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호지방이 Feb 25. 2024

동전 세우기

 종일 씻지도 않은 채 오후 2시가 되도록 누워만 있었다. 왜 이렇게 기운이 없지. 이불이 아니라 무기력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무심코 <킬러들의 쇼핑몰>을 틀었다가 새벽까지 달렸기 때문일까. 배달음식을 시켜 대충 끼니를 때우고는 또다시 침대에 벌러덩 몸을 내던졌다. 밤샌 후 늦잠 자고 배달음식 시켜 먹고 바로 침대에 눕기. 평범한 30대가 할 수 있는 가장 자기 파괴적인 행위라고 할 수 있겠다. 내일이면 노화된 소화 기관들이 오늘의 선택에 대해서 엄중한 책임을 물을 터다.      


 나는 이런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할 때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불행하다.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라 시차를 두고 찾아올 수는 있어도 동시에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동전이 세로로 세워진 기분이 든다. 방구석에 축 늘어져 있는 나는 과연 행복한가 불행한가. 쓰레기 같은 삶. 너무 좋아. 근데 너무 한심해. 하지만! 이런 한심함을 사랑해. 그러나. 성인병 무서워. 하우에버...! 배달음식 맛있어. 네버더리스...! 어쩌구 저쩌구.      


 촬영과 육아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유부남 A군에게, 과연 지금 내가 행복한 건지 불행한 건지 물어보고 싶어 카톡을 해보니 다섯 글자의 대답이 날아왔다.


 존나 부럽다.

 뭐가 부럽냐. 다 외로움과의 거래다.

 뭔가 문학적이네.

 염병하네. 문학이 다 얼어 죽었냐.

 기저귀 갈러 간다.     


 그는 홀연히 기저귀를 갈러 사라졌고, 나는 다시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지금이라도 몸을 일으켜 활기찬 하루를 시작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무리였다. 오늘은 바위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 블라인드를 모조리 내리고 불을 끄고 있어 한낮인데도 어둑어둑했다. 햇빛이 블라인드 사이로 새어 들어오지 않는 걸 보니 아무래도 날씨가 흐린 듯했다. 오후 내내 아주아주 흐리고 꾸리꾸리한 날이었으면. 나는 누워서 생각했다. 


(*끝)

작가의 이전글 띠띠띠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