood이었다고 한다)도 실명으로 나온다. 이밖에도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를 매개로 한 마피아와 케네디가의 유착 관계, 대통령의 사생활을 모조리 파악하고 있었던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과의 갈등 등도 사실로 그려진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존 F. 케네디 암살은 정사 그대로 리 하비 오스왈드의 단독 범행으로 다루기는 한다.

이 드라마는 온갖 스캔들을 사실로 전제했지만, 존 F. 케네디의 암살은 그런 거 없이 그대로 묘사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방영 이전부터 어그로를 끌었다. 일부 역사학자들과 케네디 행정부 출신 관료들은 역사 왜곡을 이유로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케네디 행정부의 연설문 작가였던 테드 소렌슨은 대본 자체가 존 F. 케네디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영화제작자 로버트 그린월드는 stopkennedysmaers.com이라는 안티 사이트를 열어 방영 중단 활동을 벌였다. 이 사이트는 프로듀서 조엘 서노우(미드 <24>로 유명하다)의 보수 성향을 지적하며, 이 드라마가 케네디가를 흠집 내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결국 원래 방영 예정이었던 유력 케이블 채널 히스토리가 방영을 취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이 명문가의 은밀한 가십 들추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 역사의 격랑에 맞서 도전하고 좌절하는 개인들의 분투도 섬세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드라마의 주역들은 약점도 있고 윤리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대의 과제를 받아들이며 나름의 방법으로 본인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즉 개인의 영달을 추구하면서도, 그걸 넘어서는 공동체적 목표를 향해 헌신한다. 만약 케네디가에 정치적 흠집을 내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이런 작법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에 등장하는 다음의 4명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조지프 P. 케네디 : 명문가를 만든 불행한 아버지

     

조지프 P. 케네디의 실제 모습과 드라마 캐릭터(톰 윌킨슨 분)

    

조지프 P. 케네디(1888~1969, 톰 윌킨슨 분)는 명문 케네디가를 일군 창업자이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주민의 후손으로서 금융업과 영화사업에 성공해 부자가 되었다. 야심가였던 그는 정계로 눈을 돌려 민주당에 거액의 정치자금을 댔고, 그 연줄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부의 초대 증권거래위원장이 되었다. 1938년에는 주 영국대사로도 임명되었다. 그가 아일랜드계였음을 고려해보면,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권불십년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전 아돌프 히틀러에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대통령의 신임을 잃어 실각했다. 그렇다고 선출직 정치인으로 나서기에는 재산 형성 과정이나 사생활에 약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못다 이룬 꿈을 아들들에게 물려주기로 한다. 일찍부터 스파르타 교육을 통해 아들들을 철저한 엘리트로 키워 정계로 진출시켰다. 심지어 정치적 자산이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 첫째 조지프와 둘째 존을 2차 세계대전에 내보내기도 했다.

     

그의 원대한 계획은 성공하는 것으로 보였다. 존의 대통령 당선을 포함, 일곱째 로버트와 아홉째 에드워드도 상원의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막강한 재력과 인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사실 케네디가의 스마트한 이미지에 가려져서 그렇지, 조지프 P. 케네디가 아들들을 위해 뿌린 돈은 금권정치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수준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여기에 마피아까지 연루되었음을 암시한다. 케네디가의 엘리트주의는 조지프 P. 케네디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망이 세련된 형태로 모습을 바꾼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가장 아꼈던 조지프는 29세에 전사했고, 정치인으로서 영광의 시절을 보내던 존과 로버트는 암살당했다. 지적 장애가 있던 셋째 로즈마리는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지능이 완전히 퇴화하여 평생 숨어 지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조지프 P. 케네디가 생전에 겪었던 일이다. 뇌경색에 걸린 그가 휠체어에 앉아 슬픔인지 회한인지 모를 표정을 짓는 장면은 이 드라마의 백미다.




