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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Dec 08. 2023

40대 중반, 너무 젊다.

누가 그래, 40대 중반이면 늙었다고.

제 글을 몇 개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 백수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출근하지 않는 40대의 한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아내는 개인사업자입니다. 일하러 나갔지요. 어느 순간엔 나 자신이 조금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40대 초중반이라는 나이. 포기하기엔 너무 젊지 않습니까?



40대 중반, 50대 초반. 너무나 젊은 나이.

김미경 님이 했던 너무나 와닿았던 말.

'인생의 시계로 보면 40대는 오전 11시 즈음이라는.


이 나이가 되면, 인생 달려야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있으시죠? 40대가 넘어가면, 이제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맞아요. 20대와 30대에 겪고 얻은 경험과 지식들을 바탕으로 40대에는 제대로 달리기 시작해야 하는 때인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달리기 위한 원동력이 결여된 상태라면 어떨까요? 목표를 잃어버렸다. 그저 직장이 내 삶의 전부였고, 내 인생이 그동안 직장에 매물 되어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40대에 접어들면서 이 방향이 틀린 거같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멈춰야지요."


멈추라는 말이 무작정 회사를 나오라는 게 아닙니다. 지금 하는 일을 멈추라는 게 아닙니다.

아직 인생에선 점심시간도 안된 시간이니, 한 걸음 멈춰서 재정비해도 충분하다는 것이죠.


저처럼 특정한 계획 없이, 생각 없이 무작정 멈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거 같네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이미 저질러버린걸. 퇴사하고 글을 쓰면서, 회사에 다닐 때와는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저에게 아주 크게 바뀐 점이 하나 있습니다.



'긍정력'의 폭발.

저를 아는 지인들은 깜짝 놀랍니다. 부정의 아이콘이었으며, 의심론자에 음모론자.

항상 날이 서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깨지게 된 것입니다.


요즘은 저를 보며 제가 놀랍니다. 내가 이렇게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었던가. 정말 여러분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부정적인 사람이었거든요.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무조건 부정적인 생각들만 먼저 떠올리던 사람. 바로 저입니다.

아내가 확신을 가지고 있던, 개인사업에 대해서도 저 혼자 부정적인 온갖 상상을 해댔던 사람입니다.

아내를 믿지 못해서였을까요?


아니요. 저를 못 믿어서 그런 거였습니다. 저를 못 믿었던 거였어요. 아내에 대한 확신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선뜻 아내의 선택을 밀어주지 못했습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은 희대의 개소리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누굴 끌어당겨 끌어당기긴. 그저 운빨로 돈 좀 벌었다는 사람들의 강의팔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안정적인 월급을 포기하고, 무작정 뛰쳐나와 생각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요즘.

단순히 멍 때리고 앉아있는 그 순간까지도, 미래의 성공한 내가 스스로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보시는 퇴사를 고민하시는 40대, 50대분들도 결국은 잘될 겁니다.

돈을 많이 번다고 잘되는 게 아니더군요. 부자의 정의를 단지 가지고 있는 돈의 액수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얼마나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하게 된다면, 그것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가치가 나에게 얼마만큼의 크기로 다가올 것인가.


의미 없는 일을 하며,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였지만. 이제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조차 저에겐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조금 녹아있습니다.


"잘 되어가는 중이야. 걱정하지 마."


라고 스스로 긍정의 말을 소리 내어 말도 해보고, 1년 뒤 어떻게 변해있을지 모르는 현 상황이 설레기도 하고요. 1년 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아 불안했던 불과 한 달 전과는 다르게, 이제는 1년 뒤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에 가슴셀레이고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문득 보게 된 저 문구.


"서다! 보다! 걷다!"


마치 우리 중년의 인생을 대변하는 말처럼 보였습니다.

의미를 잃었어? 일단 서봐.

가만히 서서, 주변을 봐.

희미하게라도 느낌이 와? 천천히 걸어봐.


저에겐 이렇게 다가오더군요.

저는 이미 섰고, 보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마지막 단계로 가고 있는 중이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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