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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너빈 Nov 30. 2023

40대 중반 직장인 퇴사를 만든 현실자각

현실자각에 이은 현타의 순간들이 퇴사고민까지 .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까, 너무 싫어하는 분야의 일을 꾹 참고 눌러오던 게 터진 것이었을까.

그 무엇이든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배부른 소리라 욕하는 분도 계실 것이고, 제 입장을 십 분 공감해 주시는 분도 있으실 거 같습니다.

무얼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 퇴사에 초점을 맞추어 무작정 회사를 뛰쳐나온 멍청한 40대 남자.

정신은 20대에 머물러있으나, 신체는 40대 초중반으로 늙어버린 사람의 첫 번째 글 시작해 봅니다.



40대 직장인의 현실

저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그러할 겁니다. 매달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입금되는 월급을 기다리며 수동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지만, 입금되는 사이버머니의 숫자를 보며 나란 존재가 아직은 쓸모 있구나라는 자존감을 느끼고, 다시 하루하루 직장생활을 하게 되죠.


젊은 시절 가지고 있던, 패기 넘치고 혈기왕성한 부분들은 나이를 먹고 나니 상대적으로 많이 사그라들게 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내 발을 책임져 주던 사무실 슬리퍼


"그냥 이대로 이 정도만 하면서 큰 탈없이 살고 싶다"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근근이 시간을 때우며 살아가게 됩니다. 현시대를 사는 40대 남자 대부분의 직장생활을 대하는 현주소이죠.


그렇게 오전 10시부터 오늘은 뭘 먹지라는 생각을 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그렇게 점심을 먹고 나면, 1시간이 일주일 같은 시간을 겪으며 퇴근시간을 기다리고.


집에 오면 얼마 남지 하루를 어떻게든 쥐어짜 개인생활을 하려는 사람도 있고,

시체같이 티브이나 보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사람도 있고,

고생한 와이프를 위해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두 번째였네요.)


그러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문뜩 들게 됩니다.

"어? 내 인생 좀 불안한데? 이래도 되나?"



40대 직장인으로서 현타를 겪게 된 결정적 순간

올해 16년 차의 직장인 '이었' 습니다. 과거형이죠. 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백수라는 의미가 됩니다. 제가 이렇게 백수의 길을 자초하면서도 회사를 나오게 된 건, 어떤 특정한 이벤트들이 제 삶에서 연속으로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16년간의 사회생활 갈무리

소기업 계약직으로 시작하여, 5번의 이직을 거쳐 외국계기업까지 이직을 하였습니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요. 이렇게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렇게 그 회사에 내 30대를 온전히 가져다 바쳤습니다. 정말 한치의 부끄럼 없이 너무나 열심히 일했습니다. 회사가 곧 나였고, 내가 곧 회사였습니다. 엄청난 애사심을 바탕으로 잦은 야근과 주말출근, 밤샘도 마다하고 회사라는 자부심에 둘러싸여 그렇게 내 젊음의 시간을 회사에 갖다 바쳤습니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의 팀원들이 사라진다. - 음? 다들 갑자기 어디 갔어?

말 그대로 팀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제 나이가 39살, 곧 40살을 바라보던 그 시기였죠. 어느 날 들려오던 40대 후반 팀원의 퇴사 소식, 그리고 2,3달 간격으로 날아오는 팀원선배들의 퇴사 소식.


아니, 왜지? 왜 나가는 거지? 처음엔 몰랐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나간 것이 아니라, '나가짐'을 당한 것을요.

40대 후반, 50대 초반이면 너무 빠른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처음엔 했습니다.

그렇게 약 2년간 '나가짐'을 당한 팀원선배들이 6명.


정말 순식간에 팀원이 줄어들었고, 월례행사처럼 해오던 팀원의 전체 단합 겸 미팅시간의 인원은 너무나 단출해졌습니다.


아내가 대표가 되었다?

저와 동일하게 시간을 팔아 월급을 받던 아내가 본인 이름으로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와 동일한 선상에서 자신의 시간을 팔던 아내가 저와는 다른 세계의 시간사용을 하는 것을 보며, 현타가 왔습니다.


남 밑에서 일할 때와 내 사업을 할 때의 1시간이 너무나 크게 차이가 난다며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면서, 아무리 부부라지만 적지 않은 부러움과 어찌 보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출근길이 즐겁다는 아내와,

매일 출근길이 도살장 끌려가는 소 같던 나와의 차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끝없이 펼쳐진 간극이 있던 것이었습니다.



