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평범하다.
비행기에 오르면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감상에 젖을 줄 알았건만, 의식의 흐름은 사소하기 짝이 없다. 이번 여행을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나보다. 좀 더 힘을 빼고 다녀야겠다.
촌스러운 색깔의 시트에 앉는다.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승무원이 인사를 건넨다. 중국남방항공. 한국인 보다 중국인 손님이 많다. 어떻게 승무원은 나를 보고 '니하오'가 아니라 '안녕하세요'라 했을까.
한국인 승객과 중국인 승객을 구분하는 방법이 궁금해진다. 옆 자리를 지나가는 승객들을 5초간 관찰하니 금방 답이 나왔다. 'LOTTE DUTY FREE'라고 적힌 거대한 쇼핑백의 유무. 최소 2개 이상. 그런데 이들이 짐을 수납칸에 넣고 난 후엔? 앞으로 내가 보낼 시간들과 별 상관 없어 보이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비행기 바퀴가 딱 하늘로 떠오르는 그 순간을 좋아한다. 설명하기 모호한 공기 덩어리가 내 몸을 슬쩍 띄워 올리는 게 재밌다. 아주 옛날 아버지 차로 할머니 댁에 가는 날, 유독 높았던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 느꼈던 풀쩍 떠오르는 기분과 닮았다. 그 방지턱을 넘을 때면 속도를 조금 더 내 달라고 아빠를 조르곤 했다.
체크인을 일찍한 덕에 좋은 자리를 골랐다. 화장실 바로 앞이지만 다리를 쭉 펴고 누울 수 있다. 들락날락 화장실을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정신없다. 냄새는 나지 않는다. 다행이다.
오랜만에 입은 여행자룩, 반바지와 레깅스가 불편하다고 느끼지 않을 무렵 잠들었다. 5시까지 술을 마시고 세 시간 선잠을 자고 나온 터라 대낮임에도 잠이 쏟아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두고 온걸 생각한다. 발신정지 신청을 해도 카톡은 할 수 있는 거냐며 발을 동동 구르시던 어머니. 모레가 시험인데 공부도 팽개치고 바래다주겠다고 공항까지 달려 온 여자친구. 결국 출입국검사대에서 눈물을 보여버린 예은이.
바로 몇 시간 전까지 술잔도 들고 회초리도 들며 함께 있었던 친구들. 창원에서 신나게 놀고있을 덕구. 잠갔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가스밸브. 막힌 걸 그대로 놓고 나와버린 싱크대. 몸은 하늘에 있는데 마음이 땅에 있다.
너무 춥다. 화장실에 가며 'Could I get one more blanket?' 하고 물었다. 옆 자리 다른 승무원 분이 '한국분이세요?' 한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다 말씀하세요. 다 챙겨드릴게요." 좋다고 헤벌레 허허 하고 웃었다.
이후 4시간, 매번 내 옆을 지나가며 이거 줄까요 저거 줄까요 물어봐준다. 덕분에 밥도 2개 뭐든 2개. 가장 감동했던 건 '선물이에요'하며 뜨거운 물을 가득 담은 1리터 짜리 페트병을 건넸을 때다. 담요 두 장을 덮고도 너무 추워서 좀처럼 잠을 못 자고 있었는데... 물난로를 껴안고 세상 모르고 잤다.
평범한 여행이 14시간째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여행도 삶도 거창한 게 아니다. 최소한 거창할 필요가 없다. 거창하고자 할 수록 허영과 피로만 는다. 무게 잡지 말아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