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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02. 2023

노래의 얄궂은 운명

015B(1991), <이젠 안녕>


벌써 30년이 넘었다. 이 평범한 제목의 노래가 015B 2집의 2번 트랙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아마 015B라는 팀은 몰라도 이 노래만큼은 많이들 알지 않을까. 요즘에도 각종 워크숍, 수련회, 졸업식, 계모임 등에서 이별송으로 불리니 말이다. 그러니까 해바라기의 <사랑으로>와 함께 대한민국 사교모임의 클리셰와도 같은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응답하라> 류의 90년대 회고담 드라마의 단골 BGM이기도 하다.

     

원래 이 곡은 정석원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염두에 두고 가볍게 만들었다. 가사에서도 엿보이듯 당시 015B는 활동 지속 여부를 기약하기 힘든 팀이었다. 물론 90년대 가요사를 논할 때 015B는 빠질 수 없으나, 초기 위상은 그렇지 못했다. 신해철이 빠져나간 무한궤도의 잔류파에 불과했다고 보면 정확할 것이다. 데뷔 음반도 무한궤도 인기의 잔상효과를 노린 기획사의 얄팍한 계산 덕분에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낸 <텅 빈 거리에서>가 히트했다지만, 여전히 프로페셔널보다는 아마추어 대학생 밴드에 가까웠다. 정상급 팀이 되는 것은 이 다음의 3집부터다. 이런 상황에서 마지막일지 모를 앨범 작업의 추억을 피아노 반주 위에 담담히 표현한 게 이 곡이다.

     

그런데 발매일이 다가오자 기획사는 이 곡을 1번으로 올려 타이틀로 밀라고 권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전문 기획자들인지라 히트곡에 대한 감이 좋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고집이 센 정석원은 그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는 이 곡을 앨범의 스토리텔링 상 에필로그로 만들었다며 반발했다. 결국 2번으로 낙점된 것은 그런 이견 속에서 찾은 절충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쨌든 앨범이 나오자 기획사의 예감 그대로 인기가 있었다. 그래도 같은 앨범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나 <친구와 연인>처럼 차트에 올라가는 노래는 또 아니었다. 그냥 015B 팬들과 이쪽 계열 음악(윤종신, 이승환, 토이 등)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소소하게 사랑받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노래의 운명도 사람 못지않게 얄궂은 모양이다. 어정쩡하게 탄생했으나 015B 바이오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생명력이 긴 곡이 되었다. 지금은 한물갔어도 015B는 한때 메가 히트곡들을 몇 번이나 냈던 팀이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그 메가 히트곡들은 다 잊혀졌다. 그런 부침을 겪으면서도 이 노래는 조금씩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다. 역주행이라면 역주행일 텐데, 그것이 무려 3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원작자 정석원도 커리어 내내 하우스, 로큰롤, 테크노, 인더스트리얼, 힙합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장르에 손을 댔다. 심지어 발라드도 온갖 사운드가 층층이 쌓이도록 꾸며서 극적인 효과를 는 게 그의 장기였다. 그런데 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은 소품과도 같았던 <이젠 안녕>이 되었으니, 이것도 아이러니이다.

     

유일한 취미가 음악 듣기였던 나의 학창 시절은 015B를 제외한다면 채울 것이 별로 없다. 그래도 <이젠 안녕>만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015B의 명곡들이 많은데, 사람들이 그걸 몰라주고 <이젠 안녕>처럼 단순한 노래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단순함의 미학이 많은 사람에게 015B를 기억시켰음을 부정할 수 없다. 015B 한창 듣던 시기에도 이 노래는 늘 건너뛰었다. 오랜만에 그들의 2집을 틀면서 다시 들어보려 한다. 첫 곡 <4210301>의 어설픈 비트와 애드립이 울린다. 이제 곧 이 곡의 시그니처인, 이별의 아쉬움을 어루만지는 듯한 피아노 반주가 깔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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