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한다.
여기에 하나 더.
나의 가족들에 대한 책임.
10대.
집이 없어 빌라 옥상에서 자던 기억? 아파트 계단에서 웅크리고 자던 기억.
추운 겨울,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찾아간 날 쫓아낸 어머니 아파트 주차장에서 열려있던 차에 들어가 눈 붙였던 기억.
하루하고 반나절을 굶다가 어쩌다 한 끼 얻어먹게던 친구집에서의 밥 한 끼. 한 공기 더 먹고 싶었지만 그 말을 못 했던 기억.
뚝방길을 걷다 추워서 들어갔던 이사 나간 빈 집 문을 열고 들어가 쪽잠을 자던 기억.
주머니에 있던 천 원으로 빵을 먹을까 담배를 살까 고민하던 18살 어느날의 기억.
이런 결핍들로 인해 무던히도 돈을 좇고 쫓아왔지만, 40살이 훌쩍 넘어 돌이켜 보니 열정적으로 쫓던, 내가 그리 갈망하던 부자와는 아직도 거리가 먼 자신을 바라보며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사회생활 시작부터 연봉 1500만 원이라는 금액은 나를 부자로 만들어줄 거라는 기대감을 애초에 갖지 못하게 했다.
실수령 105만 원을 받으며, '그래 이거라도 어디냐. 최소한 밥은 굶지 않겠다.' 라는 생각들이 머리를 지배했고 그렇게 의지와는 상관없이 물려받은 내 안의 가난함이라는 유전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년이란 시간을 왜 이렇게 바둥거리며 살아왔을까.
'책임감' 과 '그러지 않으면 큰일 남' 이라는 두 가지가 내 마음과 머리를 차지했던 거 같다.
물론 돈이라는 물질적인 보상도 크긴 했지만 오늘은 그 부분은 차치하도록 하겠다.
'그러지 않으면 큰 일 남'
그런 기억 있지 않은 가? 학창 시절. 평소보다 늦게 일어나 학교를 지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철렁' 하고 약간 가슴이 싸해지던 그 느낌.
쳇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다가 어떠한 사유로 그것을 한 번 안 하게 되면 정말 내 삶에 큰 일을 저지른 것처럼 생각하는 거 말이다.
1년, 2년, 5년, 10년, 16년.. 이렇게 쳇바퀴 돌듯이 살다 보니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큰일 날 거 같은 느낌.
'책임감'
사회초년생 때는 '그러지 않으면 큰 일 남' 의 비중이 훨씬 더 컸다. 그렇게 5년, 7년을 넘어가면서부터 직책이 생기고 담당자로서의 면모를 가지게 되면서 생기는 책임감.
바로 이 두 가지가 꽤나 큰 영향을 준 것임은 틀림없다. 인생의 최대의 일탈인 무려 '퇴사'를 한지 반년이 넘어가는 지금.
앞서 언급한,
- 그러지 않으면 클남
- 책임감
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 정신 차려보니 실질적인 가장의 역할은 아내가 하고 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인생의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며 하루하루 지내는 나를 보게 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감정은 바로 책임감이다.
결혼 전에는 내 인생을 책임지기 위해, 어차피 날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도와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기에 오로지 내 자신에 대한 책임감으로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었다.
결혼직후에는 내가 가장이 되었다라는 생각으로 나와 아내를 위해 회사를 다니며 돈을 벌었다.
아내의 사업시작 이후, 꿈틀대던 퇴사욕구가 정수리를 통해 조금씩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일정부분의 '책임감'을 벗어던졌다. 나에게서 삐져나온 책임감은 아내에게 들러붙었다. 물론 나도 마냥 손 놓고 있지는 않긴 하지만 예전과 같은 그런 큰 책임감은 들지 않는다.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바뀌었다는 것을 스스로 실감할 정도다.
예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와 함께 일을 하던 직원 한분이 급작스런 사정으로 장기휴가를 내어야 했다. 2개월의 공백이라 정직원을 뽑자니 부담이기도 해서, 아르바이트하실 분을 수소문했고 어느 한 분과 잘 연결이 되어 일을 시작하기로 한 당일 아침.
근무지가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한 번 타야 하는 곳이라 사전에 오시는 길을 잘 확인하라고 안내를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출근시간 5분 전 버스 배차가 30분 남았다며 툴툴거리며 전화를 하던 아르바이트 예정이셨던 분.
걸으면 15분 정도의 길이었기에 일단 오늘은 지도앱 켜고 걸어오시라 해도 집에 가는 길 걱정. 버스배차가 너무 길다는 불평.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결국 참던 아내는 그런 실랑이가 20분쯤 되어서야 폭발을 했고 돌아가시라 했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선생님이란 존칭과 함께 다소 딱딱한 말투로 전달을 했다.
그 뒤에 오게 된 아르바이트 예정이셨던 분의 장문의 문자.
'네 가지가 없으시네요' 와 '사회생활 그렇게 하지 마세요.' 라는 표현을 섞으며 아내를 조롱하듯이 보낸 문자. 답장하지 마라고 했다. 같이 그래봐야 당신도 그저 같은 수준의 인간이 돼버린다며. 그냥 저 사람은 저런 인생을 살게 놔두라고. 안 보면 그만 아니냐.
저 아르바이트 분은 30대 후반의 여성분이었다. 정확힌 알 수 없으나 가족의 구성원 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있기에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시고 나온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은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임감이 다소 떨어진 지금 저 아르바이트 예정이었던 분과 내가 크게 다르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근원적인 책임감은 막연히 가지고 있으나 조금 더 디테일한 책임감은 다소 떨어진 것이다.
동기부여 영상은 별로 와닿지 않는다. 세상에 닳고 달아버린 탓일까? 20대였다면 저런 동기부여 영상들이 큰 힘이 되었겠지만, 이제는 세상이 얼마나 팍팍한지 얼마나 복잡하고 무서운 곳인지 잘 알기 때문이랄까.
예전 내 인생의 뻔히 보이던 결말을 향해 알면서 가는 것이 아닌, 나도 모르는 새로운 인생을 향해 한 발짝 내딛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한편 '책임감'에 대한 의지를 다시 한번 다잡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오늘이다.
PS. 롯데리아 더블한우불고기 버거 맛있다. 단백질 함량도 높은 편이고.
PS2. 롯데리아 아메리카노가 생각보다 맛있어서 조금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