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생활은 2003년에 시작했다. 회사의 직급은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상무-이사-전무로 세분화되었다. 요즘 회사들은 직급을 없애거나 줄이고 있는 추세라고 하던데, 적어놓고 보니 정말 길다. 보통 일년 반 정도 지나면 성과평가를 거쳐 주임으로 승진한다. 사원들을 부를 때에는 이름 끝에 '~씨'라고 부른다. 홍길동씨! 그다음 직급부터는 '~씨'대신 직급으로 부른다. 홍길동 주임. 나는 사원이여서 모두들 나를 '운기씨'라고 불렀다. 나보다 조금 일찍 들어온 선배들은 주임으로 승진했다.
나는 그들을 '~주임님'으로 불러야 했는데, 그들의 호칭을 부를 때마다 발음 때문에 항상 마음이 쓰였다. '홍길동 주임님'하면 '홍길동 주인님'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들과 같이 커피를 마시게 되면 굳이 이름을 부르지 않고 직급만 높여 부른다. '주임님, 이제 가시죠.'
2년 뒤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다행히 회사 후배들이 나를 '주임님'이라 부르는 것을 듣고 퇴사를, 그리고 공부를 했다. 이제는 울산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들은 나를 '교수님'이라 부른다. '교주님'이라 들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병남 (전) LG인화원 원장의 책 '경영은 사람이다'에는 '기능적 불평등과 존재론적 평등'이라는 문구가 나온다. 회사에서는 누군가 명령을 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상사가 있고 부하직원이 있다. 경험과 지식에 따라 능력이 다르다. 그것이 조직의 위계를 나누고 책임을 나눈다. 이는 기능적 불평등이다. 기능적 불평등을 부정하면 기업은 운영될 수 없다. 반면, 인간은 존재로서 평등하다. 인간을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그 자체로 목적으로 대하라는 독일 철학자 칸트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이나 그 기업의 대표나 인간으로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기업이란 이 두 가지 믿음이 병행되어야 한다.
주임님은 주인님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는 않다. 직장 상사와 리더들은 부하직원의 시간과 노동의 '주인님'이 된다. 기능적으로 각자 다른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인데, 존재론적으로 불평등하게 여겨진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에 있을 때의 일이다. 학교에 인도인 교수와 인도인 학생이 있었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법으로 금지하였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과 정체성을 뿌리 깊게 형성하고 있다. 인도인 교수는 두 번째 계급인 크샤트리아 계급, 박사과정 학생은 최상위 브라만 계급이었다. 처음에는 학생이 교수를 무시했다. 존재론적으로 낮은 등급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 놓인 존재론적인 불평등이 기능적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곳은 미국이었고 기능적 불평등을 인정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
2019년 9월 어느 날 뉴스에서 '맞아 죽은 인도 불가촉천민'의 기사를 보았다. 카스트제도의 어느 계급에도 속하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이 길에서 용변을 본다는 이유로 높은 계급의 남성들에게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 여전히 인도인들에게는 (비록 대도시는 사라지고 있다고 하지만) 계급에 의한 존재론적 불평등이 존재한다. 사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기능적 역할을 분리하기 위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고착되고 종교화되어 존재론적 불평등으로까지 연결되었다.
한국이라고 다를까? 한국의 위계적 조직문화는 기능적 불평등이 존재론적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이선균이 연기한 박사장이 떠올랐다. 박사장은 자신의 운전사 김기택(송강호 역)이 운전의 기능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동시에 ‘선’을 그어 그와 운전자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존재론적 공간이 있음을 명확히 했다. 나에게 그 영화는 ‘기능적 불평등’과 ‘존재론적 불평등’이 구분되지 않아 벌어지게된 스릴러였다. 그 영화가 칸영화제 황금종려상뿐만 아니라 아카데이 작품상까지 받은 것을 보니, 존재론적 불평등에 관한 주제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감하는 주제인 것 같다.
나는 1999년 1월 육군 입대를 했다. 당시에는 2년 2개월의 복무기간이었다. 군대는 1달 간격으로 선임과 후임이 나뉜다. 1월 31일에 입대한 사람은 2월 1일에 입대 한 사람보다 선임이다. 1년 먼저 들어온 사람을 아버지 군번이라 한다. 나에게는 1998년 1월에 입대를 한 사람이 아버지 군번이다. 2년 먼저 입대하면 할아버지 군번이라고 한다. 1997년 1월에 입대한 군번이다. 요즘은 복무기간이 짧아졌으니 할아버지 군번이라는 것은 사라졌겠지.
당시 나에게도 아버지 군번 선임들이 몇 있었다. 어느 날 그중 한 명과 2시간 동안 경계근무를 섰다. 둘만 있으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된다. 새롭게 알게 된 사실. 그 선임은 나와 같은 대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나처럼 공대생이었다. 더 놀랍게도 나와 같은 97학번이다. 같은 캠퍼스 같은 도서관에서 마주쳤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는 1학년 마치고 바로 군대에 왔단다. 나는 2학년 마치고 입대했다. 나의 아버지뻘 선임이 나와 같은 학번에 동기였다니. 반가움도 잠시, 그와 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기능적 불평등'이 존재했다. 군대라는 조직때문에 나는 존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일 년 먼저 들어온 선임일 뿐인데, 그 앞에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나 자신이 '존재론적으로' 부끄러웠다.
제대를 하고 도서관 앞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1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들고 벤치에 앉아 같이 마셨다. 반말을 쓰기가 어색했지만, 이제 같은 학번 동기다. 용기를 내어 반말을 사용했다.
기능적 불평등을 존재론적 불평등으로 환원시키면 안 되는데, 말처럼 쉽지는 않다.
기업에서는 오죽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