존 F. 케네디 :  짧고 굵게 신화로 남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실제 모습과 드라마 캐릭터(그렉 키니어 분)

  

존 F. 케네디(1917~1963, 그렉 키니어 분)는 요절한 형을 뒤이어 아버지의 꿈을 이룬다. 29살에 정계에 데뷔해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거쳐 대통령까지 초고속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43세에 대통령이 된 그는 지금까지도 민주당 지지자들의 이상적 대통령상으로 남아있다. 출중한 외모, 뛰어난 언변, 화려한 스펙, 과감한 결단력, 유복한 가정환경, 센스 넘치는 패션까지. 남들은 하나 갖기도 힘든 조건을 모조리 갖췄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 선거의 치트키인 전쟁 영웅 서사까지 있었으니, 그야말로 완전체였다. 빌 클린턴, 존 케리, 버락 오바마 같은 민주당의 거성들이 그렇게 오마주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이러한 완전체 기믹은 치밀한 전략의 산물이기도 했다. 작중 드러나는 존 F. 케네디의 실제 모습은 훨씬 어둡고 불안하다. 건강이 나빠 온갖 약을 달고 살았고, 허리 통증 때문에 자세는 늘 구부정했다. 그리고 화목한 가정 이미지와는 달리 대단한 바람둥이였다. 결혼 직후부터 시작된 외도는 백악관에 들어와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마릴린 먼로와의 스캔들이 하이라이트였는데, 케네디가 결국 손절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던 아내와의 관계를 겨우 복원할 수 있었다.

    

다만 대통령으로서 능력만큼은 뛰어났다. 드라마에서는 쿠바 미사일 위기의 해결과 민권 향상 등을 통해 이를 보여준다. 케네디 행정부는 출범 직후 피그만 침공의 실패로 위기에 몰렸으나,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통해 겨우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다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이어진다. 피그만 침공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련이 미국 코앞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며 무력시위를 한 것이다. 케네디는 군부 강경파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를 모두 설득해 협상만으로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작중 아내 재클린이 딸에게 설명해주듯, 세계를 구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1962년에는 제임스 메레디스가 흑인 최초로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하도록 도왔다. 당시 많은 공립학교들이 1954년 연방대법원의 위헌 판결(이른바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에도 불구하고 흑인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에 민권 운동가 메레디스는 미시시피 대학에 입학을 강행했는데, 이는 백인들과의 충돌을 일으켰고 주지사도 백인 편을 들었다. 이때 케네디가 개입하여 주 정부를 압박 입학이 성사될 수 있었다. 민권 운동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로 기록될 사건이었다.

     

이렇듯 존 F. 케네디는 그저 인기만 좋았던 대통령은 아니었다. 그는 냉전과 이념 갈등이 극심했던 상황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선은 동생들인 로버트와 에드워드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따라서 케네디가는 단순히 엘리트를 많이 배출한 명문가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분열과 혼란의 시대에 미국 진보진영의 구심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 의의가 더 클 것이다.



     

재클린 케네디 :  완벽한 영부인, 비운의 아내

 

재클린 케네디의 실제 모습과 드라마 캐릭터(케이티 홈즈 분)

    

재클린 케네디(1929~1994, 케이티 홈즈 분)는 양면성을 가진 영부인으로 그려진다. 31살에 영부인이 된 그녀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아름다운 외모, 풍부한 지식과 교양, 스타일리시한 패션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1961년 6월의 프랑스 정상회담에서는 유창한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로 남편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톱스타를 능가하는 그녀의 인기는 존 F. 케네디의 지지율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존 F. 케네디와의 결혼부터가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쓴 일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케네디가 구제불능의 바람둥이인 데다, 아버지 조지프는 가문의 영광 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 없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결혼을 말렸다.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 없다고, 어머니의 우려 그대로 재클린 케네디는 2년도 채 안 되어 이혼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대권가도를 달리는 남편 때문에 실행하지는 못한다. 이런 쇼윈도 커플로서의 불안한 모습은 드라마 내내 반복된다. 막판에는 남편이 정신을 차려서 관계가 회복되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남편이 살해되는 비극을 겪는다.

    

백악관을 나온 이후에는 파파라치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국민적 셀럽이었던 그녀의 사생활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였기 때문이다. 안정된 생활을 원했던 그녀는 결국 1968년 그리스의 선박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역사상 가장 인기가 많았던 영부인이 23살이나 많은 외국인 사업가와 결혼한다는 발표에 많은 미국인들이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남편의 동생 로버트 F. 케네디도 반대(오나시스에게 그녀는 수집품이라는 이유로)했는데, 실제로 그 말대로 되었고 이혼을 준비 중이던 1975년 오나시스가 사망했다. 만인이 부러워한 여성이었지만, 케네디가와 엮이면서 인생이 굴절되는 기구한 캐릭터다.

