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Jan 24. 2024

40대, 할 줄 아는 거라곤 회사원뿐이라.

회송합니다.

16년 간 회사원만 해봤습니다.


회사가 전부라 굳게 믿고, 회사 밖에서 소득창출을 위한 무언가를 해본 적도 없고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회사에 16년을 몸 담았고 나름 전문가 소리를 들으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회사 밖으로 나온 지 한 달 반이 되었네요. 뭐랄까. 마치 갓 자대배치받은 이등병 같다라고나 할까요.


회사에 있을 땐 나름 큰소리 좀 치며 지냈는데. 밖으로 나와보니 이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요. 그저 회사가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었고, 월급이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던 것이었습니다. 16년 간 익혔던 노하우는 밖으로 나와 나만의 것으로 승화시킬만한 것은 아니었으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를 무던히 노력하며 찾아봤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직종입니다.) 그렇다고 집에 돈이 많아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는 형편도 못됩니다.


직업 선택을 잘못한 건가..

이런 생각도 듭니다.


최종적으로는 나만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어야 했는데. 그저 이런 직장생활이 영원할 줄 알았습니다. 팀에 있는 상사들이 정리되는 것을 보며 정신이 바짝 들기 전까지 말이죠. 사실, 그걸 보았어도 처음에는 큰 경각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충격이긴 했으나 나와는 아주 먼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죠. 그것이 파부와 와닿기 시작한 건 40살이 넘어서부터였습니다.


퇴사 한 달 반.

집에서 쉬기 시작하면서 집안일을 해보았습니다.(오로지 저의 이야기입니다. 일반화 아니에요.)

세탁기 돌리는 거? 그냥 세제 넣고 누르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세제는 얼만큼 넣는지, 온수를 섞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언제인지. 피존을 언제 넣어야 하는 건지.


설거지? 그냥 퐁퐁질서 닦고 물로 헹궈 얹어놓으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챗구멍을 매번 할 때마다 털어내야 하는 건지, 설거지한 다음날 물기가 마르면 다시 정리해야 한다는 것도.


청소? 소기만 돌리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다 돌린 청소기는 내부먼지를 털어내어야 했고요. 바닥은 물이 살짝 젖어있는(?) 그런 티슈 같은 걸 끼워서 닦아야 하더군요.


밥 짓기?

쌀을 물에 오래 담가두면 물을 가 평소 하던 것보다 적게 넣어야 하더군요. 평소만큼 넣었더니 밥이 질어서 떡이 되었습니다. 쌀은 또 물에 어느 정도 불려 두어야 제법 맛이 나더군요.


당최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습니다. 그저 16년 간 회사일이나 열심히 했지,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제돌리는 것조차 못하는 저를 보며 스스로 한심해했습니다.

(빨래를 널고 개는 것은 자주 했었습니다.)


이제부터 할 줄 알면 되지 머.

비단 집안일만 그러겠습니까. 그간 모르고 지냈던, 회사에 매몰되어 있어 잘 모르고 지내던 것들을 알아나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 둘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또 혹시 압니까? 저에게 맞는 무언가가 발견될 지도요.


할 줄 아는 건 회사원 밖에 없습니다.

남밑에서만 일해오다 보니 내 이름을 걸고 스스로 무언가를 할 용기가 없습니다. 아니, 용기는 둘째치고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서처럼 그저 누가 점지해서 시켜줬으면 좋겠습니다.


너, 이거 해.

라고 말이죠.


16년 간의 직장생활, 회사원 신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일찍이 자기만의 것에 대한 갈망을 느껴 삼성을 뛰쳐나와 도전을 하고, 이제는 자리를 잡은 친구를 보며.


나도 좀 더 젊었을 때 저리 할 걸 그랬나.

라는 자조 섞인 젊은 시절의 나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를 느끼는 것이죠.


물론, 직장생활이 틀린 건 아닙니다. 수 차례 제가 쓴 글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성향의 차이라고요. 제 직장동료로 있던 분들은 대부분 뼛속까지 직장인이었습니다. 그들이 틀리다는 건 아닙니다. 다른것이죠.


이전 04화 회사 임원 뒷담화 한 걸 들킨 거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