40대 직장인, 고민에 둘러 쌓이다.

제가 나약한 건지 아니면 나와 회사에 대한 믿음이 줄어든 건지 알 수 없지만, 팀원들이 저렇게 사라지고 나니 무언가 가슴속에서 꿈틀거림이 시작되었습니다.


회사가 내 인생에 없다면? 난 뭘 할 수 있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년 반의 시간을 온갖 질병을 얻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목표의식을 잃어버리고 직장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요.

끊임없는 불안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었고, 주변에 하나둘 보이기 시작하는 자기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하는 친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외국계회사를 다니며, 어깨뽕이 가득 차서 살아왔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난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말이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지금 하는 일을 회사밖에서 이어갈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 분야는 IT였습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대입하여, 이 직업을 가지고 내 이름을 걸고 무언갈 해볼 수 있을지를 정말 자세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걸 가지고 회사밖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정말 긴 시간을 고민하고, 정리하고 나름의 돌파구를 찾아보려 노력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제가 가진 기술로는 회사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팀원들이 나간 최소나이를 보면 내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0년 남짓.


50대가 되어 준비 없이 회사 밖으로 나오게 되면,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목과 어깨통증,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40대 직장인으로서 퇴사한 선배들 엿보기

회사를 다니시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회사 안에서 합이 잘 맞고, 찰떡처럼 붙어 다니는 친한 동료라도 퇴사를 하거나 이직을 하게 되면 그냥 남이 됩니다.

연락? 절대 안 하게 됩니다. 이직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선배, 그래서 지금 뭐 하세요?

용기를 내어 40대 후반에 퇴직을 당한 두 분과 50대 초반 한분에게 연락을 해 보았습니다. 정말 어색하더군요. 퇴사 후 가장 많이들 선택하는 창업과 재취업, 이렇게 두 가지의 길을 선택하셨더라고요.


- 그간 쌓아 올린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소기업으로 재취업을 하신 선배.

결국 6개월을 넘기지 못하셨더라고요. 나이는 먹었고 기존 회사에서의 위치도 있었는데,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이 어린 리더들과 합을 맞춘다는 게(말이 좋아 합이지, 오더를 받아서 일을 해야죠.)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내려놓기를 수없이 반복했지만, 결국 넘을 수 없는 그 선을 넘지 못하시고 6개월을 버티다 퇴사를 선택하셨다고 합니다.


- 퇴사 후 대부분이 선택하는 음식점 창업을 하신 선배.

음식점을 개업하셨습니다. 퇴직금과 위로금등을 합쳐, 멋들어지게 직원도 뽑고 제2의 인생이다! 를 외치며 호기롭게 시작하셨지만, 1년 만에 폐업.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20대부터 50대까지 한평생을 책상머리에 앉아 타이핑이나 치던 사람이 회사밖에서 '진짜 세상'을 마주하게 되면 잘할 수 있을까요?


- 빵집 프랜차이즈를 선택하신 선배.

극한의 노동시간을 견디며, 회사에서 일할 때보다 2배 이상의 시간을 일하지만, 월 수입은 회사 때의 절반도 못 가져가는 생활을 보내고 계시더군요.

그래도 폐업은 하지 않고 계시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와이프분과 거의 2교대 수준으로 일을 하고 계셨고, 그야말로 연명을 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가끔은 회사 다니던 생각이 많이 난다고 하시네요.


아.. 무섭습니다. 현실을 눈으로 마주하고 생생하게 듣고 나니, 인터넷검색으로만 보던 것과는 다르게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회사를 다닐 때보다 훨씬 더 가혹했습니다.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인 아내의 홀로서기를 목격하다.

홀로서기라고 적고 나니, 이혼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 거 같네요. 이혼이 아닌 자기 이름을 걸고 개인사업을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내도 한 분야에서 16년째 일해오고 있습니다. 지금은 본인의 사업체를 꾸려 직원들과 열심히 일하고 있죠.


저와 아내는 평생을 남 밑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그만큼 월급이 주는 안정감에 두 사람모두 도취되어 도전을 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남을 위해 일하고, 내 시간을 팔아 월급을 받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었으니까요.


나 내 거 하나 시작해보고 싶어.

