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즈막이 일어나 제시간을 넘겨 점심을 먹었다. 제시간을 넘겨도 누군가에게 비난받지 않는 날은 점점 줄어든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그 무엇도 제시간에 하지 않으리. 흐린날에는 덜마른 빨래마냥 몸뚱이가 괜시리 늘어진다. 나를 축축하게 적시고 간 피로가 채 마르지 않은 느낌. 젖은 빨래 같은 육신을 일으켜 세수하고 눈꼽떼고 양치하고 머리 감고 밥 먹기가 힘들다. 하루를 보내기 위해 기본적으로 해내야 하는 단순한 일들. 이런 일들이 버겁게 느껴지면 마음에 병이 든 거라고 하던데.......
살면 살수록 스스로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튜브만 보면 왜 죄책감을 느끼는지. 유튜브를 보고 나서 허한 마음이 든다면,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충만한 느낌이 드는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집이 넓어지고 차가 생기고 배달음식을 돈 걱정 안 하고 맘껏 시켜 먹을 수 있게 됐지만 공허하달까? 오… 써놓고 보니까 뭔가 좀 래퍼 같은데?
이랬거나 저랬거나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이 쉬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잘 산다는 건 무엇이지? 그마저도 모르겠다. 어느덧 삼십대 중반인데 나는 언제 많은 걸 알게 될까.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 그래도 잠깐이나마 잘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순간에,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느낀다. 잘 살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래도’가 찾아오는 순간은 아래와 같다.
배달시키지 않고 간단한 요리라도 해먹거나, 가벼운 조깅을 할 때. 그마저도 아니면 짧은 글이라도 쓸 때.
최근 브런치에 글 쓰는 모임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글쓰기를 무척 좋아하는 척하며 보낸 세월이 꽤 되었다. 평소에 떠들어댄 말이 있기에 쉽게 거절할 수 없었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인지라 간만에 생각을 정리하고 풀어놓는 일이 쉽지 않았다. 모임에 속하겠단 이야기는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겠다는 뜻과 같다. 그리고 아주 가끔씩만 찾아왔던 ‘그래도’의 빈도를 늘리겠다는 개인적인 발버둥이기도 하다.
오늘은 그래도 잘 살고 싶은 날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