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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Jan 29. 2024

회사 임원 뒷담화 한 걸 들킨 거 같다.

아, 상무님 그게 아니고요.

임원 뒷담화 한 걸 들켰던 적이 있습니다.

임원과 둘이 담배 피우러 나간 자리에서 들킨 사실을 인지했고요.

당시 회사 임원 진급 직전이었던 상무님.


나도 그냥 직장인일 뿐인데 뭐, 그치?


뒷골이 서늘해지고, 입에는 어색한 미소만 지어지던 그때. 지금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담배도 한대만 피우시던 분이 그날따라 연달아 두 대를 피시던 그날. 사연은 이러했습니다.


와이프가 사업을 시작하고 1년쯤 지나던 작년 어느 달. 이상하리만치 매출이 월초부터 잘 나왔습니다. 서로 신기하다. 이상하다. 를 반복하고 있던 그 달. 매출이 잘 나오는데 서로 이상하다고 하고 있던 이상한 부부. 이럴 리가 없다며.(ㅋㅋ)


그 달 처음으로 와이프가 제 월급에 2배를 벌었습니다. 우와!! 뺄 거 다 빼고 진짜 이거 맞아? 내 생애 이런 수입 처음이야! 를 외치며 그날 저녁 이마트 가서 9천 원짜리 와인도 사 오고, 선물 받은 케이크 선물권도 사용한 그 달. 하지만 그다음 달이 더 대박이었습니다.


제 월급에 3배!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일장춘몽 같았던 작년 두 달. 지금은 저~~ 얼대 저 금액만큼 벌지 못합니다. 이제 정상화된 거죠. 무튼, 그렇게 두 달을 제 월급의 몇 배를 벌던 그 시기. 왠지 모를 자신감이 들어서기 시작합니다.


당시 임원(진)이었던 그분. 딱히 모난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생각해 보면 창피한 기억이지만,  당시 회사에 대한 회의감이 컸던지라 매사에 불평불만이 많았습니다. 당시 크진 않았지만 80억 가량의 프로젝트를 마무리했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복지카드 10만 원이 전부였던지라 짜증게이지 백 프로였거든요.


그 프로젝트한다고 몇 날 밤을 새우고, 주말출근을 밥 먹듯 했으며 같이 했던 후임은 자다가 새벽에 깨서 메일 보내고 전 그걸 또 그 시간에 검토하고.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이 복지카드 10만 원이라니.


그러다 보니, 사실 회사 및 윗 사람들에 대한 불만도 커져만 갔었죠. 그러던 와중, 저분이 임원을 곧 달게 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팀원 일부가 일종의 추앙(?) 같은 걸 하길래.


야, 그래봐야 직장인이야. 뭐 임원이 대단해? 1년 계약직. 언제 짤릴지 모르는. 내 마누라가 더 나은 거 같다.

이래버렸죠.


반성합니다. 임원. 대단한 거 맞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임원까지 간다는 건 상상도 못 할 본인의 노력이 숨어있을 거거든요. 저는 알지 못하는 그런 노력들이요. 그거에 대해 신랄하게 까내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아내가 조금 잘 번다고 어깨뽕이 조금 올라온 상태 더하기 복지카드 10만 원 보상에 대한 반감이 뭉쳐져 나온 한탄(?) 비스무리한 불평이었거든요.


하필 직원들이 모여 담배 피우던 곳에서 저런 소리를 했으니, 우리 팀원이 아니라도 누군가가 듣고 그 임원에게 흘렸겠죠.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그 임원분이 오시더니 간만에 담배 피우러 가잡니다. 쭐래쭐래 따라가 야금야금 담배를 피우며 스몰토크를 하던 중.


나 : 곧 임원 다시는데 어떠십니까? 책임감이 더 커지셨겠습니다.

그 : 아무래도 그렇지? 평사원일 때보다는 조금 더 그래지는 거 같다.

나 : 이야, 그래도 이제 임원이시니 연봉도 많이 오르셨겠습니다. 부럽슴다~

그 : 에이, 뭐 그래봐야 나도 그냥 직장인인데, 그치?(살짝의 썩소)

나 : (경직된 얼굴 위로 억지로 드러난 미소, 순간 당황)

그 : X차장도 직장인. 나도 직장인. 우린 다 같은 월급쟁이잖아.

나 : 하하(뻘쭘..). 그래도 임원이면 좀 다르죠~ 축하드립니다!

그 : 아녀. 이게 뭐 축하할 일인가. 나도 더 열심히 해야지.


이런 대화를 나누고 뻘쭘해 죽겠는데, 굳이 한대를 더 피겠다는 그분. 담배 한 대 피는데 대략 소요시간 3분.

그 3시간 갔던 3분을 보내고 사무실로 들어오는 길에 전화 좀 하겠다는 핑계를 대며 자리에 남았고. 담배 한 대를 더 물어듭니다. 깊은 한숨.


아.. X 된 거 같은데...


정신상태가 어지러웠던 그때. 진지하게 반성합니다. 그분의 노력을 폄하하려던 게 아니었습니다. 단지,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 고작 10만 원인가라는 분노와 하필이면 그즈음의 두 달을 돈을 잘 벌었던 아내의 사업으로 인한 약간의 건방짐까지 더해졌던 것이죠.


대한민국 3천만 직장인중에 임원이 되려면 상위 1프로 안에 들어야 합니다. 내 삶을 회사라는 곳에 철저하게 녹여내어야 가능한 그 자리.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을 생각해봤어야 했는데 당시의 저는 그게 모자랐었네요.


반성하고 또 반성합니다.

그 당시 상무님에게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년에도 계약되실 거예요~! 건승하십셔!


PS. 지금은 습관적으로 화장실에서 전화할 때도 변기칸에 누가 있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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