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번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너빈 Oct 17. 2024

아니 니는 영원히 직장인 일 거 같지?

오늘도 난 삐딱하게.

나이 70 먹어서도 회사원일 거 같어야?


어제는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다녀온 후, 예전 회사 다닐 때 알고 지내던 후배?라고 하기엔 뭐 하지만 그냥 나이가 한 살 어린 지인이었던 사람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다지 친하지도 않았던 그 녀석. 퇴사 후에는 전화가 많이 오지 않던 터라 기분 좋게 받았습니다. 오랜만이기도 했고요.


나 : 오~ 얼마만이야. 웬일이야 이게. 잘 지내는가?

놈 : 안녕하세요 과장님~ 갑자기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예전 과장일 때 알았고, 차장승진은 못 봤어서 저를 아직 과장이라 부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과장도 차장도 아닌데 말이죠. 무튼 그렇게 이야기는 시작되었고, 상대방의 첫마디에 저는 즉각 반응을 하였습니다.


나 : 나, 이제 과장아녀.

놈 : 오, 차장 진급하셨어요?

나 : 진급했었지. 지금은 그냥 민간인이여.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퇴사소식을 듣고 전화한 거 더군요. 천연덕스럽게 모르는 척, 그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한 거였더라고요.


놈 : 오~언제요?

나 : 적당한 때에 했어.

놈 : 아니 어쩌다가. 회사에서 뭔 일 있었어요? 퇴사한 지 얼마나 됬는데요?


그 녀석의 표정이 안 봐도 비디오처럼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눈은 말똥말똥, 한껏 상기된 얼굴로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궁금해! 말해! 를 내뿜고 있을 게 선합니다.


나 : 그런 일이 있었어.

놈 : 아니 왜요. 탄탄한 직장 열심히 잘 다니시지. 나가라 그래요?


녀석의 전화에 온갖 불순한 의도가 너무나 뻔히 보이기 시작하니 조금씩 빡이 치기 시작합니다. 몇 년 만에 전화해서 한다는 소리가 저딴거라니. 추궁하듯이 나의 퇴사에 대해 조목조목 물어보는 나보다 한 살 어린 그 녀석. 예전에 한동안 같이 업무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 중요한 업무도 아니었어서 그저 일정 기간 동안 같은 공간에서 업무 본 적이 있었어요.


나 : 아니, 나가라는 건 아니었다.

놈 : 왜 나오셨어요 그래. 그냥 붙어있지. 요즘 경기도 안 좋고, 금리가 어쩌고저쩌고. 빚은 있냐 등등.

나 : 어, 그렇구먼. 어 그래그래.(대충 대답)

놈 : 나이도 있으셔서 어디 가기도 힘들 텐데. 쫌만 더 버텨보지 그랬어요.


아, 빡이 친다. 퇴사하고 나면 승질머리 좀 고쳐보려고 그렇게 다짐한 수많은 날을 떠올리며, 나무아미타불을 마음속으로 외치며.


나 : 그럴 걸 그랬나. 근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야.

놈 : 에이 그래도 이제 나이도 있고, 어디 보고 있는 데는 있어요? 저도 이직하려고 해 봤는데 나이 때문에 그런가 쉽지 않더라고요. 퇴직금은 그래도 좀 받았겠어요. 그 돈으로 버티면서 재취업 노려봐야 할 거 같은데.

나 : 맞다. 근데 아직은 조금 고민 중이라. 그냥 이거 저거 내키는 대로 해 보고 있다.(끊고 싶음)

놈 : 나이제한 때문에 재취업은 어려울텐데. 그러게 그냥 좀 참아보시지. 아직 한창 일 할 나이인데.

나 :.....(Deep 빡)

나 : 어, 저기야. 걱정해 주는 건 좋은데 이제 그만 얘기해도 될 거 같은디? 그리고 회사에서 넌 몇 살까지 버틸 거 같냐? 작년에 얘기 들어보니 그 X부장 49살인데 정리됐다던데. 너는 그런 날 안 올 거 같지? 나이 70 먹어서도 회사원일 거 같어야?

놈 : 아니, 화났어요? 그냥 하는 말인데.


전화를 끊고는 내가 그 친구에게 뭔가 서운하게 했던 게 있었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나이에 퇴사를 했다고 하니 궁금했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아니 이해하려고 무진장 노력한 결과입니다.


순간 욱해서 정색하며 말을 건넨 나 자신에게도 조금의 실망을 느끼며,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고요.


퇴사 이후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역시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그럼에도 나름 이거 저거 발이라도 담가보고 있습니다. 이중에 하나 얻어걸리는 게 있지 않을까요?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죠? 반대로 사촌이라도 무언가 안타까운 소식이 있으면 겉으로는 안타까워하고 걱정하지만 속으로는 내심 그 사람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며 그래도 내가 쟤보단 나은 삶을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만족감을 얻는게 인간이란 종족의 본성인 거 같습니다.

저도 그랬던 적이 있고, 남들도 물론 그러하겠죠.


안 그래보려 노력해도 결국에는 그런 척만 하지, 진심까지는 닿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렸습니다.

오늘은 스피또나 한 열세트 사서 긁어봐야겠네요. 1등되면 부러워 뒤지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62세 정년퇴임하신 전무님의 한 마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