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가 밉다

어글리 이집션

이집트의 색깔은 황토색이다. 황토색 벽이 아니라 회색 벽에 황토가 내려 앉았다. 나무도 초록이 아니라 황록이다.


가장 먼저 내게 컬쳐쇼크를 안겨준 건 만원버스다. 문간의 비좁은 층계에 사람들이 올라탄다. 여기까진 평범. 웃긴 건 그러고서 버스 문을 열어 놓은 채 출발한다는 거다. 승객과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 사이엔 아무 것도 없다. 봉 하나에 내 목숨을 지탱하는 셈이다. 택시기사에게 원래 저러고 달리느냐 경찰도 뭐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게 이집트란다.


미터기가 없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110파운드로 딜했다. 도착. 150파운드를 주니 이제 배째라다. 잔돈이 15파운드 밖에 없단다. 약속과 다르지 않느냐고 따졌다. 도로가 너무 막혔단다. "크라우디드! 크라우디드!" 어글리 이집션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들었는데 시작부터 이럴 줄이야.


그래, 이것도 이집트다.


위치도 엉망인 데에 내려줬다. 에라. 일단 걷는다. 날 보는 시선이 영 불편하다. 특히 뱀이 또아리를 튼 듯한 모자를 쓰고 이슬람 복장을 한 남자 현지인들이 더욱 그렇게 쳐다본다. 왜 그러나.


이유를 알았다. 호스텔을 찾아 방황하는데 중고딩쯤 되는 학생 무리가 와글와글 오더니 "너 이집트에서 그렇게 입고 다니면 안 돼" 한다. 이집트에선 내 복장이 '게이'란다.


한참을 헤맨 끝에 숙소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작정이다. 너무 피곤하다. 숙소에서 5분 거리에 나일강이 있단다. 가고 싶긴 한데, 지금은 아니다. 잔다.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넓은 숙소다.




11시부터 내리 6시간을 잤다. 비행 틈틈이 잤지만 좁은 시트에선 자도 자는 게 아니다. 밍기적 일어난다. 카메라를 챙겨 나선다. 나일강에 갈 생각이다. 저녁도 사먹을 겸.


빵빵대는 경적음에 익숙해질 무렵 나일강에 도착했다. 유쾌한 친구 하나가 아는 체를 한다. "웰컴. 이집트 어떠냐. 요 브로. 아임 리얼 이집션!"


나일강을 구경하려면 저쪽으로 가는 게 좋다는 둥 교통질서가 엉망이니 길 건널 때 조심하라는 둥 이것저것 친절히 일러준다. 자신은 아티스트란다. 저기 옆에 화실도 있단다. 가보고 싶어졌다. 할 일도 없고 시간도 많다. 뭔가 재밌는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온 벽면에 피라미드 벽화를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 잔뜩 걸려있다. 모두 자기가 직접 그린 거란다. 한 장을 꺼내 선물이라며 챙겨준다. 아랍어로 JUNG이라고 서명(?)도 해준다. 나도 좋은 추억을 선물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다. 마음껏 구경하고 가라며 자리에 앉힌다. 차도 한 잔 준다. 째깐한 가루들이 동동 떠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다른 것도 더 보여주고 싶다며 바닥에 10장이 넘는 그림을 주루룩 깔아놓는다. 형제가 있는지 묻는다. 여동생이 둘 있다고 했다. 여동생 둘에게 줄 그림도 고르게 한다. 다 선물이란다.


이제서야 아차 한다. 강매다.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들었거늘. 물론 화실에 가고싶다고 자청한 건 나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 이렇게 독이 될 줄이야. 900파운드를 달란다.


일주일은 족히 이집트에서 먹고 잘 수 있는 돈. 선물이라고 해놓고선 무슨 소리를 하느냐고 정색하며 화실을 나왔다. 밖까지 쫓아와서 달러도 되고 카드도 된다며 응석을 부린다. 어이가 없다.


첫 날부터 긴장이 많이 풀렸나보다. 허접한 호의에 속아 넘어가다니. 어글리 이집션을 둘 씩이나 상대하고 나니 진이 빠진다. '그래도 차에 수면제를 넣지 않은 게 어디야'라고 생각하며 나일강으로 향한다.



일몰이다. 이집션들에게 시달린 하루를 그제야 겨우 보상받는다. 강물이 핑크빛으로 물든다. 히잡을 두른 현지인들이 삼삼오오 강둑에 걸터 앉아 있다. 치토스를 먹으며.


치토스와 나일강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 이들과 같은 곳을 바라본다. 유람선 선착장, 'NILE CITY'라는 붉은 네온사인이 여기가 나일강이라 일러준다. 'E'에는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다.


닐 시티?


이집트는 참 어설프구다 생각한다. 옆에 앉은 여인들이 다 먹은 치토스 봉지를 무심히 강물에 휙 던진다. 나풀나풀 날아가 무사히 강변에 안착. 잔뜩 쌓인 비닐봉지와 담배꽁초가 이제 눈에 들어온다. 어설픈 거 맞구나.






