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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Sep 26. 2024

그 평범이 과연 그 평범일까?

NGU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야. 남들 사는 거처럼 그저 평범하게만 살아. 직장 잘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저 평범하게만.


넌 어떻게 살고 싶냐?

20대 시절, 친구들과 술 한잔 기울이다 보면 가뭄에 콩 나듯 이런 얘기를 합니다. 보통은 팔팔한 20대이니 이성에 대한 얘기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아주 간혹, 보통은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고 잠시의 정적이 흐르게 되면 누군가 툭, 하고 던지듯 한 마디 합니다.


20대 초반 내지는 군대 막 제대한 이후. 이 시절의 대부분은 특별히 어떻게 살고 싶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저 부자가 되고 싶다. 떵떵거리며 살고 싶다. 이 정도이지 이것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 어떤 인생의 방향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못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제대한 이후에는 야간호프집 알바를 하며 그저 한 달, 한 달 들어오는 월급에 만족하며 여자친구 만나는 재미로, 때로는 친구들 만나는 재미로 그 젊음이 영원할 거처럼, 아니 나이를 먹어간다는것에 대해 인지 자체를 하지 않고 살았거든요. 그저 젊었고, 파릇파릇했고, 몸은 너무나 건강했고.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거 같아요.


군대에 가면 평범하게 중간만 하면 돼. 남들보다 더 잘할 필요 없어.

군대 가기 전, 아버지가 해주신 말씀. 그저 중간만 해라. 더 쳐지지도 말고 앞서가려 하지도 말고. 눈에 띄지 않게 투명인간처럼 그저 평범하게 시간을 잘 보내고 오라 하셨습니다. 'I' 성향을 가졌던 저인지라 특별히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채로 그저 그렇게 무미건조한 2년 2개월을 보내고 돌아왔죠.


평범하게 사는 게 최고야. 남들 사는 거처럼 그저 평범하게만 살아. 직장 잘 다니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저 평범하게만.

첫 직장에 출근하기 전. 어머니가 저런 말을 해주십니다. 그저 평범하게만.

10년째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30만 원 집을 벗어나지 못하고, 반찬으로는 거의 주로 간장양파볶음만 먹으며 살던 그 시절. 우리 집은 절대 평범하지 못했지만, 평범하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던 어머니.


그놈에 평범, 평범. 도대체 그 평범은 무얼 말하는 것인가.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평범하게 연애하고,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아이 낳고,

평범하게 집 하나 사서,

평범하게 자식 키우다 결혼시키고,

평범하게 노후를 보내다,

평범하게 죽고 싶다.


저거 평범한 거 맞나요? 평범한 거 맞는 거죠? 제 눈에만 저게 평범이 아닌 상위 10%의 삶이라고 보이는 건가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다뇨. 취업하는 자체가 너무 힘들어진 시대에, 입사한다고 안정되는 거도 아니고. 점점 빨라지는 퇴직시기. 제가 예전글에 써놓았듯, 타의에 의해 내쳐지는 40대 후반의 수많은 직장인들. 재취업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노후준비도 되어있지 않아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이 세상에 평범한 직장은 없습니다.


평범한 연애. 돈 없으면 이젠 평범하게 연애도 못합니다. 우리나라 중위소득이 21년 기준 264만 원이라는 통계청 자료만 보아도 느낌 빡오죠. 여기에 집이라도 대출받아 얻는다면 저 소득으로는 빡빡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 허리띠를 졸라매는 그 과정을 즐겁게 동참해 준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요즘 어디 그러기가 쉬운 가요. SNS에 넘쳐나는 좋은 곳, 맛있는 음식, 좋은 옷, 좋은 차. 이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평범한 결혼. 이건 뭐 사람의 성향이나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니, 저의 결혼처럼 불필요한 것들은 모두 없애고 가성비 있는 결혼을 하시는 분들도 있을 테니 패스.


평범하게 아이 낳고. 이 부분이 참 문제입니다. 아이를 낳는 게 평범하다뇨. 제 주변에 저와 같은 고민으로 아이를 낳지 않다가 우연치 않게 임신이 되어 낳은 지인들이 있습니다. 아이 낳은 초반엔 다들 그럽니다. 야야, 생각보다 돈 많이 안 들어. 낳아. 괜찮아. 십 년 전 이런 말을 하던 지인 분. 지금 아이 학원비에 교육비에 등골이 휘고 있다고 합니다. 물론,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이런 거에 비할 순 없다 하지만 생활이 고단 해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평범하게 집 하나 사서. 이건 뭐 말도 꺼내기 싫습니다. 평범하게 집 하나 산다? 평범하게? ㅋㅋㅋㅋㅋ.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30년 대출상환의 출발선. 집값 오르면 팔고 갈아타면 되지 않냐?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가요? 쉽다면 온 국민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게요? 집 값 떨어지면 전전긍긍. 오르면 오르는 대로 언제 팔아야 할지 타이밍 잡느라 전전긍긍. 그러다 못 팔고 집 값 조금 떨어지면 그거대로 또 전전긍긍.


평범하게 자식 키우다 결혼시키고. 보통 아이 한 명을 다 키워내는데 평균 2억 정도가 든다고 합니다. 여기에 요즘은 결혼도 늦게 하잖아요? 서른 살 넘어서까지 부모밑에서 있는 자식들도 있고요. 성인이 된 이후에 무언갈 하고 싶다고 하면 또 지원해 줘야지 않습니까? 그리고 결혼은 지들 돈으로만 하나요? 보통은 집에서 집은 못 해주더라도 전셋집 구하라는 명목으로 그 정도 금액은 대부분 지원해 줍니다.(물론, 전 십원하나 받은 게 없긴 합니다. 저 같은 사람도 있겠죠 모.)


평범하게 노후를 보내고. 불지옥의 시기가 다가옵니다. 나이는 들고, 건강은 시원치 않고, 자식들 키우고 이런 거 저런 거 하느라 딱히 노후준비는 안 되어있고. 60살이 되어도 무조건 일은 해야만 하는 상황. 평범한 노후가 아니라 노동자의 노후를 보내야 하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평범하게 죽고 싶다. 이것이야 말로 극악의 난이도로서 최고봉입니다. 평범하게 어디 아픈데 없이 무려 잠을 자다가 평온하게 가는 것이 평범한 건 아니잖아요? 온갖 질병의 위험과 갖은 고통들이 노화된 나의 신체를 호시탐탐 노리게 될 것이고 결국 그것들이 하나 둘 침투하게 되면서 절대 평범하지 않은 그런 죽음을 맞이할 가능성이 평범하게 잠을 자다 죽는 것보다는 훨씬 높은 확률로 클 테니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인생은, 상위 10%의 삶을 얘기하는 거 같습니다. 아니, 평범이라는 말 자체가 어떤 사람에겐 모순입니다. 평범하게 적당한 스트레스와, 평범하게 한 달에 4,5번의 외식을 해주고, 평범하게 국민평수의 아파트에서 평범한 월급을 받으며. 그저 큰 걱정과 고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거죠.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가 아니라, 상위 10%의 인생을 살고 싶다.

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네요. 대한민국 평균 올려치기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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