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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대웅 Jul 14. 2023

비 오는 날의 플레이리스트

야근과 밤샘 작업의 여파다. 급 휴가 내고 널브러져 있다. 세차게 내리는 비를 뚫고 아이를 등원시키고 왔다. 이미 오늘 하루 쓸 에너지는 다 소진한 것 같다.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보며 벅스 앱의 비오는 날 듣는 플레이리스트를 켠다. 몇 곡 추려 브런치에도 올려본다. 오늘 글의 주인공은 음악이다. 평소 내 글 답지 않게 글자 수는 확 줄였다. 이 음악을 듣는 모두에게 오늘 하루 평온이 깃들기를.



    

1. Mrs. Green Apple, <Umbrella>

     

비만 오면 반드시 듣는 노래. 10년 뒤에도 비오는 날에는 이 노래를 들을 것이다. 강렬한 록사운드가 장기인 밴드지만 발라드도 참 잘 쓴다.

    

色が付いたら 僕に名前をと
색이 칠해진다면 나에게 이름을
空が茜色に染まるあの様に
하늘이 붉게 물드는 것처럼
君が笑えるならば側にいよう
네가 웃을 수 있다면 곁에 있자
僕が傘になる 音になって 会いに行くから
내가 우산이 되고 소리가 되어 만나러 갈 테니까

  



2. 임현정,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20년 전 후배의 미니홈피에서 처음 듣고 곧바로 인생곡이 되었다. 문장들이 가사보다는 시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몇 안 되는 곡 중에 하나.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이제 잊으라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이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3. The Alan Parsons Project, <Time>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00> 따위의 편집 음반을 만든다면 반드시 넣어야 할 곡이 아닐지. 비오는 날은 기분도 멜랑꼴리해지기 마련이다. 몽환적인 사운드가 그 기분을 감정의 심연 속으로 끝없이 밀어넣는다.     


Who knows where we shall meet again
우리가 어디서 다시 만날지 누가 알까
If ever
만약 그렇다 해도
But time
그래도 시간은
Keeps flowing like a river (on and on)
강물처럼 흘러가 (끊임없이)
To the sea
바다를 향해


     


4. 9와 숫자들, <오렌지 카운티>     


좋아하는 작사가 중 한 명인 송재경. 그가 만든 밴드의 첫 번째 앨범. 여러 번 듣고 나서야 이 노래의 가치를 알았다. 비트감이 있는 포크록이지만, 그 어떤 애절한 발라드보다 그리움의 감정을 서정적으로 드러낸다.

      

이 밤이 가도 그대 나를 기억해줄 테지만
또 다른 날에 우린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바로 지금, 여기서, 당신과 함께가 아니면 내겐 소용없는데...



    

5. 김사월, <너무 많은 연애>

    

<너무 많은 연애> 제목에서 이미 찢었다. 사랑을 바라고 연애를 시작하지만 대부분은 허탈함으로 귀결된다. 이문세가 <옛 사랑>에서 노래한,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한국 발라드 불멸의 펀치라인과도 공명한다.  

    

집에는 안 갈래 그냥 그 바다에 있을래
그냥 그 공원에 있을래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가를 목 조르게 해
너무 많은 연애


    


6. Radiohead, <Fake Plastic Trees>

     

10여 년 전 갔었던 영국 출장. 히드로공항에 내리자마자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이 노래부터 틀었다. 비록 허세일지라도 런던의 공기를 느끼며 들어보고 싶었다. Radiohead 노래는 <Creep> 밖에 모른다는 사람들에게 늘 추천하는 곡.

     

She looks like the real thing
그녀는 진짜처럼 보였어
She tastes like the real thing
그녀는 진짜처럼 느껴졌어
My fake plastic love
나의 가짜 플라스틱 사랑


     


7. 이이언, <자랑>

     

듣다 보면 우울증에 걸려 버릴 것 같은 밴드 못(MOT)이지만, 보컬 이이언의 솔로곡들은 그나마 듣기 편하다. 이 곡도 마찬가지. 밴드와 솔로 두 버전 중에 후자를 더 좋아한다. 허무함의 극한을 달리는 가사는 밴드 사운드보다 단조로운 솔로 편곡에 더 잘 어울린다.

     

그저 시간에 기대면 될까요
모든 게 다 흐려지나요
잊고 또 잊혀지는 건가요


     


8. 스웨덴세탁소, <my butterfly>

     

평소 좋아하는 팀이지만 가사를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 이 곡에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잘 가꿔진 정원의 심상을 이별의 정서와 연결시킨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줄곧 너만을 기다린 이 자리에
작게 피어난 꿈의 에델바이스
시들지 않게 다시 날 보러 와줘
너의 온기로만 꽃피울테니


     


9. 고갱(Gogang), <An Angel(Under the Street Light)>

     

나는 음악은 각잡고 들어야 한다는 꼰대스러운 마인드를 가졌지만. 요즘 유행하는 BGM스러운 음악들도 사실 좋긴 좋다. 책을 쓰면서부터는 노동요로 어울리는 이런 곡들에 더더욱 관심이 간다. 1993년생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풍부한 감성의 이 뮤지션도 그중 하나.

     

Destiny or coincidence it no matter anymore
운명이든 우연이든 이젠 상관없어
The words get lost themselves
단어들 자체가 사라지고 있어
On the one way street
일방통행의 거리에서


  

   

10. 나이트오프(Nightoff), <잠>

     

좋아하는 두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이능룡과 못의 이이언. 둘이 친한지 몰랐어서 이 프로젝트는 의외였다. 이이언이 좀 더 대중적인 색깔이 강하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이 곡이 그 바람의 완성형을 제대로 보여준다.

     

벽에 기대어 앉으며 짐을 내려놓으니
한 줌의 희망이 그토록 무거웠구나
탓할 무언가를 애써 떠올려봐도
오직 나만의 어리석음 뿐이었네
나 조금 누우면 안 될까
잠깐 잠들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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