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체력에서 온다고 했던가..

'내가 할게!'가 점점 줄어가는 당신에게.

by 웅스님

다정함은 체력에서 온다고 했던가.


"내가 할게!!"라고 씩씩하게 외치던 횟수가 올해 들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신체 반응 속도는 어떠한가?

"내가 이따가 해놓을게!"에서, "우리 내일 할까??"...로 결론 지을 때가 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현저히 느려지고 있다. 체중이 늘은 만큼, 마음의 느슨함도 늘은 걸까? 부족한 수면을 채우지 못한, 벌을 받고 있는 걸까?


여전히 재빠른 아내의 손놀림을 볼 때마다, 느슨함은 고무줄 마냥 따갑게 양심의 한구석을 때린다. 갓 돌이 지난 딸과 두 시간은 놀아준 것 같은데, 3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이 피로감에 소름이 돋는다. 여기저기 녹이 선, 낡아버린 나의 메카닉의 절규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


오늘 할 일을 '내일의 나'에게 몇 개씩 던졌다가, 주체할 수 없이 바빠 예민해지는 일도 허다하다.


'내가 이렇다고?!?!?, 이 정도에 지친다고?'


인정하기 싫지만, 그랬다.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를 꽤나 힘들어한다. 싫어한다.

사람이 참 예뻤던 그 젊은이, '그때의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다정했던 그 예쁨은 이제 변명이 늘어버린 게으름으로 자라고 있다. 그냥 하면 되는 일도, 이것저것 따져보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따진다는 것은 결국 '내가 편한 것을 찾고 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합리적인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할 때도 있다. 먼저 움직이면서 나는 시행착오를 겪었고, 거기에서 많은 교훈을 얻어오지 않았던가.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귀찮아 서러운 순간이 있지만, 따지고 보면 이 꼬임의 물줄기는 모두 한 방향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임이 분명하다.




사는 건 결코 미뤄지는 일이 없다.


체력이 따라가지 못할 뿐인 듯하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온다고 했던가...

요즘의 나는 까칠하다. 거칠거칠한 피부가 말을 하듯 매일 뜨는 태양에 쫓기듯 살고 있다.

이해를 해달라고 하기에는, 둘째를 임신한 아내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나 요즘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던 어느 날,

나는 전부 놓아야만 했다. 이기적인 나의 욕심, 좋아하는 음식, 취향, 수면시간, 여유, 취미, 운동 모든 걸 내려놓았다. 지금 나를 위한 모든 것은, 그저 미안함이 될 뿐이다.


뱃살이 늘어나는 걸 원하지는 않았지만, 체력까지 바닥을 찍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함을 감정적으로 호소했지만, 내려간 체력이 드라마틱하게 이 이야기를 반전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멍청이가 여기 존재한다.


이 문제를 대부분 해결해 줄 키를 나는 알고 있다. 똑똑하게 방법을 알지만, 쉽지는 않다.




사는 건 결코 그냥 살아지지 않는다.


연료가 없으면, 움직이라고 아무리 소리쳐봤자 움직이지 않는다.

연료가 있어도, 움직이지 않으면 다정함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온다고 했던가,

매일의 나에게, 가족들에게, 다정함이 다시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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