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마 출, 퇴근만 편했어도 퇴사 안 했어.
내가 인마, 느그 회사랑 인마.
왕복 4시간 20분. 버스 한 번. 지하철 2번.
하루 총 6번을 갈아타야 했던 나의 출, 퇴근길. 도어 투 도어로 2시간 5분에서 10분 사이.
이런 말이 있죠.
직장은 집 가까운 게 최고다.
라고요.
하루 4시간가량의 출, 퇴근을 하노라면, 내가 이 짓을 왜 하나 싶은 때가 있습니다. 연봉이 중요치 않게 됩니다. 직업특성상 칼퇴근이 힘든 분야였고, 야근이라도 하면 집에 오는 시간은 빨라야 10시, 11시.
이 와중에 운동중독이었던 저는 운동까지 하고 밤 12시 반에 밥을 먹고 새벽 1시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깟 운동 포기하면 되었는데 뭐 한다고 그렇게 운동을 해 댄 건지 원.
(참지 마~ 포기하면 편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다녔던 건, 일종의 책임감이었습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나만 보며 눈을 껌뻑이는 아내가 있었기에 버티며 다닐 수 있었던 거 같네요. 그리고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는 무의식도 한몫했고요.
비즈니스 캐주얼이 허용되었던 터라, 정장까지 입진 않았습니다. 신발도 슬립온도 가능했고요.
발이 너무 아프더군요. 무릎도 아프고.
슬립온을 신다가, 운동화도 신었다가. 어느 날은 슬리퍼가 편할까 싶어 슬리퍼 신고 간 적도 있어요.
족저근막염 올 거 같은 느낌.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항상 하던 생각.
하.. 집에 언제 또 가냐..
출근이 저보다 늦었던 아내에게 아침마다 하던 인사.
여행 다녀올게.
출근하자마 녹초가 돼버리는 몸. 피씨를 켜고 5분간 종아리를 주무릅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어 집니다. 아니, 한 시간 정도 있다가 퇴근하고 싶어 집니다. 갈 길이 한참이라 바로 가면 힘들거든요.
하나, 둘 오는 팀원들. 얼굴은 웃지 않으며,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오전 티타임이 되면 기계적으로 커피를 들고 바깥으로 나가 잡담을 합니다. 그리곤 나라 잃은 김구 표정으로 종일 일을 하고요.
퇴근시간이 다가오네요. 벌써부터 막막합니다. 전쟁 같은 출근길을 지나왔는데, 또다시 전쟁 같은 퇴근길을 가야 하는구나. 아, 근데 생각해 보니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계속 이래야 되는구나. 힘들다. 따위의 생각이 반복적으로 떠오릅니다.
직장이 집에서 가까우신 분들은 이해는 하면서도 어떤 기분인지, 얼마나 힘든지 공감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정~~~~~~~~~~말 힘듭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열심히 왔다 갔다 하며 월급을 받긴 했지만요.
내가 집만 가까웠어도 퇴사 안 했다 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한바탕 웃으며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네, 그들은 저를 보며 '미친 자'라고 하네요. 고작 그것 때문에 퇴사한 거냐며 말이죠. 하하. 그저 저의 퇴사를 이렇게 우스갯소리로 웃어넘길 수 있는 지금이 정신적으로 참 건강하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와이프 눈치 보는 스킬이 나날이 발전해 가는 요즘입니다. 와이프 기분이 좀 안 좋은 거 같다 싶으면 알아서 몸을 사리는 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제는 전쟁 같은 출, 퇴근길에 대한 걱정이 아닌,
과연 내일 아침에는 와이프의 기분이 좋을 것인가, 나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ㅋ)
사실, 나쁘게 얘기해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와이프의 기분을 예전보다 더 많이, 더 깊게 공감해 줄 만큼의 심리적 여유가 생겼다는 방증이 될 수 있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