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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Oct 13. 2024

62세 정년퇴임하신 전무님의 한 마디

몇 십 마디;;;

제가 이 나이가 되어 회사를 떠나게 되다니 믿기질 않습니다. 입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마지막 말은...



제 나이 30대 후반 시절. 당시 전무님께서 정년퇴임을 하셨습니다. 다들 분주하게 바쁜 때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시는 길 축하드리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죠.


62세의 나이로 정년퇴임을 하시던 전무님. 다들 진정한 승자라며 뒤에서 수군수군.

회사생활은 저렇게 해야 한다며,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를 논하던 회사사람들.


그렇게 자리가 시작되었고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 갑자기 상무님이 주목을 외칩니다.


'자자! 다들 어느 정도 배는 채우신 거 같으니 전무님의 한 마디 들어보겠습니다.'


박수세례. 짤막하게 말씀하신다며 멋쩍게 일어나신 전무님. 엉거주춤 서서 한 동안의 정적이 흐르고.

그렇게 어렵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백프로 똑같이 옮기진 못 했지만, 제 기억에 있는 버전입니다.)


제가 이 나이가 되어 회사를 떠나게 되다니 믿기질 않습니다. 입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되었네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마지막 말은 건강과 가족, 그리고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입니다. 저도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생활을 했고 그런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 하기엔 뭐 하지만 이렇게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60이 넘어서 회사를 다닌다는 건 돈을 벌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좀 더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아직은 내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구나하는 생각이죠.


여러분, 제가 이런 말씀드리기엔 뭐 하지만 너무 회사에 올인하지 마세요. 이제 한창 일할 나이에 있는 분들도 계신데 이런 말씀드리기가 미안합니다. 하지만, 저도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딱히 기억에 남는 게 없어요. 회사일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고리타분한 얘기일 수 있지만 건강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몸을 갈아 넣지 마세요. 저도 그랬던 사람으로서 가장 후회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족과 나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더욱 찾아보려 노력하세요.


회사일도 월급을 받는 것도 결국 나의 가족과 나의 인생을 올바르게 보전하기 위함입니다. 건강 잃고 가족의 관심도 잃어가며 돈만 벌었다고 아빠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 인정받고 사랑해 주길 바라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가족들과 많은 추억을 남기세요. 일로 인해 가족과의 관계가 흔들린다면 과감히 회사를 떠나는 선택도 해보세요. 결국 인생의 마지막으로 달려갈수록 나에게 남는 건 소중한 관계뿐입니다. 저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지금 주변에 남은 사람은 가족뿐입니다.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뿐이죠.


그리고 술들 줄이세요. 여기 보면 몇몇 술 많이 드시는 분들 계신데, 정말 나중에 후회합니다. 그저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진실되게 남기는 말이니 꼭 한번 고려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동안의 세월이 참 빠릅니다. 한창 일하던 30대와 40대가 지나고 조금씩 느려지는 50대를 거쳐 이제 60이 넘어 정년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건강 때문에 40대, 50대 때 큰 고생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건강과 가족,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꼭 거치시기 바랍니다. 그동안 많이 도와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거국적으로다가 짠! 박수소리와 함께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룸 안에 울립니다. 38살 때 들었던 저 짧게 한다고 하셨지만 길었던 한마디는(몇 십 마디는 되지만) 저의 가슴에 깊숙이 남아있습니다.


저도 한 때는 회사에 인생 갈아 넣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항상 날이 서 있던 성격으로 인해 아내에게 상처를 준 적도 많습니다. 난 회사일이 중요한 사람이야 라면서 말이죠.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아내와의 약속도 취소했던 적도 있었고요. 주말이 되면 방전된 배터리를 채우기 위해 집에서 좀비처럼 움직이지 않고 쉬기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전 발행한 아래 글처럼 아내와 12년 간 여행을 네 번밖에 가지 못했던 거죠. 회사를 다니던 시절의 아내는 저에게 무척이나 조심스러웠습니다. 아내의 생활 역시 저의 회사생활에 모두 맞추어 있었어요. 내가 피곤할까 봐 어디 가자는 소리도 못했답니다. 그저 다음 주 한 주를 또 열심히 달리기 위해 주말이 되면 가만히 놔두었답니다.


야근이 많았고, 주말출근이며 철야도 잦았습니다. 당시의 아내는 저에게 전화하면 굉장히 조심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통화를 시작했습니다. 하루 네 번 이상은 통화를 꼭 하던 편이라 열 번의 통화를 하면 여덟 번은 거의 저 멘트로 통화가 시작되었어요.


'바쁠 텐데 미안해.. 바쁘면 이따가 통화해도 돼.'


바쁠 때 전화가 오면 살짝 짜증스러운 감정을 담아서 '이따가 전화할게'라고 말하고 끊은 적도 많았습니다. 혹여나 자기 때문에 나의 회사생활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눈치를 많이 봤다고 하네요. 거의 부부가 아니라 과장 조금 보태서 일종의 '주종관계'처럼 아내는 제 눈치를 살피고, 제 기분이 어떤지를 살폈습니다. 제가 느껴질 정도로요.


퇴사한 후, 어느 날 아침 9시. 쉬는 날이던 아내와 손을 잡고 집 앞 커피집에 손잡고 룰루랄라 걸어가는데 아내가 이럽니다.


'요즘 여보가 예전보다 잘 웃기도 하고, 이렇게 손 잡고 커피 사러 갈 수 있어서 너무 좋아. 회사일에 치여서 피곤해 보이고 날카로웠던 예전보다 백수지만 난 지금이 더 좋은 거 같아.'


예전엔 손을 안 잡고 걸었던가?라고 생각해 보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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