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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Nov 01. 2020

과학 글쓰기의 전제와 방법에 대하여

대부분 글쓰기가 그렇지만 과학을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어렵다. 개인적으로 과학기술정책 업무를 10년째 하고 있어 관련 개념과 용어에 남들보다 조금 익숙한 편이다. 그런데도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쓸 때마다 과학 글쓰기의 어려움을 새삼 느낀다. 예컨대 문서에 기초연구, 융합연구, breakthrough 등의 용어를 하루에도 몇 번씩 쓴다. 그러나 내가 이 개념들을 정확한 맥락에서 적절히 쓴 것인지 자신하기 어렵다. 또 서사의 체계화를 위해 몇몇 연구조직들을 특성에 따라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올바른 기준에 의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과학은 어떤 학문보다도 정확성과 엄밀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나는 글쓰기에서 이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과학기술계에서 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한 가지 변명을 해보자면, 과학은 엄청나게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이다. 몇 년 전 과학대중화 관련하여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었다. 당시 그가 강조한 이야기는 ‘과학이 쉽다는 말은 거짓이다’였다. 쉽고 즐거운 과학을 콘셉트로 다양한 대중 프로그램들이 생겼지만, 그것이 오히려 과학의 본질을 오해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는 평생 물리학을 연구한 자신도 과학은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따라서 과학으로 대중과 소통하려면 이러한 ‘과학의 난해함’을 우선 인정해야 한다고 봤다. 그 난해함을 뚫고 알게 된 자연의 원리가 얼마나 가슴 벅찬가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과학대중화의 핵심이라는 논지였다.

‘과학은 어려운 것’이라는 명제는 과학 글쓰기에도 중요한 참고가 된다. 과학 글쓰기의 목적은 대개 연구자들이 생산한 지식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둘의 거리는 너무도 심원하다. 이 차이를 일상의 언어로 메우기가 쉽지 않다. 과학의 주제는 10억 분의 1미터 세계를 관찰하는 나노연구부터,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밝히는 빅 사이언스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다. 즉 주제 자체가 보편적 사고 범위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엮어내는 것이 어렵다. 


과학은 또한 현실과는 무관해 보이는 현상들을 다룬다. 물론 구체적인 수준에서 보면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 다만 과학적 발견이 현실과 연계를 맺으려면, 중간 단계별로 수많은 응용연구와 상용화 기술이 갖춰져야 할 뿐이다. 예컨대 ‘전자 간에 강한 상호작용이 있는 물질의 다양한 물리 현상을 규명’하려는 연구를 생각해보자. 대체 이것이 우리 삶과 무슨 연관이 있단 말인가? 일반인들은 이런 연구에 대해 들으면, 십중팔구 ‘그게 실생활에 어떤 효과가 있나요?’라는 반문을 한다. 그러다 보면 논의의 초점은 과학이 아닌, 그것을 활용한 기술과 상품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가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과학 글쓰기가 갖춰야 할 몇 가지 요건을 도출할 수 있다. 우선 과학의 난해함과, 과학적 주제와 보편의 상식 사이에 존재하는 큰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세부 연구내용을 100%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용의 온전한 전달 못지않게 고민해야 할 것은 정재승 교수가 강조한 ‘경이로움’ 또는 ‘가슴 벅참’의 정서이다. 즉 과학자의 열정과 도전으로 숨어있던 자연의 원리를 밝혀냈다는 것, 그 자체가 우리에게 경이로운 지적 체험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과학적 논리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과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긴다. 그래서 난해한 연구에 대해, 그걸로 무슨 혜택을 볼 수 있는지에만 관심을 둔다. 자기장 실험을 하는 마이클 패러데이에게 정부 관료들이 이런 걸 어디에 쓰냐고 묻자, "갓 태어난 아기를 어디에 쓰겠습니까? 언젠가 당신들이 여기(전기)에 세금을 매길 수 있을 겁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과학 글쓰기가 연구가 창출할 경제적 효과에 중점을 두는 것은 적절치 않다. 특히 기초과학은 그 활용을 미리 전제하거나 예측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인 학문이다. 현실적 활용을 예시로 대중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의 본령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글쓰기를 과학적 발견과 탐구의 논리에만 집중하여야 한다. 그럼으로써 남들이 모르는 생명과 자연의 원리를 습득한다는 것이 얼마나 유의미한 일인지를 일깨워야 한다.


대중과 과학을 잇는 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앞으로 이러한 요건들을 염두에 두고 글쓰기를 하려 한다. 10년 간 같은 업무를 하면서 내 글에도 클리셰들이 생겼다는 것을 느낀다. 일단 그것들부터 부수고, 정확한 맥락과 개념들로 정치하게 글을 조직하는 노력부터 다시 해나가야 할 것 같다. 과학은 몇 번의 실패가 겹치며 궁극적인 성공으로 진화한다. 나의 글쓰기도 그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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