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 누구에든 배울 점은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이어가 보겠습니다.
제 아내는 개인사업을 합니다. 직원들과 열심히 본인만의 가치를 만들고 있죠. 어떤 사업을 하던 일명 '진상'이라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런 부류는 굉장한 스트레스로 다가옵니다. 저 또한 회사 다닐 때 진상고객들을 많이 만났었고, 스트레스 받아했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멘탈이 강하다고, 스트레스에 강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험난한 세상, 강한 멘탈로 버텨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 전 그저 센척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아내와 밥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언제나처럼 친절하게 전화를 받습니다.
10초도 지나지 않아, 연신 네네 거리며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어두워진 얼굴. 조금은 가라앉은 목소리.
그럼에도 놓치지 않는 친절한 말투.
- 네 고객님. 네네.
그렇게 약 10분가량을 저 말만 반복하며 듣고만 있습니다.
어떠한 일로 고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실수한 게 없었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아무리 따져보아도 실수한 게 없었습니다. 그 고객은 무엇이 기분이 나빴는지 10분간 언성을 높여 뭐라고 한 겁니다. 저 같으면 같이 들이받았을 텐데 그걸 10분을 참으며 들어주는 그녀도 참 대단합니다.
전화를 끊고선 물 한잔 마시더니, 금세 무슨 일 있었냐는 듯 개의치 않아 하던 그녀. 진상을 부리던 고객을 삼일 뒤에 만나야 한답니다. 저는 듣자마자 말했습니다.
- 그날, 출근하지 말고 그냥 직원한테 응대하라고 해. 그날은 하루 쉬어 그냥. 나랑 바람 쐬러 가자.
아침 10시. 전화기 너머로까지 들려오던 고성의 목소리에 너무 짜증이 났었습니다. 조금은 흥분해 있던 저를 보더니 일단 알겠다고 합니다.
30분쯤 지나. 아내가 그날 그냥 출근하겠다고 합니다. 전 말렸습니다. 뭐 하러 그런 사람을 직접 만나냐며. 전화로 했던 얘기 분명히 반복해서 똑같이 말할 거라고. 그냥 쉬라고 설득했습니다.
씨도 안 먹힙니다. 이후 나온 말들이 다시 한번 저를 깨우더군요.
- 어차피 내가 이 업을 계속하면 쭉 보게 될 사람이야. 내가 언제까지 피한다고 피해지지도 않을 거고. 이렇게 되면 내가 불편해서 일 못해. 차라리 만나서 같은 얘기를 다시 반복해서 듣더라도, 얼굴 보고 이야기하면서 앙금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풀어버리는 게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거 같아. 그냥 출근할래.
예전의 저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고객이나 자리가 있으면 제 맞후임을 보냈습니다.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대면서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단지 그 상황이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던 것인데.맞서 부딪히려 하지 않고, 요리조리 상황을 피했던 것이었죠.
후기를 조금 들려드리자면.
당일 아침.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간 아내. 그 고객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그 고객이 들어오더랍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받더랍니다. 아내가 차를 한잔 내오며 다시 한번 아주 반갑게 안부를 묻자, 지난번 일은 미안했다고 하던 그 고객. 그렇게 아내와 고객은 차를 마시며 30분을 수다를 떨었다고 하네요. 일이 아닌 다른 얘기들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던가요. 그렇게 전화로 진상짓을 하던 고객에게 세상 환화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아내. 스트레스받는 일을 애써 외면하며, 상대할 가치가 없다며 피하던 저와는 다른 자세로 사회생활을 하는 아내.
여담이지만, 그녀는 회사라는 집단에서 일해보지 않았습니다.
점심시간에 회사 목걸이 목에 두르고 커피 들고 다니는 직장인들이 부러울 때가 있답니다. 커리어 우먼처럼 보인다면서 말이죠.
한 마디 해줬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네가 본 그 직장인들. 회사에 있는 동안 퇴근할 때 빼고 그때가 제일 행복한 시간일거야. 사무실 오면 다시 나라 잃은 김구처럼 표정이 변한다? 아닐 거 같지? 최소한 16년 간, 5개 회사를 다녀본 내가 본 사람들은 열이면 아홉이 저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