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인생을 바꿀 결정을 처음 했다. 학부 졸업을 앞두고 전공을 바꿔 대학원에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당시 그렸던 내 모습은 사회학자였다.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니, 이 일이 적성에 맞으면서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내가 얼마나 나이브했는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수 천 번 쓰고 지우고 갈아엎으며 완성한 석사학위논문은 나의 한계를 비추는 거울 같았다.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는 아마추어와 전혀 다른 차원의 역량과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렇다. 내가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읽기·쓰기는 사회과학 교양서 몇 권과 취미 글쓰기 동호회 수준이었다. 이것으로는 아카데미즘이 요구하는 이론적 엄밀함을 충족할 수 없었다.
이후 몇몇 직업들을 전전했다. 대학원 학비를 감당해줬던 논술·입시 학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직업적 회의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일을 그만뒀다. 때마침 교육정책의 변화로 논술 시장의 붕괴가 예견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니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정부 산하 연구소에서 일하던 선배가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게 해 줬다(아직까지 이 선배를 인생의 은인으로 여기고 있다).
한숨 돌리면서 29살의 고학력 순수학문 전공자가 어디 취업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그나마 언론사가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시험을 준비했지만 녹록치 않았다. 최종 면접 불합격을 몇 번 반복하다가 간신히 신문사 한 곳에 붙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출근 하루 만에 퇴사해버렸다. 기자라는 직업이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데는 하루의 신입직원 교육만으로 충분했다. 다시 계약직 연구원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덕분에 언론사 취업에 대한 미련은 깨끗이 버렸다. 연구소 업무를 계속하다 보니 이 일이 의외로 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서를 넣어보았다. 얼마 안 가 대전의 한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에 합격했다.
그러고도 연구소를 한번 더 옮기기는 했다. 그래도 어쨌든 만족하면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내가 가장 오래 한 업무는 정책·전략기획이다. 이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서 작성이다. 정부 예산을 받는 연구소들은 담당 부처 또는 위원회에 온갖 종류의 계획서, 평가서, 설명서 등을 낸다. 이를 논리적으로 작성해 공무원과 전문가들을 설득해야한다. 그래야 연구소를 운영할 수 있는 자원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기본업무 외에도 이런저런 글을 많이 쓰게 됐다. 원장님을 포함한 높은 분들의 발표문, 기고문, 연설문, 취임사, 퇴임사, 신년사, 담화문, 보도자료 등 다양했다. 심지어 제자로부터 주례를 부탁받은 부장님의 주례사를 쓴 적도 있다. 그때 나는 미혼이었는데. 원래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기에 거부감은 없었다. 내가 봐도 글이 잘 나왔거나, 상사로부터 잘 썼다는 칭찬을 들을 때는 보람마저 느꼈다. 먼 길을 돌아왔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았구나 하는 안도감도 들었다. 다만 쓴 글들은 대부분 내가 아닌 연구소나 높으신 분들 이름으로 나갔다. 즉 나는 연구소의 ‘고스트라이터’인 셈이다. 회사에서 나의 정체성을 이처럼 잘 설명해주는 표현도 없다. 요즘은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대놓고 고스트라이터라고 하기도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챙기는 거 아니냐고? 우리나라에서 사회인 또는 조직인의 운명이란 게 다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회의도 든다. 연구소에서 내가 쓴 수 천 페이지는 족히 될 그 글들, 지금은 누가 읽고 있을까? 어쩌면 순간의 필요만 충족하고 버려지는 인스턴트 같은 글은 아니었을까? 글은 사유에서 나오는 연속성과 축적성을 더해야만 계속 생명력을 발휘한다. 내 글은 그렇지 못했다. 20대 중반부터 내가 써온 글들은 항상 뭔가를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었다. 논문 심사 통과, 입사 시험 합격, 담당 부처 공무원 설득, 언론 홍보 등등. 나보다는 남에게 그럴듯하게 들릴 이야기를 우선 고민하는 글이었다. 내 사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글을 언제 써봤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민의 와중에 브런치를 알게 됐다.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목적으로서의 글을 쓰기 위해서다. 이제 고스트라이터에서 벗어나 리얼라이터가 되고 싶다. 이 공간에서만큼은 내 사유와 개성을 드러내는 글을 내 이름으로 쓰고 싶다. 내게는 전공(사회학)과 직업(과학기술정책)이라는 밑천이 있다. 이 두 가지를 글감으로 삼아 개인과 사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룰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이론·인물·도서 등도 소재로 삼으면 좋겠다. 이를 통해 내 브런치 글을 읽는 분들이 (C. 라이트 밀스가 강조한) ‘사회학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고스트라이터의 정체성을 버리지는 못한다. 나는 회사원으로서 거대 기계 속 부품 같은 현실에 처해 있다. 부품 하나쯤 빠지거나 잘못되어도 기계는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것을 안다. 엔지니어의 관점에서 보면 나같은 부품 따위야 정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래도 꿈만큼은 꾼다. 저 유명한 체 게바라가 했다는 이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