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개봉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선입견이 있었다. 우선 올리버 스톤이나 애런 소킨의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것. 스톤은 미국 대통령 영화를 세 편(<JFK>, <닉슨>, <W.>) 만들었으니, 하나 더 찍어도 이상하지 않다. 소킨도 백악관을 다룬 작품(<대통령의 연인>, <웨스트윙>)과 전기물(<소셜 네트워크>, <머니볼>)에서 신들린 필력을 선보였다.
그런데 둘 다 아니었다. 아니, 링컨 전기 영화에 스티븐 스필버그 형이 왜 나와...? 그래서 남북전쟁의 참상(cf. <라이언 일병 구하기>) 또는 노예해방의 휴머니즘(cf. <쉰들러 리스트>)을 보여주려나 했다. 하지만 그 또한 아니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스필버그가 링컨 영화를 만든다면, 이런 화끈한 남북전쟁 전투 장면을 기대하겠지만, 극 초반에 아주 잠깐만 나온다.
스필버그의 정치 영화?
스필버그는 의외로 선 굵은 정통 정치 영화를 내놓았다. 그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파란만장한 삶에서도 가장 극적인 순간을 포착했다. 그 초점은 노예제 폐지를 명시한 수정헌법 13조 제정에 집중된다. 개헌을 둘러싼 실타래 같은 이해관계를 풀어내고, 연방의 통합을 이룬 링컨의 리더십이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다. 따라서 이 영화는 링컨을 ‘노예해방을 이끈 휴머니스트’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보다는 ‘철두철미한 연방주의자’ 링컨을 중심으로 연방제를 이루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의 시작점은 남북전쟁이 끝나가던 1865년 1월. 전세는 북군으로 완전히 기울었다. 링컨은 전쟁이 끝나기 전에 노예제를 폐지하여 연방 재건의 기반으로 삼으려 했다. 굳이 이 시기에 노예제 폐지를 강행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남부와 종전 협상이 본격화되면, 노예제 폐지 공론화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국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전쟁의 상처를 보듬고 통합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링컨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링컨은 종전 협상 전에 개헌을 마무리 지은 다음, 남부를 새로운 연방의 체제로 흡수하고자 했다.
영화는 북군의 흑인 병사가 링컨 앞에서 저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암송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문제는 여기에 얽힌 이해관계들이 매우 복잡했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13조의 가결에는 하원 2/3 이상 동의가 필요했다. 하지만 여당인 공화당의 세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공화당 전원이 동의한다 해도, 민주당에서 20표를 더 끌어 와야 했다. 당시 공화당과 민주당의 민권에 대한 포지션은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지주 계급을 대변하는 민주당이 노예제 폐지를 위한 개헌에 반대할 것은 자명했다. 공화당 내부 상황도 녹록하지는 않았다. 공화당 급진파는 흑인에게 백인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하여 완전한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공화당 보수파는 노예제 폐지보다는 종전이 우선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관심사가 제각각인 세 집단으로부터 협력을 얻어내, 2/3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 링컨의 숙제였다.
개헌과 최소주의 전략
문제해결을 위한 링컨의 전략은 냉철하고 현실적이었다. 이는 민주당, 공화당 급진파, 공화당 보수파들이 원하는 것들을 내어주되, 노예제 폐지라는 공통 기준에 합의케 하는 ‘최소주의 전략’으로 요약된다. 우선 임기 말의 민주당 의원들에게 퇴임 후 공직 제공을 대가로 찬성표를 던지도록 만들었다. 이들은 어차피 곧 임기가 끝나므로 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남부와 종전 협상을 벌이려는 듯한 액션을 취해 공화당 보수파의 이탈을 막았다. 실제로 남부 대표단이 협상을 위해 건너왔다. 하지만 링컨은 이들이 워싱턴 D.C.까지는 오지 못하게 하여 시간을 지연시켰다. 표결 직전 이 사실이 밝혀져 민주당이 투표 연기를 요청하는 돌발 사태가 일어났다. 그러나 링컨은 “내가 아는 범위에서 그런 일은 없다”라고 에둘러 넘어가며 공화당 보수파들을 안심시키고 표결을 재개했다. 마지막으로 공화당 급진파의 완전한 평등 주장을 무마시키고, 최소한의 법적 폐지만 내세우도록 유도했다. 급진적인 주장으로 반대파를 자극하면 아무 것도 못 얻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정적들까지 포용하고 협력을 이끌어 낸 링컨의 민주주의 리더십이다.
이렇게 세 집단이 링컨이 만들어 놓은 ‘노예제 법적 폐지’라는 최소 기준에서 합의를 이룬다. 불가능해 보였던 수정헌법 13조가 극적으로 가결된 것이다. 이어서 4년을 이어 온 남북전쟁도 끝난다. 하지만 미국을 새로운 발전의 시대로 이끈 링컨은 1865년 4월 두 번째 임기 시작 직후 암살된다. 영화는 역사의 소임을 다한 그의 최후를 담담히 보여주면서 막을 내린다.
이렇듯 <링컨>은 19세기 미국의 역사를 뒤바꾼 한 시기를 조명한다. 그래서 21세기 한국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잘 와닿지 않는다. 미국에서야 링컨이 역대 원톱 대통령으로 추앙받는다지만, 우리에게는 역사 속 외국인일 뿐이니 말이다. 이 영화가 국내 흥행에 실패한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실제로 링컨이 ‘노예해방을 주도한 미국 대통령’이라는 기초상식만 갖고는 영화를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남북전쟁, 연방주의, 양당제 등 미국 정치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150분의 러닝타임 동안 감독이 촘촘하게 엮어낸 서사의 맥락을 파악하기 힘들다.