아내가 처음으로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 한마디를 꺼냅니다. 분야는 밝힐 순 없지만, 아내는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토대로 자기의 개인사업을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일을 해왔거든요. 저와는 다른 환경에서 사회생활을 해오던 사람이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적지 않게 돈이 들 텐데, 망하면 어쩌지? 코로나가 이렇게 심한데 망하면 어쩌지..?"

쫄보였던 저는, 깊게 생각해 보자고 했습니다. 물론, 아내에 대한 확신은 있었습니다.

옆에서 봐도 곧잘 했거든요.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실력도 좋았어요. 안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코로나가 심한 시기였고, 굳이 이 타이밍이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많이 던졌습니다.


정말 자신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볼까?

평소 눈여겨보았던 곳이 매물로 나왔고, 그걸 인수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저 사람들 절대 저 매물 내놓을 거 같지 않다고요. 권리금도 미리 알아봤더군요.

아.. 큰 금액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이런 큰돈을 들여서 저길 인수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점점 더 깊어져만 갔습니다.


당시 제가 볼 땐, 아내는 근거 없는 확신이 있어 보였습니다. 저는 권리금을 깎으려 시도해 봤지만 절대 먹힐 리 없었고, 매물로 나온 곳도 코로나 전엔 잘되었지만, 당시에는 매출도 꺾여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전 안 되겠다고 선을 그었고, 아내가 오히려 저를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정식계약을 하기 2일 전입니다.


나 잘할 수 있다. 여기 지금 아니면 인수할 기회가 없을 수 있다. 내가 저곳을 수년을 봐왔는데, 절대 꺾일만한 곳이 아니다 등등.. 아내는 100프로는 아니지만 확신의 목소리로 저를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안된다고 선을 그었던 다음날 계약서를 작성하고, 권리금을 이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ㅋ)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내의 40대 퇴사 후 홀로서기 성공

인수하고 다음 달 코로나 확진자가 1만 명을 처음으로 넘어섰습니다. 뉴스에는 대대적으로 코로나에 대한 공포스러운 뉴스가 연일 나오게 되었고, 모든 사람들은 확진자 1만 명이 넘었다는 뉴스를 보며 공포감속에 일상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하. 지. 만.

이상하게 아내의 개인사업은 잘되었습니다. 저도 당시 외국계회사를 다니며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음에도 제가 회사를 다니며 임원을 달지 않는 이상 벌 수 없을 거 같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가 그렇게 극성인데도 말입니다.


물론, 아내의 헌신적인 노력이 한몫했습니다. 남 밑에서 일할 땐 꼬박꼬박 챙겨 먹던 휴가도 반납하고 처음 1년간은 한 달에 많으면 5번, 적게는 3번 정도 쉬면서 일을 하더군요.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였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물론, 개인사업이라는 게 꾸준하게 매출이 잘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을 보니, 저보다 훨씬 많이 벌었더라고요. 거기서부터 무언가 제 안의 생각의 틀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떠버리게 된 거죠."

남을 위해 일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삶이 인생의 정답으로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냥 이렇게 평범하게 월급 받으며 사는 것이 내 인생의 전부라 믿었었습니다.


아내의 홀로서기 이후 1년 반이라는 시간을 끔찍한 고통과 번뇌 속에서 살기 시작합니다.

회사밖에서의 나를 찾아보고자 별의별 노력을 다 해보기 시작하고요.



40대 직장인의 퇴사 결심의 서막

결국,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던 작은 움직임은 내 마음속에서 어느덧 잔잔한 파도를 일렁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단단하고 뿌리 깊게 박혀있던 직장생활, 직장인으로서의 마음가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잘하는 것도, 잘할 수 있는 것도 없던 나이기에 이렇게 회사를 떠나려는 시도를 하려는 나 자신이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괜히 아내가 개인사업을 시작해서 안 그래도 팀원이 6명이나 나간 상황을 맞아 혼잡스럽던 내 심리상태에 돛을 단거 같아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몰랐더라면, 그냥 이것이 내 인생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지냈더라면 이런 심리적 고통이나 두통과 목통증, 어깨통증이 찾아오지 않았을 텐데라고 후회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미 한번 잔잔하게 일던 파도는 멈출 줄을 몰랐고, 그렇게 돈을 벌기 시작하는 아내의 개인사업에 대한 기쁨과 동시에 회사 안에서 점점 작아지는 나의 모습을 대조하며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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