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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Jan 14. 2024

남자가 우냐 인마?

그러고도 니가 남자여?

중학교 시절. 같이 어울려 놀던 친구들 사이에서 제 별명은 '정적'이었습니다. 말수도 적었고, 다크 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죠. 언제나 날이 서 있던 성격. 마치 사이코패스처럼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철저하게 떨어져 있었죠.


아무리 슬픈 장면을 보아도 슬프다는 감정이 생기질 않아 고민한 적도 있습니다. 영화를 보다가도, 드라마를 보다가도, 다큐를 보다가도 같이 보는 사람은 눈물을 흘리는데 전 이상하게 슬프지가 않더라고요.

눈물샘 터뜨리는 영화, 드라마, 다큐 TOP 10을 검색해서 보기도 하고.

전 국민 눈물샘이었다고 말하는 이승환 님의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라는 노래가 입혀진 MBC 다큐멘터리인 '너는 내 운명'이라는 것을 보아도 별 감정이 생기지 않더라고요.


심지어 펑펑 우는 녀석도 있었는데, 그 녀석을 신기해하며 오랫동안 쳐다본 기억도 있습니다.


한 날은 친구가 장난스럽게 이런 얘기를 합니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다고 하더라.


변화 없는 표정. 크지 않았던 입을 타고나 말을 할 때도 입이 잘 움직여 보이지 않기도 했고.

제일 큰 부분은 별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저도 이제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입니다.

지난주 주말, 출근하는 와이프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는 길에 라디오에서 윤도현 님의 '흰수염고래' 가 흘러나옵니다. 몇 년 전 자주 듣던 노래이기도 해서 흥얼거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어느 한 소절에서 이상해집니다.


'너 가는 길이 너무 지치고 힘들 때, 말을 해줘. 숨기지 마. 넌 혼자가 아니야.'


별생각 없이 흥얼대며 따라 부르다 저 부분에서 갑자기 앞이 뿌예집니다.


뭐야

뭐지?

뭐여 이거 ㅋㅋㅋㅋ(혼자 실실 대며)

뭐여! 왜 이래, 왜 이래 인마!!

왜 이래!!!!!!!!!


차 안에서 갑작스레 소리를 고래고래 지릅니다. 룸미러로 살짝 얼굴을 보니, 눈물이 그렁그렁합니다.

살면서 이런 적이 처음이었어요.


아니, 이렇게 갑자기 눈물이? 내가?

심지어 슬프지도 않았어요. 생각 없이 그저 운전을 하며 흥얼대며 따라 부르고 있었다고요.


그렁그렁한 눈물을 훔치고 코도 살짝 훌쩍입니다. 이상했습니다. 갑자기 드는 생각.

아.. 나도 나이를 먹은 건가 이제.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지고 여성호르몬수치가 올라간다고 하죠. 그래서 그런가 보다 싶었어요. 집에 와서도 잊히지 않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내 얼굴이 계속 떠오릅니다.


물론, 호르몬의 영향으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이를 먹으며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나도 모르게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도 영향을 주는 거 같아요.


힘든 사람들의 사연, 내 사연에서 비롯되어 감정이입되는 사건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하고요.

별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가 제 안에 굳어있던 어떤 장벽을 허물어버린 거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영유아기 빼곤, 제가 40년을 훌쩍 넘게 살면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은 딱 번 있습니다.

1) 10대 시절, 집이 없어 친구집에 얹혀살던 시절. 밤늦은 귀갓길. 친구 집 대문 앞에서 흘러나오는 친구가족의 웃음소리에.

2) 10대 시절, 아버지에게 왜 그리 돈이 없는 거지냐며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른 기억. 그 말에 우시는 아버지를 보며. (사연이 깁니다 이거....)


이렇게 두 번인데, 어이없게도 세 번째 눈물을 차 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흘려버렸네요.(ㅋㅋ)


연륜이 점점 쌓이고, 여러 매체를 통해 나도 모르게 내 무의식 속에서 쌓이고 있는 작은 감정들. 그 작은 감정들이 어느 순간 눌리는 버튼으로 인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체적 반응으로 보여지는 거 같습니다. 여기에 노화에 따른 호르몬의 영향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울보가 되는 것이죠.


오히려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고민거리였던 난 왜 남들의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인가에 대해 답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삶을 지속하면서 얻게 되는 수많은 경험들이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싹을 틔우는 기분입니다. 예전 어둡게 살던 때와 비교해 보면 그래도 이제는 조금 더 사람다워졌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남자가 울면 좀 어떻습니까. 그만큼 감정의 폭이 넓어졌다는 방증이기도 한 거 잖습니까.

예전엔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아주 굳게 결심했었습니다. 절대 울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세뇌시켰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내 감정을 때에 맞게 상황에 맞게 표출하며 지내기로 말이죠.


'마, 남자가 좀 울면 어떠냐 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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