민주주의 리더십의 교훈
그럼에도 우리가 이 대작을 감상할 이유는 있다. 무엇보다 링컨이 보여주는 ‘민주주의 리더십’의 교훈이 그렇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모든 민주국가에서 보편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물론 영화의 쟁점인 노예제 폐지는 우리의 시대상과는 안 맞는다. 그러나 복잡한 이해관계의 조정을 통해 공동선을 이뤄나가는 정치의 방법적 본질만큼은, 링컨의 시대와 지금이 다르지 않다. 예컨대 표결에 앞서 상대의 이탈표를 유도하거나, 같은 진영에서도 급진파나 보수파 누구도 불만이 없도록 조율하는 모습들이 그렇다. 즉 불필요한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제도의 틀 내에서 합리적으로 목적을 달성하는 행위다. 이는 세련된 민주정치의 운영기법으로서 오늘날에도 되새겨볼 만하다.
배우들의 절륜한 연기와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들도 인상적이다. 우선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토미 리 존스 같은 연기 귀신들의 호연은 두말하면 입 아프다. 특히 공화당 급진파의 리더 새디어스 스티븐스를 연기한 토미 리 존스는 극강의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주었다. 민주당 의원들을 데꿀멍시키는 사자후를 내뿜으면서도, 통과된 법안을 흑인 아내에게 보여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물 흐르듯 표현했다.
토미 리 존스는 새디어스 스티븐스 의원 역을 통해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그 외에 가장 재미있는 캐릭터는 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의 로비스트 W.N. 빌보다. 수어드의 지시에 따라 민주당 의원들에게 공직을 미끼로 수정헌법에 찬성하게 만드는 역할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 배우 분명 어디선가 봤는데 누구지 싶었다. 알고 보니 미드 <보스턴 리걸>에서 앨런 쇼어 역을 했던 제임스 스페이더였다. 이 영화에서도 능글맞은 로비스트로 등장해서 원하는 바를 능수능란하게 얻어낸다. 자연스럽게 앨런 쇼어 캐릭터가 연상된다. <보스턴 리걸>의 팬이라면 한 명의 배우가 연기하는 두 캐릭터를 비교해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제임스 스페이더는 골 때리는 로비스트 W. N. 빌보를 연기했는데, '보스턴 리걸'의 앨런 쇼어를 연상케 한다.
거장은 뭘 해도 거장
이 영화로 스필버그 감독을 새삼 다시 보았다. 내게 그는 <인디아나 존스>와 <쥬라기 공원>의 크리에이터였다. 초딩 때 처음 본 할리우드 영화가 <인디아나 존스와 마궁의 사원>이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액션과 서스펜스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그가 민주주의의 본질을 통찰하는 중후한 서사를 선보일 줄은 몰랐다. 특히 수정헌법 13조의 입법 과정을 현실감 있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정치학 강의의 교재로 써도 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스필버그가 스톤이나 소킨 같은 이들에게 절대고수의 초식을 휙휙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어이, 너희들이 잘하는 그런 것쯤, 나도 얼마든지 한다고”).
물론 이게 온전히 스필버그만의 역량은 아니다. 우선 역사가 도리스 컨스 굿윈의 원작 「Team of Rivals: The Political Genius of Abraham Lincoln」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서 굿윈은 링컨의 정치철학을 '정적들도 한 팀으로 만들어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는 포용력'으로 요약한다. 실제로 링컨은 당선 직후 재무부(새먼 체이스), 국무부(윌리엄 수어드), 법무부(에드워드 베이츠)의 장관직에 경쟁자들을 기용했다. 이들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링컨에게 패배했었다. 이 책에 감명받은 버락 오바마가 국무장관에 힐러리 클린턴을 선임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스필버그는 1999년 굿윈이 책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이미 판권 구입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2005년작 <뮌헨>에 참여했던 토니 쿠슈너에게 각색 및 각본 작업을 맡겼다. 쿠슈너는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을 수정헌법 13조의 입법 과정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재구성해냈다.
「Team of Rivals」는 영화의 원작이자 오바마가 읽은 책으로 유명하다. 다만 국내에는 「권력의 조건」이라는 다소 괴랄한 의역 제목으로 변역되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19세기 미국의 노예제 폐지를 이해하려면 정치경제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즉 북부의 산업자본을 대변했던 공화당이 노예제를 폐지한 것에는 그만한 계급적 동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던 북부 공업지대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력의 대량공급을 원했다. 남부 대농장에 묶여있던 노예들은 북부 자본가들이 딱 원했던 그 노동력이었다. 링컨이 노예제를 폐지해서 자본가들이 원했던 노동력의 대이동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미국의 산업혁명은 완성되었고, 세계 최고의 산업자본주의 국가로 올라설 수 있었다. 링컨이 추앙받는 이유에는 연방 통합도 있지만, 이렇게 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도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노예제 폐지의 이러한 유물론적 배경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이 링컨의 천재적 리더십 덕분일 뿐이다. 하긴 영화의 목적이 정치가 링컨을 조명하는 것이니, 이런 맥락들까지 고려하면 서사가 중구난방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안 그래도 러닝타임만 150분인데).
어쨌든 클래스는 영원하고, 거장은 뭘 해도 거장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마치 한 권의 정치 교양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준다. 책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글자를 읽는 것이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영화를 보고 책을 읽은 효과를 얻는 것도, 꽤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