이튿날, 피라미드로 향한다. 호스텔에서 Giza역까지 간 후 그곳에서 피라미드로 가는 택시를 탄다. 아무렇게나 먹고 내팽개친, 갈색으로 변해 제 멋대로 말라 비틀어진 사과심지 같은 빌딩이 나일강변을 따라 듬성듬성 꽂혀있다. 카이로의 풍경은 정말 최악이군.


창문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코를 타고 넘어온 매연은 기도를 거쳐 폐로, 이내 새끼 발가락의 모세혈관까지 가 닿는다. 못 참겠어서 창문을 올리면 땀이 줄줄 흐른다. 올렸다 내렸다의 반복이다.


분명 '피라미드'에 내려달라고 말 했는데 '피라미드 호텔'에 차를 댄다. 어이가 없다. 운 좋게 미터기가 달린 택시를 탔다고 좋아했는데, 되려 독이 됐다. 25파운드에 갈 거리를 50파운드를 내고 왔다. 어서 빨리 카이로를 뜨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저 멀리 피라미드의 위용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카이로에 온 보람이 있구나. 엉망진창인 카이로의 풍경과 공기를 용서하려고 애써본다.


'Government' 가이드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사람이 동승한다. 뭐지 싶다. 이내 피라미드를 둘러보는 방법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다.


결국, 가이드와 가격을 합의하고 피라미드에 들어섰다. 비싸다고는 느꼈지만 이미 지쳤기에 다른 가이드를 찾으러 다니기도 싫어 그냥 가기로 했다. 돈 가지고 한참을 흥정 붙이느라 피라미드를 마주한 감상을 흐리기 싫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 택시기사와 가격을 놓고 실랑이를 벌일 때 통역을 해주며 내 편을 들어줘서 고맙기도 했다.




그는 피라미드 세 곳을 들르는 4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나를 돌봤다. 찾아보면 다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피라미드의 이야기를 해준다. 피라미드를 구경하는 동안 내 가방을 대신 들어준다. 말 타는 법을 가르쳐준다. 좋은 구도를 찾아 사진을 찍어준다.



슬슬 투어가 끝나가자 돈 얘기를 꺼낸다. 피라미드를 둘러보는 비용이 둘이 각각 980파운드란다. 애초에 합의한 가격이 둘을 합친 가격인냥 이야기를 하더니. 여기에 가이드 팁까지.


2000파운드가 넘는 터무니 없는 액수에 놀라 항의했다. 이 가격이 맞느냐고 의심했다. 마음이 너무 편치 않았다. 하루종일 나를 위해 고생해줬는데....




결국 가격을 지불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기사에게 피라미드를 어느 정도 가격에 다녀오느냐고 물으며, 난 2000파운드가 넘는 돈을 내고 피라미드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대번에 '너무 비싸다'고 이야기한다. 깜짝 놀란다. 온 종일 다녀봐야 가이드 팁을 합쳐 500파운드면 충분하다고.


애초에 합의한 가격 자체가 '호구특가'였다는 거다. 벙 찐다. 머릿속으로 얼른 계산기를 두들긴다. 내 계좌에서 출금됐을 돈이 어느정도고. 이 돈이면 다합에서 얼마나 더 지낼 수 있으며. 등등.


분통이 터진다. 장관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던 피라미드의 위용이 하찮아 보인다. 피라미드고 뭐고 다 집어치고 싶다. 오늘 하루를 모조리 망친 기분이다.


가장 억울한 건 하루종일 나를 데리고 피라미드 구석구석을 누비느라 애써 준 가이드에게 고마워하고 심지어는 미안해했다는 거다. 너무 속상한 건 진심으로 대한 사람이 뒤통수를 쳤다는 거다. 사실 그 녀석은 '호구 잡았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으리라.


이제서야 그가 던진 복선의 의미를 하나씩 해석해나간다. 영화 '곡성'을 보고 난 뒤에 떡밥을 회수하며 '아 그래서 이랬던 거구나' 하는 것 처럼. 그리고 날 보내며 인사한 마지막 말의 의미를 곱씹는다. "우리 가족을 도와줘서 고마워요."




택시 기사가 이집트에 언제 왔느냐.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시시콜콜한 질문을 한다. 이미 내 기분은 바닥인 상태. 내일 다합에 간다고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러자 가이드, 투어 어쩌고 적혀있는 명함을 건네며 다합에 데려다 준단다. 버스보다 그렇게 비싸지도 않단다.


'아니. 대체. 왜. 카이로엔. 어떻게든. 여행자를. 등쳐먹으려는. 녀석들밖에. 없는거야.' 불난 데 부채질이다. "I am going to Dahab By Myself"하고 소리지른다.


카이로의 모든 게 싫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