     



로버트 F. 케네디 : 좌절한 미국 진보세력의 꿈

 

로버트 F. 케네디의 실제 모습과 드라마 캐릭터(배리 페퍼 분)

   

로버트 F. 케네디(1925~1968, 배리 페퍼 분)는 성장형 캐릭터다. 그는 원래 형인 존 F. 케네디의 선거 참모로서 상원의원과 대통령 선거전을 지휘했다. 대통령 선거를 마지막으로 변호사 개업을 하려 했으나, 아버지의 강권에 떠밀려 케네디 행정부의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 사실 명목만 장관이었을 뿐 실제 역할은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이었다. 아버지의 뜻대로 정적들(FBI, 군부, 마피아 등)로부터 형을 엄호하고, 복잡했던 여자 문제의 뒤처리까지 군말 없이 떠맡았다.

     

하지만 경력과 내공이 쌓이면서 존 F. 케네디의 후계자로 떠올랐다. 우선 1964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에 출마하여 공화당의 거물 케네스 키팅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로버트 역시 수려한 외모와 빼어난 달변 등 형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갖고 있었다. 그런데 보다 건강하고 가정적이며, 정책노선에서는 더 진보적이었다. 그는 총기 규제, 베트남전 반대, 빈곤 구제, 민권 향상 등을 주장하며 노동자와 소수인종의 지지를 받아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했다. 반면 현직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인기가 영 없었다. 존슨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케네디가 돌풍을 일으키자 1968년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그러나 그도 암살이라는 숙명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로버트 F. 케네디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1968년 6월, 캘리포니아주에서 승리한 직후 살해당했다. 1968년은 미국에서 반전운동과 민권운동(이른바 68운동)이 정점에 올랐던 시기다. 그해 미국을 뒤흔들었던 이념 갈등은 연말 대통령 선거로 총집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68운동의 정치적 대변자였던 케네디의 죽음으로 진보세력은 분열했고, 그 여파로 민주당도 대선에서 패배했다. 이로써 팽팽했던 진보와 보수의 역학관계 무너졌다. 지리멸렬한 진보세력을 규합할 만한 인물도 나타나지 않았다. 미국은 이후 기나긴 보수의 시대로 이행하게 된다. 로버트 F. 케네디의 불운한 죽음이 초래한 나비효과라고 할 만했다.




짜임새 좋은 웰메이드 시대극


케네디가의 영광과 좌절은 그 집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이 겪은 비극은 미국 현대사에도 트라우마를 남겼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은 격렬한 이념 대립으로 혼란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총체적 토론의 성격도 갖고 있었다.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던 것이다. 케네디가가 제시한 '뉴프런티어'의 비전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암살이라는 은밀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역사적 가능성들이 제거되었다. 따라서 케네디가의 비극은 미국의 불운이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이를 캐릭터와 역사의 조합으로 묵직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케네디가의 비극을 조야한 가십거리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성공과 좌절이 미국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역사적 평가를 시도한다. 물론 극의 몇 가지 설정들이 정치 논란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서사는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웰메이드 시대극이다. 미국 정치와 현대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볼 수 있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탄탄한 서사와 스피디한 편집이 돋보인다.


기술적으로도 굉장히 탁월하다.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43분짜리 8부작으로 밀도 있게 담아냈다. 미드는 보통 한 시즌 20개가 넘는 에피소드들이 5~6 시즌씩 돌아간다. 그래서 이걸 언제 다 보나 싶어서 시작할 엄두를 못 내는 작품들도 많다. 그에 비교하면 이 작품은 상당히 감상자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와 스피디한 편집 덕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경쾌한 속도로 내달리며, 중간에 불필요하거나 몰입을 해치는 요소들이 거의 없다. 보다 보면 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다만 오히려 그래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예컨대 아무리 존 F. 케네디가 임기를 마치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중요한 사건들을 너무 많이 생략했다는 생각이 든다. 1960년대 냉전을 배경으로 진행된 서베를린 방문이나 달 탐사 계획 착수도 다뤘으면 어땠을까 싶다. 엇보다 존 F. 케네디는 역대급 명연설가이지 않은가. 저 유명한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Ich bin ein Berliner)'와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We choose to go to the moon)' 연설도 재현했다면 더욱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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